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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선교 사역/태국 촌부리 선교센터

촌부리와 김정웅 선교 History 10

by 임도마 2025. 4. 13.

<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10) >

섬기는 사역부터!

뱅콕한인연합교회에 전임 신홍식 선교사님의 대를 이어, 주일 예배 담임목사-고 김순일 선교사님이 개척하셨던 교회에 3대 목사-로 부임을 한 셈이다.

쁘라무언가에 있는 CCT 총회 사무실 옆, 태국 기독교 학교라는 전통이 있는 Bangkok Christian College(태국에서는 College가 대학이 아니라 유치원부터 고 3까지를 가르치고, 대학은 University라 함) 강당을 빌려 오붓한 분위기의 한인연합교회가 당시에도 거리두기를(?) 잘하여 5,000명이 모일 수 있는 대강당에서, 50명 정도되는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광주중앙교회가 장년만도 1,500명 이상 모이고, 중고대학부가 2,000명 이상, 유년주일학교가 4,000여명이 되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갑자기 적은 숫자가 모이는 오붓한 교회가 다정하기도 했으나, 허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예배 후 어떤 성도가 예배 시간을 새벽 6시에 드리자는 제안까지 해 주셨다.

이유인즉 새벽 일찍 예배를 드리고, 골프장에 나가 건강도 유지하고, 교제도 넓혀 전도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그럴싸한 제안을 방콕 전입 고참이 하셨다. 교인들의 형편을 보아도, 목사가 나이도 제일 어리고, 외국 생활도 초년생이니, 한심 하기도 했을 것 같다.

그래서 매주일 예배 후 교제 시간을 위해, 소프트 드링크도 사오고, 컵과 접시 등도 집에서 가져와, 싱크대에서 씻어 오는 일부터 시작해서, 섬기는 모든 일이 담임목사의 몫이었다.

신 목사님이 쓰시던 픽업 자동차에 소프트 드링크 궤짝들과, 우리 자녀를을 비롯하여, 차가 없는 교인들을 싣고 귀가를 돕는 것도 젊은 목사의 몫이었다.

첫 성찬식 때는 저희 부부를 포함해 13명이 성찬에 참여하여, 마가의 다락방 첫 성찬식과 숫자가 같았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의 귀중함과,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지를 새로 배우게 해주시는 산 교육장이었다. 넓은 예배당에 혹시 좀 늦게 한 사람이라도 더 오시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오전에는 태국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노량진 운전교습소에서 훈련 받다가 시간 관계로 못 마쳤던 운전을 부부가 다시 배우며, 빨리 면허를 따는 것이 급선무였다.

중간에 감기라도 걸리면 가까운 약국에 가서, 한자를 써서 상태를 설명하여 약을 사 오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약사가 중국계라 한자로 쓰는 것이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