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리와 김정웅 선교 History 99
<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99) >
초창기 재단 이사회와 직원들
촌부리 땅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땅을 관리하고 재단 이사회를 구성할 7인도 정해 주셔서 재단 설립의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재단의 이사는 땅을 기증한 한유순 권사님과 이사장직은 Thai-oil 회사의 인사담당 메니저이고 ’시라차‘ 산 기도원의 대지를 허락한 ’우돔뎃‘ 장로(그는 ’아누판‘ 할머니의 딸 ’모 쏨폰‘의 남편이다)가 맡았다.
또 땅을 살 때 담당 변호사의 아내요 독실한 신앙으로 법적 실무에 유능한 아잔 ’부어캅‘과 양병화 선교사의 후원 장학생이었던 사회사업과를 졸업한 ’수퐁‘이 재단의 서기를 맡았고, 태국의 법률에 따라 태국인 51%, 외국인 49%를 유지하기 위해 태국인 4명, 한국인 3명으로 한국인 이사로는 양병화 선교사와 필자가 포함되어 총 7명의 이사로 정해진 재단이사회가 시작되었다.
실무 직원으로는 ’모씬‘이 실행 총무가 되고, 평화의 집 마약 재활원은 아잔 ’수퐁‘이, 은혜의 집은 아잔 ’씰라‘가 정해지고, 양병화 선교사와 필자가 실무이사로 정해져 일상적인 실무들을 의논해 나갔다.
우선 땅의 정지 작업과 공사 그리고 동역할 사람들을 불러와 각 기관이 활성화 되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런 중에도 새로운 촌부리 선교센터의 설립 소식을 듣고, 뉴욕과 한국 각 지역에서 목사님들과 청년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모씬‘은 ’방클라‘ 침례교 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담당하는 의사로서 태국 동남부 침례교회들의 실제적인 리더인데 우리 재단 일을 전무하게 되어 태국 정부관계 업무들과 현지 직원들 관리 등 재단의 실제적인 모든 업무들을 취급하셨다.
이 기간에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점심때마다 식사 준비를 몇 년간 담당해 온 이순교 선교사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믿음으로 이사장 일을 담당하고 또 이사장 집에서 모일 때마다 맛있는 각종 태국 음식을 대접해 주신 이사장께도 감사를 드린다. 그는 요리에도 소질이 남달라 주변 식당에 그분의 이름으로 요리명이 있을 정도로 전문가 수준의 요리사이기도 하다.
이사장의 사모님이신 ’모 쏨폰‘은 필자의 전문 주치의로서 자신의 진료비는 무료로 해 주시면서 잘 돌봐 주셨다. 그녀는 시라차 ’싸미티웻‘ 병원 의사들의 성경공부반을 별도로 인도하였고, 현재는 의사이면서 시라차 ’반쁘라타나‘ 교회를 개척하여 시작해 500-700명 교인들을 목양하는 목회도 하고 계신다. 현재는 별도로 교회 부지를 마련해 지역 전도에도 주력하는 모델 교회를 이뤄 나가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