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리와 김정웅 선교 History 13
<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13) >
"안딸라이" - 태국 선교지역 첫 방문
태국어 공부 두 코스를 7주간에 마치고, 태국 운전면허증도 받아서, 신홍식 선교사님과 함께 동역하셨던 ‘싼띠 후’ 장로님과 ‘깔라폰’ 전도사님의 안내를 받아 CCT 제8노회 전도처들을 방문했다.
제8노회는 방콕에서 남쪽으로 긴 코끼리 코와 같은 5개도의 500여 Km가 넘는 지역에, 7개 교회와 3개의 개척교회가 있는 곳으로, 그중에 방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교회와 전도처들을, 신홍식 선배님의 바톤을 이어 받아 겁도 없이 방문하게 되었다.
‘펫부리’도 ‘타양’의 ‘깔라폰’ 전도사님 가정도 방문하고, 한 여성도 시골집을 방문했는데, 선교사가 오고 선교팀이 온 것을 환영하여 카눈(jackfruit) 먹던 것을 잘라 주는데, 자기대로는 깨끗하게 씻어 준다고 몇 달이 지난지도 모르는 헌 신문지로 닦아 주던 것을 잊지 못한다. 차라리 그냥 주었으면 더 깨끗하게 먹을 수 있을 텐데...ㅎㅎ
한 60대 초반의 아저씨를 심방하는데, ‘꼽짜이막(고맙네)’라고 해서 내심 놀랐다. 제가 한국에서 온 목사 선교사로서 경어를 써 대접받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말투에 놀란 것이다. 태국의 예의범절을 미리 알았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예전에 광주 중앙교회에서 부목사로 처음 청빙을 당회에서 의논할 때, 고 강봉우 장로님이 김 목사를 환영하나 혹시 옛날 학창 시절을 생각해 말을 하대할까 우려가 된다는 말씀을 당회에서 하셨다는 것을 뒤에 전해 들었다. 사실 그는 제가 중학교 시절 만 70세에 광주서중, 광주일고 교장직을 은퇴하시고, 숭일학교 교장으로 오셨고, 한국 105인 사건의 한 분이시기도 하다.
다른 당회원들 중에도 제 중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 여러 과목 스승님들이 많았는데, 원로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니, 아무런 어려움 없이 목회와 심방도 권위 있게 진행했다.
그 대신 심방중 예배 설교가 끝난 후 식사 시간에는 그들을 어른으로 제가 잘 모시다가 왔는데, 이런 하대하는 소리를 듣고 내심 놀라기도 한 것이다.
저녁에는 ‘펫부리’ 중국인 교회 사택에서 자는데, 새벽까지 온 동네에 스피커로 방성대가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좀븡’이란 사범대학교 지역에 심방을 한 후, 한 사진관에서 카렌족 마을에 전직 면장님께서 복음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듣고, 30km 떨어진 비포장 도로를 따라 ‘쑤원픙’이란 마을에 갔는데, 그때 마침 스님 두 분이 거기 계시다가 마을에서 내려온 후, 우리 선교팀이 마을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때를 계기로 그 가정과 마을에서 BC, AD와 같은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제가 운전하는 것을 보고. ‘안따라이’라고 하는데, 그때까지는 그런 단어를 배운 일이 없어서 물어보니 한자로 ‘위험’이라고 쓰시면서, 초보 운전사가 천천히 운전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해안 초소들을 50CC 오토바이로 순찰하며 단련된 저에게는 포장된 직선 도로에, 두 발도 아닌 네 발 픽업 트럭으로 달리는 것은, 너무 안전하고 호강스럽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