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선교 사역/태국 촌부리 선교센터

촌부리와 김정웅 선교 History 37

임도마 2025. 4. 22. 07:40

<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37) >

최고 지도자들과의 관계

기회가 주어져 CCT 임원들과 교수들, 큰 교회의 목회자들이 한 서양 선교사의 송별 만찬식에 초대를 받아 갔다.

서양 선교사는 이미 은퇴를 하고 귀국했다가, 태국을 사랑해 재부임을 했고, 이제 다시 귀국하는 자리에, 임원도 아니지만 초대를 받아 갔는데, 그날 저에게는 귀한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참석한 총회 임원들, 총회 신학교 교수들과 대형교회 담임 목사들이 한결같이 신학생 때에 자기들을 가르쳐 주셨던 아잔(스승)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며 감사의 뜻을 돌아가며 표하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 총회장이셨던 아잔 아룬솔직히 말해 당시에 어떤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자기들의 신학교 시절 교수님이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다.

선교사님은 현재 총회의 임원들과 교계의 높은 지도자들이 자기의 제자였다는 사실도 잊어 버리고 살다가, 뜻밖에 모두 스승님이라고 부를 때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저도 몇 차례 강사로 섬기고, 작지만 직접 신학교도 운영했던 경험이 있어서 가끔 제자들을 만나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신학생 지도자도 지원하지만, 더 높은 지도력을 발휘할 목회자나 교수도 지원한 경우들이 있다.

그 중에 록펠러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교수로 유학까지 했고, 방콕 까셑삿농대의 교수로 있다가, 예수 믿고 태국 CCC 초창기 대표였다가, 다시 미국 신학교에 유학을 갔던 파이툰박사님이 박사 학위까지 받아와, 방콕에서 교회를 새로 개척하는데, 예배당 임대비 일부를 그 교회가 자립하게 되어 사양할 때까지 지원해 드려, 큰 인물들이 속히 자립하여 교계의 큰 지도자로 성장하도록 적극적으로 밀어 드렸다.

나중에 선한목자 훈련원의 강사로, 졸업식 때마다 적극 지원해 주셨고, EFT 총회의 부총회장도 지내셨고, 윤수길 선교사님이 하셨던 TES 신학교의 이사와 이사장으로도 수고해 주셨다.

또 제가 BBS 신학교의 이사로 섬기는 동안, ‘마놑교수가 LAITS 김의환 박사님이 하시던 신학교에서 D.Min을 하실 때, 적은 용돈이지만 급하고 필요할 때 쓰시도록 지원을 해 드렸는데, 나중에 총회 임원으로 서기와 총회장까지 지내시고, 지금도 부총회장을 다시 하시고, 현직 총회장으로 다시 섬기고, 신학교 학장과 태국 복음화 운동을 위한 주요 지도자로 맹활약을 하고 계신다.

마찬가지로 아잔 위랏 꼬이둔CCT 전도국장일 때부터, CCT 내의 전도 활동을 옆에서 많이 협력했고, Fuller에서 선교학 석사과정을 할 때, 일부 장학금을 지원해 드렸는데, 그것이 좋은 인연이 되어 총회 전도국의 이사로 추천해 주시고, 심지어 제가 CCT 총회를 나와서 EFT 총회로 옮겼는데도 계속 이사로 넣어 주셔서, 다른 분들의 비판이 많아 제가 자진해서 사의를 표한 경우도 있었다.

저의 선교사역 30주년 기념식 때는, CCT 총회가 치앙마이에서 모이고 있는 중에도 비행기로 중간에 촌부리에 오셔서 기도 순서를 맡아 주시고, 다시 비행기로 치앙마이 총회장소로 돌아가 부총회장의 임무를 다 하기도 하셨다.

그 뒤로 서울교회에서 인도차이나 현지대표단 초청 김치세미나를 할 때에도, 영국 장로교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지 이틀만에 다시 10일간의 세미나에 참석해서, 태국 초교파 전도대회 임원들과 깊은 교제를 하며, 10일간의 최고의 시설과 강의, 견학 등을 통해 한국교회 부흥의 진수를 배울 기회도 가지셨다.

총회적인 지도급 인사들과 깊고 오랜 사귐을 통해, 저들이 지도자로 선교지(현지)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기도하는 것이, 선교사들의 또 다른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