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리와 김정웅 선교 History 72
<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72) >
Understanding stage!
제일 먼저 선교사가 해야 할 일은, 선교지와 사람들, 선교지 교회들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저들의 실제 생활속에서 배우고 실상을 잘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선교의 성패가 판가름 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선교지에 처음 도착하니 모두가 낯설고, 갑자기 갖난 아이와 같은 성인이 되어 모두가 모르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 한인교회 사역을 선배 신홍식 선교사님의 대를 이어서 하니, 한인교인들의 제한된 도움을 받게 되고, 주일 예배라도 한국어로 설교도 하고, 교인들을 통해 태국 생활을 배울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이었다.
태국 선교사로 태국어와 태국교회를 배우는 일은 저희들의 몫이었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학교를 접촉해 우리 가족 네 사람의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수속을 하고, 첫 토요일에 뱅콕한인연합교회가 속한 CCT 제6노회가 모이게 되어, 태국말을 한마디도 배우기 전에 3시간 이상 회의에 참석해서 배우고, 사람들의 얼굴이라도 사귀는 일부터 시작하였고, 첫 주일 후 방콕시내 시온교회 기공식과 사모님의 목사 안수식에 참석하기 위해, 초청장만 가지고 그곳 주소를 택시 기사에게 물어 보니 안다고 해서 갔는데, 기사가 정확한 길을 알지 못해 정반대의 길로 가서 늦게서야 찾아가 교회에 도착하니, 행사는 거의 끝나갈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예식을 마친 후 ‘튜타왓’ 노회장님이 집 근처까지 실어다 주셨는데, 신홍식 목사님이 사시던 숙소의 주소도 아직 알기 전이라 한참을 헤매이다가 간신히 숙소에 도착하면서, 태국 생활을 하나씩 이해해 나가게 된 것이다.
다음날 월요일부터 두 아들은 Ruamrudee 학교에 가고, 우리 부부도 UTL 태국어 학교에 가서, 네 식구가 다 학생들이 되어 태국을 배우고, 태국어를 배워 나가게 되었다.
언어 공부를 두 달 과정을 마친 후에, 그간 운전학교에서 배운 면허증을 가지고 신홍식 선배님이 다니시던 8노회 ‘펫부리’ 도의 교회들과 ‘랏부리’ 도의 교회들을 이틀간 순회하며, 태국 교회의 실상들을 이해해 나가게 되었다.
선교사가 태국을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국 교계 지도자들도 선교사의 배경이 되는 한국교회를 상호 이해하는 것이 큰 유익이 되는 것이다.
1977년도에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초청으로 태국 교계 지도자들 50명이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와 오산리 기도원만 보고 돌아오게 되어, 너무 아쉬워 1978년도에도 자비량 여비로 한국교회들을 다시 순방하게 되어, 그들을 도우며 중간 교량 역할울 하고 그들과 서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태국교회 젊은 전도사들을 한국에 보내 일년 이상 혹은, 신학교를 졸업하도록 하기 위해 ‘위라 칸우라’ 전도사와 나중에 ‘타위삭’ 전도사를 한국에 보냈는데, 신학교까지는 못했지만 일년 이상 한국교회를 배우며, 태국교회 지도자로 세워지는데 한 몫을 했다고 본다.
한국 후원자였던 서울남부교회도 태국 교역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비록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서로 이해하는 사간과 기회가 많으면 그만큼 사역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