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리와 김정웅 선교 History 83
<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83) >
갈 바를 모르고!
갑자기 KIM 선교회에서 면직을 당한 태국의 네 가정과, 안식년 중인 한 가정, 곧 바로 파송 받을 한 가정을 포함한 6가정이, 갈 바를 모르고, 후원 선교회도 없이 버려진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모두 돌아가, 후원 교회들을 다시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서울에는 당시 많은 가정을 수용할 만한 선교관이 아직 없던 시기라, 온누리교회 5층 교육관에 이부자리와 베개를 새로 준비하여 합숙을 하며,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랜드의 박성수 사장은 아세안 미션을 통해 선교사와 함께 선교회도 후원하니, 선교비를 나눠 지원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어떤 교회들은 우리들의 후원교회들 중에 든든한 대교회들이 있으니, 동참하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다. 사실 큰 교회라도 월 10만원과, 20만원 정도의 협력 선교를 하는 정도였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온누리교회에서는 이미 파송된 선교사들 보다는, 새로 파송될 막내 정석천 선교사 가정만 후원하게 되었다.
그래도 온누리교회는 우리 한국지구촌선교회(Korea Global Mission /KGM)가 창립하는데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감사를 드립니다.
태국 선교지에서는 현지 선교사들 중심의 선교회를 강조하기 위해 이사회 대신 위원회를 구성하여, 고 김태환 목사를 초대 회장으로 하고, 고 조광채 목사가 서기가 되고, 본부 총무로 정삼지 목사가 우선 내정이 되어, 창립총회를 회장 교회에서 하고, 태국 임지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들을 준비했다.
어떤 선교사는 같은 입장에 처한 인도네시아 선교사들과 함께 행동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본부에 너무 큰 충격을 줄 수 있으니 우리끼리만 하자고 하여 의견을 모았다.
먼저 지방에 흩어져 있던 각 선교사들이 방콕 수도에 모여 교회 개척을 하고, 그 교회들이 성장해 중소도시와 시골교회들을 개척하도록 준비했다.
맨 처음 시작한 교회는 제일 늦게 부임한 박선진 선교사가 ‘랑캄행’에 교회를 개척하고, 김정웅, 양병화 선교사들 가정이 초기에 돕고, 그 다음 부활절에 김중식 선교사가 개척하는 교회는 윤수길, 정석천 선교사 가정이 협력해서 하도록 했다.
CCT에서는 교단만 협력하고, 이미 받은 KIM은 그대로 있으나 일반 선교단체는 받지 않는다 해서, 부득이 신앙 노선이 같은 태국복음주의연맹(EFT)에 가입하고, 우선 KPM의 비자를 사용하기로 했다.
EFT 임원들은 초기에 일부 비자를 우리에게 나눠 주겠다고 했으나, 우리가 사양해 KPM 비자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