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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이야기/선교 강의

대구 동신교회 세계선교 50주년 기념대회

by 임도마 2023. 4. 15.

대구 동신교회는 한국 선교에 있어서 개교회 선교의 최고 모델이며, 예장합동 교단의 평신도 세계선교훈련(LMTC)을 정형화 시키는데 일조한 선교훈련을 최초로 실시했다.

세계선교회를 조직하고 선교를 시작한지 50주년을 맞아 파송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50주년 기념 선교대회를 가졌다.

특별히 대구 동신교회의 최초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 받은 임하미 (1981년 3월 예장 합동, 대구 동신교회, 미국)  선교사는 예천 임씨 33대손으로 부루엔 (Henry Munro Bruen, 1874~1959, 부해리(傅海利) 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경북 성주지역의 선교사역에 함께 동역했던 조부의 신앙을 이어 3대째에 이르러 임씨 가문의 최초 선교사가 되었다.

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복음의 빚을 갚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선교단체를 소개하는 부스 운영 시간 단체 선교사들과 함께 (지피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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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해리는 1892년 장로교 기숙학교인 블레어 홀 아카데미(Blair Hall Academy)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22세 때인 1896년 프린스턴(Princeton)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후 그의 부친과 조부가 졸업한 뉴욕의 유니언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여 신학 공부를 한 후 1899년 졸업하고 그해 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어 미국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에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해 10월 26일 세 번째 선교사로 대구에 도착하여 안의와,장인차 등과 함께 대구,경북 지역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대구는 1899년 5월 1일 한국에서는 4번째로 선교기지인 스테이션(Station)이 공식 개설된 곳으로, 이미 1897년부터 선교기지로서 실질적인 활동을 해 왔었다. 대구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행정,경제,교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선교기지가 개설됨으로써 개신교 선교의 중심지 역할까지도 담당하게 되었다. 
25세 미혼 총각의 몸으로 대구에 도착한 브루엔은 그후 한국식 이름을 부해리(傅海利)로 정하였는데, 이는 그의 애칭인 해리 브루엔(Harry Bruen)에 발음이 가장 가까운 말을 딴 것이었다. 그는 2년 후인 1901년 그의 약혼자이며 동창생인 마르타 브루엔[Martha Scott Bruen, 1875~1930 부마태(傅馬太)]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듬해 5월 대구에 돌아왔다. 그들은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1902년 5월 대구에 온 부해리는 선교사들 간의 경북지방 선교 구역 분할로 경북 서부지방, 즉 김천, 선산, 군위, 고령, 성주, 상주, 칠곡 등지의 선교를 담당하여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외 경산, 영천, 포항 등의 동부지방은 안의와, 안동, 봉화, 영주 등지의 북부지방은 1902년 대구 선교기지에 임명되어 온 바렛[W.M. Barrett, 1872~1956 방위렴(邦緯廉)]이 맡게 되었다.
1903년 부해리 목사는 안의와의 후임으로 대구 제일교회를 담임하였고, 1904년에는 대구 성경학원(聖經學院)의 남자 조사반(助事班)을 맡아 수업을 진행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의료 선교사로 부산에서 활동하던 어빈[Charles H. Irvin, 1862~1933 어을빈(魚乙彬)]과 빈턴[C.C. Vinton, 1856~1936 빈돈(賓頓)] 등과 함께 1916년까지 나환자 선교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12년 1월 경상노회(慶尙老會) 조직에도 크게 기여하여 1913~14년에는 경상노회 7, 8회 노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15년에는 대구 남산교회를 세워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이후 1920년까지 당회장으로 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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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1970년대에 해외선교회 조직하고 지금까지 64명의 선교사 파송
선교집회 비전선포 선교현장체험 등 기념대회 치르며 생명선교공동체 다짐

각자 사역지의 전통의상을 착용한 선교사들이 피날레 무대에 등장했다. 저마다의 언어로 부르기 시작한 찬송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가 어느 순간 한 목소리의 합창으로 변했다. 뜨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열방이 찬송하는 계시록의 감격스런 장면을 미리 보는 듯했다.

대구동신교회(문대원 목사)가 반세기에 걸쳐 전개해 온 해외선교사역의 열매들을 돌아보고, 복음을 위한 더 큰 헌신을 다짐하는 선교50주년 대회가 열렸다.

‘사명을 넘어 생명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는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특별집회, 선교한마당, 비전선포식, 선교사와의 만남 등으로 다채롭게 진행되며 교우들의 선교 열정과 사역의 동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첫날 특별집회에는 선교사들과 미전도종족을 품고 살아온 지난 50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영상물 상영과, 45년 동안 로고스 선교선을 이끌고 전 세계 선교현장을 누벼온 최종상 윤명희 선교사의 은퇴식, 엘살바도르에서 사역을 시작하는 최정환 신재미 선교사의 파송식도 진행됐다.

강사로 참여한 부산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는 이날 ‘기도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한국교회에 기도만큼 중요한 과제가 없고, 기도의 불길이 붙어야만 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면서 대구동신교회가 기도를 통해 더 큰 선교의 결실을 얻게 되기를 축복했다.

이튿날에는 권역별 선교부스에서 해당지역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만나 선교지에 대해 이야기 듣고 간접적으로 현장을 체험하는 기회가 마련됐다. 현지의 먹거리들을 맛보는 선교음식축제, 선교지의 의복을 입고 물품을 사용해보는 열방사진관과 열방상점, 선교사로 파송되는 모든 과정을 실감나게 체험하는 더저니 등의 흥미진진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됐다.

온 종일 선교사들의 선택특강도 이어졌고, 찬양하며 비전을 나누는 선교축제로 또 하루가 마무리됐다.

마지막 날에는 온 성도들에게 세 가지 미션이 주어졌다. 이날 하루만큼은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일예배에 나오며 주변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고, 자신이 생명사역자로 부름 받았음을 고백하는 전 교인 비전선포에 동참하는 것이 두 번째 과제였다. 세 번째 과제는 자신이 속한 그룹과 연결된 선교사를 만나 인증샷을 남기고 대화를 나누는 것. 이 미션들을 수행하며 성도들은 선교현장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대회에 앞서 대구동신교회가 전 세계로 파송한 64명의 선교사들은 가족들과 함께 사흘 동안 대구수성호텔에서 선교사대회를 열어, 각자 사역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축복하며 격려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구동신교회는 1973년 대구동신세계선교회를 창립하고 제1호로 일본에 백병수 선교사를, 제2호로 총회세계선교회 (GMS)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고 김활영 선교사를 잇달아 파송하며 본격적으로 해외선교 사역에 뛰어들었다.

이후 김창렴, 권성수 두 원로목사가 담임목회를 하는 동안 꾸준히 선교 역량이 커져왔다. 그로 인해 선교회 창립 당시 선교사 3가정을 파송하고자 했던 목표는 계속 상향조정되었다.

현재는 파송선교사 34가정, 협력선교사 75가정, 현지인 선교사 20가정을 후원하는 대규모 선교공동체 성장했다.

이 사역을 뒷받침하는데 들어가는 순수 선교재정만 연간 22억에 이른다. 온 교우들이 열성적으로 선교후원에 동참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구동신교회 성도들은 단지 재정에 있어서만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연간 15~20차례에 이르는 단기선교팀 파송사역도 문제없이 감당해내는가 하면, 교회 자체의 선교훈련프로그램과 기도회에도 부지런히 참여한다. 선교회 창립 초창기부터 선교훈련원을 운영하고 자체 선교전문지를 발간하며 교회 전체가 선교마인드를 공유한 덕분이다.

이 과정에서 대구동신교회는 엄청난 보람의 열매들을 맛볼 수 있었다. 선교현장에 교회들이 세워지고, 별처럼 수많은 새 생명들을 얻은 것도 당연히 감사한 일이지만 자신들 품에서 자란 인물들이 선교사로 헌신하고 파송 받는 기쁨이 특히 컸다. 알바니아에 최초로 파송된 이용범 선교사를 비롯해 대구동신교회 출신 여러 선교사들이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맹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파송교회가 없는 선교사들을 허입해 단독 파송하거나, 공동파송제도라는 방식을 활용해 더욱 많은 선교사들을 돕는 데 힘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열심은 뜻밖의 선물을 교회에 안겨주었다. 권성수 목사를 이어 대구동신교회 제6대 위임목사가 된 문대원 목사는 당초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사역하던 선교사였다. 우연한 기회에 대구동신교회가 후원하는 엘피스 장학금으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것이 첫 번째 만남이었다. 또한 얼마 후 파송교회의 후원 중단으로 현장에서 철수할 위기에 처했을 때 대구동신교회를 통해 다시 파송을 받아 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이 만남들을 통해 서로 간에 쌓인 신뢰와 공감이 결국 대구동신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는 길로 연결되었다.

선교현장을 실제로 경험한 담임목사를 통해 대구동신교회의 선교역량이 더욱 역동성을 갖고 성숙해질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한국 땅을 찾아온 유학생들을 선교사로 훈련시켜 자신들의 조국으로 재파송하는 이른바 ‘유동선교’가 문대원 목사가 지향하는 전략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 교회 안에 영어예배, 베트남어예배, 러시아어예배, 중국어예배 등이 이미 개설되어 있으며, 야무진 훈련과정을 거쳐 이미 수십 명의 현지인 선교사들을 파송한 상태이다.'

문대원 목사는 “선교는 특별한 사명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함께 감당할 사역이라는 의식이 공유되도록 더욱 힘쓸 것”이라면서 “기쁨으로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모습이 더욱 크게 일어나는 선교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했다.   -출처: 정재영 기자,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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