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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이야기/선교 강의

선교사로 태어나던 날

by 임도마 2022. 10. 15.

선교사로 태어나던 날_지피칼럼

선교행정연구소/선교 자료   2013-12-17 18:41:40

 

선교사로 다시 태어나던 날

편미선 선교사

  요즈음 남편의 사역의 일부인 카이로스를 함께 하면서 지난 20년간의 선교사역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재점검하는 시간들을 가져본다. 문화 이해하기 내용을 다루던 중 자칫 선교지의 문화가 나의 문화보다 못하다고 생각 할 수 있는 자문화 우월주의를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을 접하다가 문득 20년 전 첫 선교지인 사마르에 처음 도착하여 경험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사마르에 있는 우리들만의 작은 휴양지(?) 말라혹 비치라는 곳이 있다. 그냥 아주 평범한 바다다. 손님들이 오시면 딱히 모시고 가 볼만한 데가 없어 늘 이 말라혹 비치에 모시고 가서 바비큐를 하여 밥을 먹고, 수영을 하고, 가끔씩 고깃배를 얻어 타고 한 바퀴 돌아오기도 하며 기분전환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때도 어김없이 손님을 모시고 그렇게 놀고 있는데, 바닷속 발밑에 코코넛 사이즈만한 둥그런 것이 있길래 말라버린 코코넛이려니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발로 찬 순간 마치 발목이 잘려나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발목을 움켜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끙끙대며 자세히 보니 그것은 코코넛이 아니라 코코넛 사이즈만한 성게였다. 그렇게 큰 성게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너무 아픈 나머지 발목을 들어서 보니 성게가 쏜 침이 내발에 새까맣게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셀 수는 없었지만 한눈에 봐도 족히 몇 백 개는 돼보였다. 아파서 신음하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각자 자신들의 처방을 내리기 시작했다. 누구는 빨리 병원에 가서 박힌 침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많은 침을 뽑아내려면 아마 내 발은 걸레처럼 너덜너덜 해질 것 만 같아 더욱 두려웠다.

남편도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어느 현지인 한분이 남편을 끌고 어디론가 급하게 가고 있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빨리 차를 타고 병원으로 데려가든지 아니면 약을 사러 가야되는데 그 현지인과 남편은 숲속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어이없는 광경이었지만 그 순간 내가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픈 발목을 있는 힘을 다해 잡고 통증을 견디어 내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한 오 분 정도 지났을까 그 현지인과 남편이 병에 노란 액체를 담아가지고 와서 내 발에 부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오줌이란다. 맙소사! 이런 미개하고 지저분한 방법을 현지인이 하라고 한다고 그대로 하는 남편을 어떻게 이해해야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 순간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 발에 박혔던 셀 수 없이 많은 성게 침들이 서서히 녹아서 없어지기 시작하고 금방이라도 잘려나갈 것 같이 아팠던 통증이 신기하게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분명 기적이었다. 그래서 병원도 안가고 약도 안 바르고 남편의 오줌 한방으로 깨끗이 상황이 종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무슨 일만 있으면 현지인들 에게 묻는 버릇이 생기다 못해 현지인들의 말을 맹신 하게 되었다. 자칫 미개한 것처럼 보이는 현지인들의 문화를 무시했더라면 지금의 말끔하게 생긴 내 발은 그 이후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 미개한 방법을 망설임 없이 행하여 준 남편 덕에 아직도 선교지에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내 것(?)도 남편을 위해 쓸 날이 온다면 나도 기꺼이 아낌없이 바칠 것을 굳게 다짐해본다.

"성게한테 쏘이면 병원으로 달려가지 말고 숲속으로 달리는 길이 살길이다."

어느 날인가는 하루 동안에 6차례의 지진을 경험했다. 주일 오전 차를 타고 교회에 가던 길이었는데 길이 꿀렁꿀렁 움직이고, 차가 좌우로 흔들릴 만큼의 큰 지진이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 일 이후 갑자기 섬 생활이 두렵고 싫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좁은 공간에 갇혀서 숨조차 맘껏 쉴 수 없는 답답하고 가슴이 턱턱 막혀오는 느낌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힘겨웠다. 게다가 지진 공포증이라도 걸린 것인지 천정을 보고 똑바로 누워있으면 마치 천정이 무너져 나를 덮칠 것 같고, 책꽂이 옆에 누워 있으면 책꽂이가 나를 향해 쓰러질 것 같았다. 나의 편리함을 위해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그 날 이후로 온통 나를 위협하는 존재들로 변해 버렸다. 기쁨도 없고, 평안도 없고, 내가 왜 이 섬에 까지 와서 살아야 하는지 목적도 희미해지면서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성게 쏘였을 때 현지인들의 기발한 민간요법의 효능을 경험했던 것이 생각나면서 아마 이들에겐 우리가 모르는 지진에 대처하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을 법 하여 용기를 내어 옆집 아주머니 집을 찾아갔다. 아주머니한테 요즈음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혹시 그럴 땐 어찌해야 하는지 방법을 아느냐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소중한 비법을 알려 주었다.

일단 지진이 나면 밖으로 뛰어나와 근처에 있는 코코넛 나무를 꼭 껴안고 있으면 안전하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역시 현지인들의 말이 답이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급하게 감사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 일급비밀을 남편에게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새벽 두 시경 정말로 지진이 났다. 참으로 많은 세월 동안 읽고 또 읽는 성경 말씀은 실천에 옮길 수 없어서 갈등하는데, 아주머니한테 들은 지진에 대처요령은 그 짧은 순간에도 가슴 깊이 새겨졌는지, 자동적으로 몸이 먼저 행동요령에 맞춰 움직여졌다.

잠자고 있는 찬양이를 일단 들쳐 업고 남편을 깨워 빨리 밖으로 뛰어나가 코코넛 나무를 껴안으러 가자고 다그쳤더니 잠자다가 놀란 남편은 상황의 심각성도 못 느끼는지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내 손을 잡으며 ~~~”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나라도 찬양이랑 살아야지 싶어 정전으로 칠흙같이 깜깜한 계단을 더듬거려 간신히 내려온 뒤 밖으로 나가 근처에 있는 코코넛 나무를 찾아 꼭 껴안았다. 한 손은 등에 업힌 딸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잡고, 또 한손은 코코넛 나무를 껴안고 있자니 어느새 지진은 없어졌다. 그리고 그 때 바둥거리며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믿음 없는 한 선교사의 애처롭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보게 되었다.

세상은 변한 것 하나도 없이 고요한데 나 혼자 마치 전쟁을 치른 뒤, 축 늘어진 패잔병의 모습으로 다시 방으로 올라오긴 했는데, 자존심도 상하고, 남편도 보기 싫어서 창고처럼 쓰던 방에 들어가 딸아이를 눕히고 나니 뱃속아래 저 밑에서부터 이유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와 꺽꺽대며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혹시 내 우는 소리에 딸아이가 깨면 얼마나 불안해할까, 잠은 잘 자고 있나 싶어 더듬더듬 얼굴을 만지는 순간 딸아이 얼굴에 눈물이 흥건히 적셔있는게 아닌가!

그 어린 나이에 엄마가 서럽게 우니까 자기도 속으로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본인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부모를 따라 이 곳 까지 와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구나! 어린 딸 아이한테 몹쓸 짓을 한 것 같은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 선교사 훈련받고, 파송예배 드리고, 이 나라 언어 배우고, 그래서 제가 선교사 인줄 알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보니 전 선교사가 아니네요. 그냥 딸 데리고 한국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날이 밝으면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생각하니 파송 받아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보따리 싸서 들어가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생각하니 그것 또한 막막했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더욱 답답하고 서러웠다.

사마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와라이족' 이라 부른다. ‘와라이라는 말은 “Nothing(아무 것도 없다)” 이란 뜻이다. 가난하여 돈도 없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1년에 20여 차례의 태풍이 지나가기도 한다. 심지어 이곳 앞바다에서 태풍이 만들어 지기도 하여 농작물이든 과실수든 싹 쓸어버리는 바람에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워 이곳 사람들은 아예 심지도 않고, 심지 않으니 기대할 열매도 없으므로 계속 가난의 연속인 것이다.

이곳에 도착하여 나도 한때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그래 그렇게 사니 와라이라는 소릴 듣고 살지.” 하며 속으로 비웃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니 나도 어느새 와라이족이 되어버렸다. 믿음도 없지, 기쁨도 없지, 평안도 없지, 감사도 없지, 현지인들을 사랑하기는커녕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 그들을 향한 사랑도 없지, 이것저것 생각하니 스스로 한심하여 그렇게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몇 달 동안 삶의 고뇌 속에 괴로워하느라 못 잤던 잠을 정말 그렇게 맛있고, 달게 푹~ 자본 적이 없다. 푹 자고 늦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이런 깨달음이 생겼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난리를 쳐도 이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여 가는 것이지, 그러기에 내가 믿고, 위험 가운데 몸을 숨길 수 있는 피난처는 오직 그분밖에 없고, 지진이 나면 코코넛 나무를 껴안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을 더 꼭 껴안고 있으면 되지!’ 하는 깨달음이 생겼다.

그리고 너무도 신기하게 마음에 평안이 밀려오고 모든 만물이 신선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눈이 퉁퉁 부어 원래도 작은 눈이라 눈뜨기가 불편한데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오고, 마음에 기쁨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밤새워 기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서러워서 울기만 했을 뿐인데, 내가 지쳐서 잠자는 사이 주님께서 마음을 만지시고, 위로해주시고,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앞으로 벌어질 모든 두려움의 일들을 대비해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는 처방까지 완벽하게 해 주신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아직도 선교현장에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기에 그 날 밤이 나에게는 선교사로 거듭난 밤이라 부르고 싶다. 그렇다! 그날 밤은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전쟁이었고 씨름이었다.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에서 이긴 야곱이 이스라엘로 거듭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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