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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선교 사역/태국 촌부리 선교센터

촌부리와 김정웅 선교 History 91

by 임도마 2025. 2. 23.

촌부리와 김정웅 선교사 (宣敎史 & 宣敎師)

<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91) >

촌부리 센터 건축의 여호와 이레!

멋 있는 센타의 종합계획이 멋진 정림건축에서 세워졌지만 건축회사와 감독할 사람이 필요했다.

목사 선교사인 필자나 우리 선교사 가운데 그럴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이사장의 절친 가운데 시공할 적임자가 있어 사라차Eastern 건축회사가 시공을 맡고 마약 재활원의 직원중 하나가 공사장의 경험이 있어 도우미는 할 수 있었으나, 공사 감독을 할 적임자가 필요했다.

하루는 독일에 있는 따님 집을 방문하고 아들 박선진 선교사의 집에 오셨던 어머니께서 우리 센타를 보시며 깜짝 놀라셨다.

남편이 건축회사를 운영하시다 은퇴를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꿈에 말씀하기를 보름달 같은 곳에서 도우라고 하셨는데, 우리 설계도를 보시며 바로 이곳이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100m 거리에 원형으로 도로가 나도록 설계된 우리 본당 주변 설계도를 보시고 바로 이곳이었다고 하셨다.

그는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고향과 40리 떨어진 곳에 고향을 두신 분으로 평생 관공서와 학교 건축물을 감독하셨던 박재한 아버님을 하나님이 여기에 와서 건축 감독의 적임자로 봉사하라고 꿈에 지시하셨던 것이다.

그런 여호와 이레의 계획이 있으셔서 오시게 되었고, 즉시 센타에 오셔서 기쁨으로 봉사 하시게 된 것이다.

그런 놀라운 계획이 있는 것을 원수 사탄은 미리 알고 기공 예배 전날 손자와 손녀가 동네에서 세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오토바이가 와서 부딪혀 갈비뼈 세대가 부러지는 방해를 놓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 선교사들은 모두 다 방콕에 살고 있는데 69세이셨던 아버님이 다리 하나가 관절염으로 두 달에 한번씩 무릎에서 주사기로 물을 뽑아야 하는 입장에서 아들 며느리가 살림을 챙겨 드리려고 해도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헌 냄비와 그릇만 챙겨 들어 오셨는데, 나중에야 말씀하시기를 다리를 굽혀 세탁하는 일이 제일 힘드셨다고 하셨다.

시간이 많이 지나 초신자이신 그가 성경을 일독하시고 당시에는 단파 라디오에서 한국말은 이북 방송만 들려 향수를 달래곤 하셨다.

그러나 워낙 공사 현장에서 사셨기에 잘 적응하셨고, 일군들이 기계나 트렉터 운전시 빵과 음료수를 사다 주시며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하셨다.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대충 대충하는 것과 성의껏 하는 것의 차이를 아시기에 그들에게 성의를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이것을 알고 나중에는 별도의 예비비를 드려 필요하실 때 자유로이 쓰시도록 배려해 드렸다.

선교사들은 모두 방콕에 살고 있으니 일군들이 흩어져서 일할 때 오토바이를 타고 한바퀴 쓱 돌아다니면 일하는 것들이 다 우리에게 소통되는 줄 알고 일군들은 열심히 일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갑자기 방콕에 있는데 어른으로부터 호출 명령이 떨어졌다.

급히 내려와 보니 식당 옆 물탱크를 만드는데 60톤의 수량을 보관하려면 지금 쓰는 철근보다 훨씬 두꺼운 것을 써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해서 우선 전기선을 끊어 놓고 통역할 저를 부르신 것이다.

큰 공사를 해 본적이 없는 업자가 많은 경험을 가진 노인을 통해 노하우를 배우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식당과 정자 바닥과 교회당 전기 등 많은 부분들에 실제 조언들을 해 주셔서 좋은 공사를 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부족한 전문분야의 일군들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적재적소에 사람들을 붙혀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건축업자는 예수를 안 믿었으나 마지막 감사의 예물로 신구약 가죽 성경을 드렸는데 몇년 후 그 딸이 미국에 다른 공부를 하러 갔다가 은혜받고 사라차교회 목회자가 되고 우리 선한목자 세미나에 잘 참석해 수료도 하게 되어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레네 시몬 가정과 같은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