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97) >
평화의 집과 기념식수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집과 나무를 심고 센터를 잘 가꾸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
처음으로 마약 중독자들의 재활을 위해 평화의 집을 준공하고, 기도의 발전소가 되기 위해 태국인들의 헌금으로 엘리야 기도원 정자를 짓고, 제1회 촌부리선교대회에 참가하신 50명이 50그루의 기념식수를 교회당 앞마당에서부터 차례로 묘목을 심어 예쁘게 가꾸기 시작했다.
당시 경황중에 누가 어떤 나무를 어디에 심었는지 표시를 하지 못하고 심어서 행사를 마치고 나중에야 50명의 참가자들의 명찰을 만들어 임의로 나무에 붙혀두고 나중에 식수한 본래 주인을 찾아 제자리에 붙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이 큰 실수였다. 얼마 후 여수제일교회 고 정성규 목사님 일행이 오셨을 때 본인들이 나무를 심은 장소를 기억해서 가 보니 본인들의 이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동일하게 같이 오셨던 소아과 의사이신 김 집사님의 나무에도 다른 사람의 이름표가 붙어 있어서 속으로 서운해 하실 때, 필자가 상황 설명을 하러 가던 중 벌에 쐬어 자세한 상황을 설명도 하지 못하고 오해가 쌓인 상태로 귀국하게 되었다.
결국 자세한 설명도 못하고 오해만 생기고, 제가 마치 중복 후원을 받으려고 사람들을 속인 것처럼 되어서, 필자는 사실 여수제일교회가 태국복음신학교(TES) 건축에는 후원을 했고, 촌부리센터에는 아직 후원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촌부리 축구장 건설에 후원을 좀 받을까‘했는데, 이 작은 실수로 다 물 건너가 버리고 말았다.
촌부리 선교센터의 대지를 구입하고 공사중일 때, 1989년 3월 하순 50명이 촌부리선교대회에 참가하여 기념하는 나무를 심고, 태국의 마약 환자들의 재활원인 평화의 집 기공식과 예배당 공사 현장을 돌아보고, 파타야에서 교제도 나눴다.
그때 오셨던분들 중에 고 황루디아 선교사, 김태우 목사님과 유중룡 장로님이 페북 친구로 지금도 교제하고 있고, 한금철 목사님 내외분은 코로나 19가 있기 전에는 매년 단기선교사로 촌부리에 오셨다.
기념 식수한 나무와 꽃나무들은 지금도 센터 중앙에 있는 교회 입구에서 촌부리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을 제일 먼저 환영하고, 만발한 꽃잎들로 방문객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젊을 때 친구들을 통해 배운 마약의 즐거움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어서 끊지 못하다가, 평화의 집에서 1년간 함께 생활하며 예수님과 말씀에 녹아 성령 충만을 받게 되어 마약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지금도 각계각층에서 일하고 있는 저들을 가끔 반갑게 만나게 된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은 평화의 집에 직원으로 들어와 섬기던 자들이 지금은 모두 다 신학을 공부하여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을 잘 섬기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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