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47) >
허락 받지 못한 예배당 건축!
‘따꼴랑’제일교회는 좋은 못자리판이 되어 교인들도 잘 되어 나가고, 지교회들도 많이 세워졌지만, 바로 그 다음 ‘쌈엑’교회 예배당은 순조롭지 못했다.
땅을 구입하고 예배당을 세울 언덕위의 전망 좋은 곳을 지정하고 기둥까지 세운 뒤에 문제가 생겼다. 인근 지역들은 일반 땅이 아니라 국경지대인지라, 군사기지로 군인들에게서 일반 사용권만 소유를 허락받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당을 세우려 한 곳이 주변에 절간도 없고, 너무 보기 좋은 곳에 예배당이 세워지게 되면, 불교적인 배경을 가진 군 지휘관들의 눈에 거슬려 여러 가지 이유들로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이 예배당 건축비를 헌금하신 분은 목포제일교회 김유덕 권사님으로, 다른 것도 아니고 24살 먹은 아들이 큰 트럭에 치어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위자료로 받은 금액 중에서 1,500만원을 헌금해 주어서, 모든 자재를 다 사서 건물을 짓는 중간에 이런 문제가 생겨 완성을 못하게 되니, 중간 역할을 하던 선교사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린 헌금이 어떤 헌금인데, 목표 달성을 못하게 되니, 보통 미안한 게 아니었다.
그 후로는 건축헌금을 지원 받아서 시골 예배당들을 지어 주는데, 많은 신경을 쓰게 되고, 가능하면 그런 중간 역할은 사양하는 편이 되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에, 합동측과 통합측이 막 갈라진 후에 장신과 총신 신학생들이 회현동 기숙사에서, 양측 교단의 신학생들이 아직 함께 기숙사를 사용하던 때에 중간 골목에 일신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는 서양교회의 후원으로 예배당을 석조로 잘 지었으나, 별로 부훙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예배당은 성도들이 직접 헌금을 해서 형편에 맞게 건축해야, 비록 시간도 많이 걸리고 좀 허술하더라도 교인들이 더 애착을 가지게 되고, 자라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회현동 기숙사에서 다른 교단 신학교를 다니던 학우 중 한 분을 후에 시카고에서 만나 좋은 교제를 나누기도 했다.
태국에서도 어느 선교부가 한국에서 환갑 잔치 대신 한 교회 예배당 건축비를 헌금하는 운동을 통해 여러 예배당을 건축할 헌금은 지원이 되었으나, 건축할 적절한 교회를 찾지 못해, 잘 아는 교역자들을 통해 예배당을 지어줬으나, 인가가 떨어진 곳에 예배당 건물만 있어서 교인들이 잘 모이지 않았고, 그런 반면에 오래된 교회는 교인들은 많은데 건물이 아직 잘 세워지지 않은 곳들도 있어서, 예배당 건축이 불신자들의 지탄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지원하는 한국 성도들의 입장은 축복받은 것이나, 선교지 교회의 장래를 생각하면 비록 기간이 오래 걸리고 좀 미숙하더라도, 성도들의 눈물과 땀이 들어가야 더욱 애착도 생기고, 부흥하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생선을 사다가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손수 고기를 잡아 계속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윗 왕도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바치기 원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아 금은보화와 필요한 자재들만 잘 준비하고, 아들 솔로몬 왕 시대에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바칠 수 있었다. 건축비보다 기도로 하나님의 허락을 받는 것이 더 우선적인 것을 배우는 기회였다.
‘쌈엑’ 교회도 결국 자기들의 노력으로, 너무 드러나지 않은 곳에 예배당을 지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며, 우리의 욕심과 소망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게 되는 것을 보며 필자의 실패담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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