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46) >
쑤원픙 나와(방주) 교회!
‘랏뿌리’도 ‘쑤원픙’군에 나와(방주) 교회가 우뚝 서 있다.
이곳은 원래 첫 세례자 ‘분르언’ 전 면장님이 딸을 위해 준비해 둔 땅에, 좋은 예배당을 세워 인근 카렌족 노회의 모교회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 전에 동네 안쪽에 미주에서 지원을 받아 짓다가 중단한 방주교회가 먼저 지어져 있다. 저들이 요청한 금액을 전액 지원해 주었는데도 완성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이유인즉, 좀 더 좋은 교육관과 부대시설을 기본 설계와 상관없이 자꾸만 키워 나가니 끝이 안 나는 것이었다.
현재는 케냐 선교사가 된 최동훈 선교사님이 후원자 시절에 이곳을 방문해서 촬영도 했던 곳이다.
그 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예배당을 짓는데도, 이전과 비슷한 상황이라 끝이 안 나고, 계속 필요에 떠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결국은 태평양 해외 봉사단과 안산 동산교회 박 선교사님까지 동원되어서야 어느 정도 완성이 되고, 주변에 교인들이 모여 신앙 공동체가 이뤄진 것이다.
정동구 박사님 일행이 맨 처음에는 촌부리 선교센터에 오셔서, 이곳을 소개해 드렸는데 별로 신통해 하지 않으시더니, 나중에는 그곳에 정이 들어 이제는 그곳만 계속 방문해서 활동하고 촌부리는 더 이상 오지 않으시는 것이다.
정동구 박사님은 남포교회 집사님으로, 한국 올림픽 역사의 한 획을 그으신 분이시다. 한국인으로는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레슬링 양정모 선수의 코치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일약 스타가 되신 분이 귀국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한국도 체육대학을 세워서 비 인기종목들을 중심으로 맹훈련을 할 수 있도록 체육대학교를 세울 것을 제안하시고, 한국체대의 첫 학장이 되셔서 한국의 올림픽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드신 분이시다.
‘짜런 파찌’ 목사님의 둘째 아들 죠이도 어릴 때 미얀마의 유명한 복음 가수의 노래들을 즐겨 들었는데, 후에 그 가수와 결혼해서 현재는 내외분이 부모를 도와 열심히 봉사하게 되었고, 장인이 함께 오셔서 청소년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예배 시간에 현악기 연주가 함께 하는 예배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게 되고, 영어 지도도 잘해서 국제적인 지도자 훈련도 시켜 나가고 있다.
저희 가정과는 지난 44년간의 오랜 끈끈한 정으로 형제처럼 지내며, 매년처럼 금년에도 미얀마 국경지대의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딴 석청을 4병이나 선물로 보내와서 감격하며 먹고, 새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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