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를 통한 의사소통
선교행정연구소/선교 자료 2016-06-26 23:02:48
선지자를 통한 의사소통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기중심에 빠져 사명을 망각하게 되고, 이들을 깨우기 위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그들의 예언과 삶을 통해 그들을 깨우신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의사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라.”(사11:9)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사19:25)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리라.”(사25:6)
다신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은 한 민족과 그들의 영토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의 만물에 대한 통치자로서의 야훼/여호와(Yahweh)에게 그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사사 입다(Jephthah)는 암몬 자손들과의 영토 논쟁에서
“네 신 그모스(Chemosh)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삿11:24).
입다는 암몬 족속 누구도 지난 300년간 그 땅을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을 지적한다.(삿11:25-26). 암몬 자손들이 자기들의 영토임을 주장하면서도 돌려받지 못함은 그 민족의 어떠한 신들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신학적 주장이 제기된다. 시리아 왕의 신복들이 그 왕에게 자신들의 군사적인 열세를 합리화 하려는 “저희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저희가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왕상20:23)라는 주장도 그러하다.
다가올 바벨론의 포로는 여호와의 패배로서 간주될 것에 이사야는 불만을 예견했다. 바벨론에 의한 유대 민족의 패배와 차후에 있을 그 나라에서의 추방은 자기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절한 배교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분노하며 말했다.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 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사42:24-25)
출애굽 시기부터 이사야 40-55장(일부 학자는 제2의 이사야의 글로, 또는 기원전 5세기 바벨론 포로 이후 익명의 저자의 글로 봄) 시기까지의 이스라엘의 선교 사명이 단지 구심적인(중심으로 모이는) 것이지 원심적인(중심에서 퍼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사야 40-48장을 통해 이사야 선지자는 살아있는 신 여호와와 그 밖의 신들을 비교하여 그 신들이 얼마나 가치 없는가를 조롱한다.
이사야 41:21-29절에는 신의 소원과 요구를 전하는 자들인 이방인의 우상 신들이 그들에게 존재하고, 이사야 46-48장은 유명무실한 바벨론의 신 바벨론(Babylon), 벨(Bel), 마르둑(Marduk), 바벨론 황실의 신으로서의 느보(Nebo, 왕 Nabopolassar의 이름에서 옴)왕이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왕의 정복으로부터 도망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심판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이때 우상을 싣고 가던 마차가 넘어져 그 신들은 땅에 떨어졌다. 선지자는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 신들에 대해 그들을 조소했다.
이사야 44:9-19절은 우상에 대한 허망함을 나타내는데, 우상의 절반은 땔감인 나무이며 그 나머지는 허상이다. 그 신들은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고, 무지하며, 숭배자들을 돕지 못한다.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사40:18) 그 신들은 대결할 수 없는 분에 대한 도전이다.(사44:7)
종의 노래에서 종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방의 빛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을 섬기는 봉사자로 성직자 왕국이란 소명을 받은 민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었다. 이 주제는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라”(사42:6)는 선언에서 종의 역할은 절정에 이른다. 그 사명은 영적 임재이지 정치적 임재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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