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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행정 연구소/베트남 정보

베트남 선교 백서 II

by 임도마 2024. 12. 5.

베트남 선교백서 제2권

(20016월 VDF 발행)

 

    - 목 차 -

. 백서를 열며

-권두언

-2001년 백서 안내글

-1998년 창간호 요약

 

. 베트남과 선교

-베트남 이해

-선교역사

-현지교회 동향

1. 공인 교회

2. 비공인 교회

-선교 사역의 현장

1. NGO

2. 교회 개척

3. 학원

4. 음악, 찬양

5. 현지교회 협력

6. 문서, 정보

7. 현지 지도자 양육

8. 의료 및 특수사역

9. 교육

10. 소수종족사역

11. 한인교회

-베트남 단기선교의 제 형태

 

. 백서를 닫으며

-선교제언

1.선교후보생들에게

2.후원자 및 후원교회들에게

3.교단 본부 및 선교단체들에게

-맺음말

 

부록 . VDF 소개

. 인도차이나 한인선교사 대회 자료(일부)

. 각종 발표자료 모음

. 참고 사이트, 문헌, 자료, 논문 목록

. 베트남어 찬양

. 소수종족 복음화 정보

. 편집후기

 

 

-. 2001년 백서 안내글

1998년 처음 선교 백서를 창간할 때는 베트남 선교에 대한 실상을 올바르게 알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조급하게 발간되었다고 한다면 2001년 증보판에서는 이제 막 10돐을 맞이하며 베트남 선교 1세대를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베트남 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동역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보다 더 실제적이고 도움이 되는 선교 자료제공을 하기 위한 것과, 백서를 출간하며 우리 스스로 이곳에서의 10년 선교역사를 정리해보며 잘못된 사역을 바로잡고 새로운 베트남 선교 전략과 사역을 준비하도록 충고가 되어질 백서를 출간하고자 다짐했습니다.

이런 다짐은 증보판 백서의 내용을 결정하고 준비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출간의 다짐에 따라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 제공과 현장 사역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알리기 위해 본서는 전체 3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부에서 백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글과 창간호의 요약을, 부에서는 베트남 국가이해를 돕기 위해 이론 중심이 아닌 실제 뉴스를 중심으로 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일반적인 면을, 또한 베트남의 복음적인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실 수 있도록 베트남 선교역사와 현지 교회의 동향을 공인교회와 비공인교회로 나누어 다루었고, 역시 베트남 선교의 실제적인 선교 상황이해를 위해 사역 현장을 중심으로 한 사역 사례들로 이루어 졌으며 이와 아울러 최근 많은 단기선교팀들의 베트남 방문에 따른 올바른 지침서가 되도록 단기선교의 형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부에서는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의 입장에서 한국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드리는 제언을 담았고, 마지막으로 선교지와 선교사, 그리고 선교를 이해하고 실행하는데 도움이 될 많은 자료들을 부록으로 첨가해서 실어 두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백서 발간 노력은 베트남 선교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선교를 함께 동역해 나가는데 있어서 보다 더 효율적이며 실제적인 동역을갈구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누구나 또 무엇이든지 선교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함께 공유하고 나누어 가진다는 마음으로 이 백서를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위원

 

. 백서를 열며

-. 1998년 창간호 요약

1. 베트남 선교백서 창간호 발간목적

베트남에 거주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저희들은 한국교회에 이곳의 실정을 바로 알려 한국 교회가 베트남 선교를 보다 바르게 보다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공산 사회주의 체제 국가인 현지의 특성상 이곳의 실정을 쉽게 공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여러 교회 및 선교단체들간의 중복되는 사역들 그리고 특수한 지역 특성을 무시한 채 가시적 업적을 많이 쌓으려는 조기성과에 집착하는 자들의 과다한 경쟁으로 인한 엄청난 부작용들이 오히려 선교의 역기능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우려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베트남을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 회원들은 베트남 현지 상황과 선교의 원리 및 전략을 세워나가기로 합의하고 이 글을 작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 창간호 내용

창간호는 약 130페이지 분량에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강의 목차와 그에 따른 내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베트남의 일반적 상황: 베트남의 일반 역사, 행정조직, 해방 후의 남북관계, 베트남 방문을 위한 기초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2) 경제: 도이머이 정책 시행 이후 베트남의 경제 변화들을 항목별 연도별로 분류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3) 생활조건: 사회문화적인 부분, 사회보장제도 및 교육제도, 신문, 방송, 잡지, 라디오와 TV등 메스미디어와 국민성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4) 교육 및 교육제도: 이 장에서는 교육의 역사를 왕조시대 식민시대로 구분하여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였고, 교육정책과 현황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으며, 한국인 유학생 현황도 약간 언급하고 있다.

5) 베트남과 한국과의 관계: 한국군의 월남참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이 한국을 따이한-남쭈띤-한꾹이라고 부르게 된 배경을 통해 양국간의 관계변화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6) 종교: 베트남의 대표적인 6종류의 종교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불교, 유교, 까오다이, 호아하오, 도교, 천주교가 기록되었다.

7) 현지 교회 상황: 33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해서 공인교회와 가정교회를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기독교 선교역사부터 시작해서 외국인들을 위한 교회의 모임과 이단종파 교역자들 숫자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성경보급 실태와 10여개의 해외 선교단체 현황도 기록되어 있다.

8) 선교를 위한 일반적인 준비 및 접근 방법: 현행법률 규정과 시행세칙들을 들어서 선교나 전도를 하는 자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정부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다. 비자 취득방법, 언어 습득방법, 그리고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방법과 현지 물가 동향 및 외국인 체류비용들도 기록하고 있다.

9) 다양한 사역사례 및 기타 방법: 공개적인 사역과 비공개적인 사역으로 나누고 있다. 전자는 교육사역, 의료사역, 컴퓨터 사역, 신용협동조합사역, 장애자 사역이 있으며, 후자는 제자훈련사역, 전도훈련 사역, 문서사역, VCM사역, 교회증축지원, 가정교회사역, 교회음악사역, 어린이 전도 사역, 산업선교사역으로 나누고 있으며 기타사역으로 방송선교사역을 들고 있다.

10) 미전도 종족 현황: 소수종족현황과 선교상황을 도표로 설명하고 있다.

11) VDF의 전략과 맺는 말: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적절하지 못한 선교정책과 중복투자와 과도한 경쟁으로 힘을 소진하는 일이 없도록하며 현지인을 우리의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던 것처럼 우리의 섬김의 대상임을 인식하고 이들 교회가 자립 자취 자전하며 세계선교에 동참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VDF회원 모두는 하나의 공동의 소명감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다.”는 내용으로 선교백서창간호를 마감하였다.

 

. 베트남과 선교

-베트남 이해

일반적인 베트남의 정보 사항은 기 발행된 많은 책자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또한 베트남 선교백서 제1권에서도 충분히 소개되었다.

여기 제2권에서는 베트남을 보다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종교, 인도차이나와 베트남의 각 분야별로 발생한 뉴스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 정 치

1) 행정조직 (호치민)

3개 특별시의 하나로 중앙 정부로부터 자치권 인정

시 행정구역 : 18District로 구성-각구 구인민위원회(구청) 소재

 

2) 정치조직 (호치민)

(1) 인민의회 (The People's Council)

구성: 지방 인민의 선거로 선출된 임기 5(99.11-2004.11)의  의원 85명으로 구성

기능: 인민위원회와 인민재판소위원 선출 및 감독

(2) 인민위원회 (The People's Committee)

구성: 인민의회에 의하여 선출된 위원장(시장), 5명의 부위원장(부시장), 19개국(Department), 12개 특별위원회와 방송국, 연구소등 8개 특별 기관 및 시소속 국영기업으로 구성

기능: 최고 집행기관

담당: 계획, 투자 및 농업 담당, 도시계획 및 교통 담당, 사회.문화 담당, 사회 및 과학기술담당, 무역.재정.금융 담당

(3) 시공산당

조직: 당서기와 1명의 당 부서기, 51명의 집행위원으로 구성된 시당 및 18개 구(District) 당위원회로 구성

기능:주요 정책의 수립, 시전체 행정 조직을 감독하는 실질적 최고권력기관

 

3) 기타기관

(1) 중앙정부 사무소

17개 중앙독립부서가 남부 지역을 총괄하는 차관 또는 국장급의 상설 사무소 및 연락 사무소를 호치민시에 설치

(2) 호치민시 조국전선위원회 (Fatherland Front)

조직: 1941년에 설립된 항불 독립운동 단체인 Viet Minh 후신으로 사회 각 계층 및 종교 단체 대표자로 구성

기능 : 공산당의 외곽 조직으로 당 정책 지원 및 정책 건의

(3) 호치민시 우호친선협회 (Union of Organization for Peace, Solidarity and Friendship)

조직: 위원장 및 14명의 부위원장

기능: 외국과의 우호 증진을 위한 각종 친선협회 업무 관장

(4) 국제기구 UNDP, UNICEF, UNHCR, IOM, RED CROSS

호치민시에는 외무성 사무소를 비롯 17개 정부부처 사무소가 상주(차관급)하고 있으며, 주요사안을 제외하고는 하노이 정부에는 형식상 통보를 한 후 호치민시장이 모든 사안을 결정함. (천만불이하 외국인 투자허가등)

 

4) 정치 핵심

그러나 공산당 1당 체제임을 감안할 때 호치민시 공산당이 정책결정에 중요한 Key를 쥐고 있으며 시장, 부시장등 시 고위 관계자들은 시 당 고위 간부인바, 시와 당의 의견이 일치하게 되어 있음.

한편 호치민시는 샌프란시스코, 오사카, 부산시 등 외국 도시와의 자매결연을 맺고 있음. 호치민시와 부산시간의 자매 결연 체결이후에도 양 도시간의 실질적인 경제문화교류 촉진에는 크게 기여치 못하고 있는 실정임.

 

베트남 신임 당서기장 개방외교 본격화

지난 22일 베트남의 새 지도자로 선임된 농득만 공산당 서기장이 비공산권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를 만나고 5월초에는 파키스탄의 군부 지도자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을 초청하는 등 개방외교를 본격화하고있다.

개혁성향의 지도자로 국내외의 기대를 모으는 농득만 서기장은 25일 오후 당초 예정에 없던 탁신 총리와의 회담을 기꺼이 응하는 등 격의없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판반카이 총리의 초청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탁신 태국총리는 당초 농득만 서기장과의 면담 일정이 없었으나 갑작스런 요청이 받아들여져 비공산권 지도자론 처음으로 농득만 서기장을 만나는 영광을 차지했다.

농득만 서기장은 또 53일부터 5일까지 무샤라프 장군을 공식으로 국빈초청했다. 무샤라프장군은 지난 9910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아직도 행정수반으로 독재를 하고있는 파키스탄의 실권자다. 공산주의 베트남이 이러한 무샤라프 장군을 초청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있다.

한편 농득만 서기장은 22일 서기장 당선이 확정된 뒤 전당대회의 초청 손님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카타미 시판돈 라오스 국가원수, 후진타오 중국 부총리,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 공산권 지도자들을 만났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4/25)

 

베트남-쿠바 사회주의 협력관계 증진 다짐

베트남과 쿠바가 사회주의 협력관계를 다짐했다지상에서 전통적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국가중의 하나인 베트남과 쿠바는 23일 하노이에서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3일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펠리페 페레즈 로케 쿠바외무장관은 이날 하노이 정부 게스트하우스에서 응웬지니엔 베트남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지역과 국제관계에 있어서 두 나라가 지금까지의 협조관계를 더욱 강화해나가자고 다짐했다. 응웬지니엔 장관은 베트남의 도이머이(개혁)정책과 공산당의 방침, 개방 등에 대해 설명하고 '베트남은 사회주의에 근거를 둔 개방정책을 추구하고있다'고 강조했다.

쿠바와 베트남은 지난해에도 천득렁 베트남국가주석이 쿠바를 방문하는 등 가장 가까운 우방관계를 유지하고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2/24)

 

푸틴, 베트남과 우호분위기 조성에 주력

러시아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은 전형적인 차가운 인상과는 달리 일반인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친근분위기 조성에 주력하는 듯한 인상. KGB출신으로 항상 웃지않는 차가운 인상이 트레이드마크인 푸틴은 베트남방문 이틀째인 1일 정상회담과 요인방문때만 해도 전형적인 인상을 유지했으나 마지막날인 2일 시내관광과 레카피유 당서기장 방문, 러시아문화궁전 연설 등에서는 시종 미소를 보이는 등 전혀 다른 인상을 보였다.

이날 오전 9시 이틀간 묵었던 하노이대우호텔을 나선 푸틴대통령은 로비에 환송나온 김태순 대우호텔상무, 김재주 대우건설이사 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꽃다발을 받고는 미소와 함께 '스파시바'(감사합니다)를 연발했으며 도열한 직원들에게는 리무진에 오르기전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영웅기념관과 호치민기념관 호치민의 집 등을 둘러보고 한국의 성균관격인 문묘를 관광한 푸틴은 서방 관광객들과 악수를 하며 사진촬영을 하는 여유도 보여주었다.

지난해 클린턴 대통령과 언쟁(?)을 했던 레카피유 공산당서기장과의 면담에서도 푸틴대통령은 시종 미소를 띠며 환담했고 마지막일정인 러시아문화궁전에서의 연설에 앞서서는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기도했다.

30분간의 연설을 끝낸 푸틴은 이어 마련된 공연에서 어린이들이 러시아노래를 부르자 함께 따라불렀고 이를 본 사회자가 합창을 권하자 옆에 앉은 응웬만컴부총리와 농득만국회의장의 손을 잡고 합창을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푸틴대통령은 무대위의 어린이 합창단으로 걸어가 함께 사진촬영을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해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 연설과 공연은 모두 베트남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돼 푸틴의 전혀 다른 모습이 베트남인들에게 비쳐지기도했다. 이를 지켜본 한 베트남 고위공무원은 '막판 인권문제로 베트남 관계자들과 의견차이를 보인 클린턴과는 달리 푸틴은 친근분위기 조성으로 점수를 땄다'고 평가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3/02)

 

베트남 소수민족,공장파업.등교거부 계속

지난 2월 대규모 반정부 소요를 일으킨 중부 산악지방의 소수민족들이 아직도 공장에서 작업을 거부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거부하는 등 지난해부터 무려 5개월여동안 투쟁을 계속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노동연맹이 발간하는 노동신문은 최근 '중부산악지방의 일부 분리주의자들이 5개월째 공장에서의 생산활동을 거부하고있으며 자녀들의 학교등교조차 거부하고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처음으로 소요를 일으킨 소수민족들을 '분리주의자'로 지칭하면서 '이로인해 중부 지아라이와 닥락성 등에서는 쌀을 비롯한 생필품이 떨어져 주민들이 곤경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한편 30일 지아라이성을 방문한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원인 팜테듀엣은 이 지역의 화합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지방성장들에게 지시했다. 듀엣은 이날 '이들이 같은 국민으로 돌아올수있도록 쌀 등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학교수업이 이루어지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요구했다.

주로 기독교신자들인 중부산악지방의 소수민족들은 정부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소수민족들의 생활 근거를 박탈했다고 주장하며 연초부터 반정부 시위를 벌여왔다. 이들은 또 현지 학교들이 베트남어만을 강요하는데 반발, 학교에서 소수민족어도 가르칠것을 주장하며 학생들의 등교를 거부하고있다(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3/31)

 

미국-베트남 '미완의 화해'

냉전 시절 미국은 두 가지 종류의 전쟁을 치렀다. 소련과는 핵무기를 바탕으로 한 공포의 균형으로 평화 아닌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제3세계 국가에선 공산세력의 확대를 막기 위해 직접 전쟁에 개입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목적은 '대국(大國)으로서 신뢰성 유지' 였다. 동남아에서 공산주의를 막지 못하면 국제정치 전반에서 미국의 지위가 흔들릴 것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인들은 베트남전쟁이 민족해방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수십년 동안 제국주의 외세와 싸워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전쟁이 아니라 '미국전쟁' 이라는 표현을 쓴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어디까지나 미국이며 자신들은 이에 항거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1975430일 사이공이 공산군에 함락됨으로써 베트남은 통일됐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3백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국토는 황폐화했으며, 경제는 파탄상태였다. 20년이 지난 95년 수교(修交)로 베트남과 미국 관계는 정상을 찾았다.

미국 역시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국가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으며, 엄청난 물적. 인적 손실을 입었다. 35백억달러라는 막대한 전비(戰費)를 소모했으며, 58천명의 병사가 전사했다.

베트남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뢰 350만개와 30t에 달하는 불발탄으로 매년 2천명이 목숨을 잃는다. 특히 고엽제 피해는 심각하다. 미군은 작전에 방해가 되는 정글을 제거하기 위해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이 함유된 고엽제 2천만 갤런을 쏟아 부었다. 이로 인해 국토의 7분의 1이 오염됐다. 고엽제 피해자는 1백만명이나 되며 이 가운데는 선천성 기형으로 태어난 15만명이 포함돼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 빌 클린턴은 대학생 신분이었다. 그는 징집을 피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로즈장학생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클린턴은 런던에서 베트남전쟁 반전(反戰)데모를 주도했다. 훗날 미국대통령이 된 클린턴은 베트남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94년 대()베트남 경제 제재를 해제한 데 이어 이듬해 정식 수교했다. 지난 7월엔 무역협정을 체결해 본격적인 경제협력의 토대를 마련했다. 지난 1619일 베트남 방문은 클린턴이 자신의 임기 중 추진해온 베트남문제 해결을 마무리짓는 데 의미가 있다.

하노이대 연설에서 클린턴은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순 없어도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는 감동적 연설로 양국의 협력관계 유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베트남에 저지른 잘못은 사과하지 않았다. 클린턴의 베트남 방문에 냉소적인 미국 내 보수세력을 배려한 것이다. 클린턴의 베트남 방문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베트남이 진정으로 역사적 화해를 이루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자료출처: 중앙일보, 발행일: 2000/11/19)

 

-베트남 새로운 파트너관계 정립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양국관계를 '적에서 동지'로 바꾼 매우 성공적인 방문이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미국과 베트남은 95년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지난 7월에는 무역협정에 서명하는 등 관계정상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으나 고엽제 피해자들을 포함한 전쟁보상문제와 인권문제 등으로 여전히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클린턴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으로 과거문제는 깨끗이 청산되고 양국관계는 미래를 위한 새로운 파트너관계로 바뀌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17일 하노이국립대학에서 학생과 시민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과거는 잊어서도 안되지만 얽매여서도 안된다'고 주장하고 '새 세기를 맞아 베트남과 미국은 새로운 파트너가 되어 상호협력하고 발전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더글러스 피터슨 베트남주재 미국대사도 클린턴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방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종합평가를 하는 기자회견에서 '베트남국민들의 환영행렬만 봐도 이번 방문의 성과를 잘 알수 있다'고 전제하고 '미국과 베트남은 앞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협력해 나가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베트남 국민들의 클린턴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미국은 물론 베트남 관계자들까지도 놀랄 정도였다. 베트남의 정부와 언론은 클린턴대통령의 방문을 애써 높이 평가하지 않으려는 인상을 보이며 보도와 홍보를 자제했음에도 불구하고 16일 자정이 가까운 거리에는 수천명의 인파가 몇시간을 기다려 클린턴 대통령의 역사적인 하노이 도착을 박수로 맞이했다.

17일과 18일 클린턴대통령이 가는곳마다에는 수천 또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클린턴 관광'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기기도했다. 대부분이 30대 이하의 전후세대들인 이들은 미국을 전쟁에서 맞싸운 적으로 보다는 베트남을 도와주는 후원국으로 평가하고 있었으며 이직도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는 미 대선에서 현집권당인 고어가 이겨야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할 정도로 클린턴에 대한 호감은 대단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분위기는 쩐득렁대통령, 판반카이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이어져 양국지도자들은 인권문제를 제외한 모든 문제에 있어 의견을 같이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베트남의 모든분야에 걸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렁대통령과 카이총리는 지속적인 개혁과 개방을 다짐했다.

클린턴은 또 고엽제 피해자를 포함한 전쟁보상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으며 현재 진행중인 지뢰등 폭발물제거작업에도 더욱 많은 지원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예상했던대로 양측은 인권문제와 정치및 종교의 자유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해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뉴스, 발행일: 2000/11/19)

 

클린턴 베트남 방문 특집 -현안과 전망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는 전쟁보상문제와 인권문제가 가장 큰 현안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먼저 베트남의 인권과 종교자유문제를 거론하면 베트남도 도의적인 차원에서의 전쟁보상 문제를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이는 양국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문제는 아니면서 마지막 목표를 위해 겉으로 내세우는 것들로 서로의 입장이 달라 자칫 심각하게 부딪힐 가능성도 없지않다.

그 중에서도 미국이 내세울 것으로 예상되는 인권과 종교자유는 베트남으로서는 매우 거북한 문제중의 하나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각종 인권단체 보고서나 유엔과 미국내 의회보고서 등을 통해 베트남의 인권문제를 지적해왔고 올들어 하원은 베트남인권에 관한 공개질의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특히 이 질의서에서 미국은 베트남의 공산당 일당제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4조를 인권위반이라고 지적하며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 베트남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미국의 인권보고서는 베트남내에는 아직도 많은 정치범들이 있으며 많은 인민들이 인권을 유린당하고 국영업체 근로자들도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또 최근들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인권단체들은 베트남의 불교와 기타 종교관계자들이 선교의 자유를 제한 받고 있으며 법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비난하고있다.

미국의 인권단체와 정치인들은 클린턴의 베트남 방문에 앞서 반드시 이 문제가 거론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서 포로생활을 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과 일부 참전군인들은 베트남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사과를 해서는 안되며 인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모든 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방문 이틀째인 17일 하노이국립대학에서 이 문제를 포함, 베트남 방문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을 피력할 예정인데 이 연설내용에 따라 이후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수 있을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미국의 인권문제에 대비, 전쟁보상문제를 집중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달 쿠바에서 열린 세계민주변호사협회에서 전쟁보상문제를 들고나온 베트남은 최근 응웬지니엔 외무부장관이 국영 베트남통신과의 회견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니엔장관은 '베트남은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히고 '-베트남 관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인간적이고 도의적인 차원에서의 보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뿌린 고엽제는 지금도 베트남에 암을 비롯한 많은 질병을 안겨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안에 대해 양측은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인권문제를 종래 취급했던 범위 안에서 최소한으로 언급하고 대신 전쟁보상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아직도 고엽제에 대한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보상 방법은 협의가 진행돼야 명확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미군에 주어지는 보상에 준할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으며 보상대상 등은 양측관계자들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엽제가 아닌 일반적인 전쟁보상문제는 역시 미국기업인들의 베트남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베트남 상품에 대한 미국내 장벽철폐 등 경제적인 지원으로 상쇄될 전망이다. 베트남 역시 전쟁보상은 양국간의 관계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수차례 언급해 왔기 때문에 미국이 경제협력에 적극성을 보이면 지나친 요구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뉴스, 발행일: 2000/11/15)

 

2. 경 제

1)  주요경제지표

(1) 전국

1인당 GDP : 372(99) / 400(2000)

GDP : 285.16(99) / 311.02억불(2000)

GDP 성장률 : 4.8% (99) / 6.7%(2000)

산업생산 증가율 : 10.4% (99) / 15.7%(2000)

물가상승율 : 0.1% (99) / 1%(2000)

(2) 2000년 무역

수출 : 143.08억불(전년대비 24%증가)

수입 :152억불(전년대비 30.8%증가)

(3) 호치민 지역

1인당 GDP: 1,365(2000)

GDP성장율: 지난 5년간 연평균 10.2%증가

산업생산증가율: 지난 5년간 연평균 14.2%증가

인구: 5,037,150(99.4. 인구센서스) , 실업율: 7%(2000)

(4) 2001년도 주요 경제운용목표

GDP성장률 : 7.5%

총투자율 : GDP30%

수출증가율 : 16%

외국인투자유치 : 20억불

ODA 자금획득 : 17억불

인플레 : 5%미만

(5) 통계

환율 : 변동환율제 $1=14,280VND (2000년 평균)

인구 : 76.8백만명(99년말 추계) 인구증가율 : 1.8%

평균수명: 68(98) 실업율: 7.4%(99) 문맹율: 10%(99)

 

2) 경제 분석 및 전망

(1) 2000년도 분석 :

2000년도의 커다란 환경적 변화는 지난 수년간 교착상태에 있던 베트남-미국간 무역협정이 드디어 타결되어 7.13 양국정부간에 정식서명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음. 이를 계기로 그간 침체되었던 외국인투자 및 국내투자가 후반기부터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음.

베트남 정부는 국내투자촉진을 위해 2000.1부터 "Law on Enterprises(회사법)"을 제정시행하고, 2000.5에는 그간 외국투자가들의 불만이 제기되어 온 "외국인투자법"의 몇 가지 문제조항을 개정하여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위한 노력을 기울임.

2000년도 베트남의 총수출은 베트남산 원유수출가격 대폭상승, 미국EU에 대한 수산물 가공식품 수출시장확대, 섬유제품수출 호조, 외국인투자기업 수출등대 등에 힘입어 전년대비 24% 증가한 143억불에 달하였으며 총수입은 전년대비 30.8%증가한 152억불로서 8.9억불의 무역적자를 보여 비교적 안정적인 국제수지균형을 시현하였고, GDP성장율도 당초 목표 6%를 초과한 6.7%를 달성함.

 

(2) 경제 전망 :

베트남정부는 작년도에 당초 목표치를 능가하는 기대이상의 경제성장을 달성함으로써 금년도 베트남 경제운용 전반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음.

베트남-미국간 무역협정은 금년 하반기에는 양국 의회의 비준을 거쳐 효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작년 말부터 대만한국동남아 등 미국시장에 진출코자 하는 주요 외국인투자가들의 베트남에 대한 투자 관심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음. 또한 베트남이 지속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상당기간 정치적 안정을 기할 것이라는 확신에 따라 미국, 프랑스, 호주 등 선진국기업들의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

이에 따라서 외국인투자가 작년도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국내경기도 호전될 것으로 전망됨.

베트남 정부는 새로운 21세기진입을 계기로 2001-2010년간의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현재 1인당 GDP $4002010년도까지는 두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2001-05년간 연평균 7%이상의 성장률 달성을 목표로 설정함.

 

3) -베트남 무역협정체결이 지닌 의의

2000.7.13 .베트남 양국간 정상교역을 위한 무역협정이 체결되었음. 비록 양국 의회의 비준을 거쳐야 하는 단계는 남아있으나 양국간 무역협정은 미국과 베트남이 종전후 25년간의 적대관계가 종식되고 양국간의 경제관계가 완전 정상화되어 미.베 양국간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관계를 이룰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음을 뜻하고 있음. 한편 동 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베트남 상품은 그 동안 미국진입시 가장 큰 장벽이었던 일반관세보다 약 40~70%정도 높은 특별관세가 해제됨으로써, 세계 최대 소비시장과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파트너를 끌어드릴 수 있게 되어 향후 경제개발을 가속화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게 되었음.

베트남의 국.내외 기업인들은 베트남이 국제 경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함에 따라 향후 WTO 가입노력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WTO 원칙에 부합되도록 베트남의 경제.무역정책이 많이 변해야 할 것이며 베트남 국내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기업부문(Private Sector)의 집중적인 육성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음.

  (1) -베 무역협정 주요내용

Chapter 1 : 상품교역(Trade in Goods - Industrial and Agricultural)

교역권리(Trading Right)

최혜국대우(MFN : Most-Favored Nation Treatment)

관세인하(Tariff Cuts)

비관세조치(Non-Tariff Measures)

수입허가(Import Licensing)

관세평가 세관수수료 (Customs Valuation and Customs Fees)

기술규격, 위생조치 (Technical Standards and Sanitary Measures)

 

Chapter 2 :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

특허 및 상표권보호 : TRIPs와 같은 수준으로 12개월간 보호

저작권 : TRIPs와 같은 수준으로 18개월간 보호

 

Chapter 3 : 서비스 교역(Trade in Service)

법률부문 : 100% 외국인 단독투자 허용

회계부문

건설부문

엔지니어링 부문

컴퓨터 및 관련부문

광고부문 : 합작투자 허용

시장조사부문 : 합작투자 허용

관리 및 컨설팅부문: 합작투자 허용

통신부문 (기본적으로 WTO 기준에 의거)

유통부문 :- 도매점: 3년후 합작투자 허용

교육부문 : 합작투자 허용

금융서비스부문(서비스협정-GATT에 의거)

관광 및 여행 관련

 

Chapter 4 : 투자(Investment)

금융이전

무역관련투자조치 (TRIMs)

내국민대우

투자기업에 대한 감시 철폐

합작투자기능

가격차별 철폐

 

Chapter 5 : 투자 촉진(Business facilitation)

미국민의 자유로운 비즈니스 활동 보장

 

Chapter 6 : 투명성(Transparency)

무역협정 내용을 보다 투명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포괄하는 법률, 규정 또는 기타 행정명령으로 제정 및 공표

무역협정 내용을 검토 또는 수정할 수 있는 행정 및 법률기관 구성.

 

4) 미국-베트남 무역협정 내용 평가

  (1) 금번 체결된 미.베 무역협정은 미국측의 요구안을 대부분 베트남측에서 수용한 것으로 분석됨. 협정내용중 많은 부분이 3년에서 7년까지의 단계적인 개방을 내용으로 하고는 있으나 양국간 무역협정은 상품교역부분, 지적재산권부문, 서비스교역부문, 투자부문 등 거의 모든 경제부문을 개방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 특히 그동안 베트남 정부에서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던 서비스 분야의 경우에도 광고, 통신, 건설, 유통, 교육, 보험 및 금융부문의 포괄적인 개방을 단계적으로 이행키로 하였음.

  (2) 이는 베트남이 97년 동남아 금융위기로 인해 98년부터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경제가 하락세를 지속하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미.베 무역협정 체결에 두고 적극적인 자세로 미국과의 협상에 임하여 왔으며 특히 최근 베트남의 노동집약적 주요제품의 경쟁국인 중국이 중.미 무역협정을 체결한데 큰 위기감을 느끼고 서둘러 무역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보임.

 

공산주의 베트남에도 부동산 투기붐

공산주의 베트남에도 부동산 투기붐이 불고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최근 신도시 개발계획이 완성되고 외국자본이 밀려들면서 부동산 투기붐이 일기 시작, 일부 도심지역의 땅값이 1천만원에 육박하고 사무실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쑤언안 하노이시 건설국장은 20일 시내 중심지역인 환끼엠호수 인접지역과 하이바청로에는 최근 대형백화점 공사를 시작하면서 인근도로변의 땅값이 650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땅값이 치솟는 것은 지난해 외국투자법의 개정으로 외국자본의 유입이 자유로워졌고 특히 해외 베트남인들의 베트남내 투자가 내국인과 같은 조건으로 가능해진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하노이시가 올해부터 부동산의 등록세와 재산세를 내린것도 부동산 가격상승의 큰몫을 하고있다고 덧붙였다.

하노이는 도심외에도 외곽도시들로 통하는 고속도로 주변에도 개발붐이 일기 시작,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있는 것으로 하노이시 조사결과 밝혀졌다. 하노이 근교의 신도시예정지역인 탱치교 인근지역은 아직 전혀 개발이 안된 지역인데도 벌써부터 부동산 투기붐이 일어 90만원대까지 거래가 이루어지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시는 땅값뿐만 아니라 사무실의 수요도 최근들어 부쩍 늘어나 그동안 절반수준을 조금 넘어섰던 사무실 임대율이 80%선을 넘어서고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홍콩투자회사의 하노이 지사장인 사이먼 크레이그씨는 최근 조사결과 주요 사무실빌딩의 임대율이 지난해의 60-70%에서 불과 몇개월만에 80%선을 넘고있다고 밝혔다.

베트남의 부동산은 원칙적으로 국가소유이나 일반인들이 반영구적인 사용권을 갖고있기 때문에 사실상 개인소유나 다름없다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아직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는 합작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뉴스, 발행일: 2001/03/21)

 

< 해설 > 베트남, 미국 지원아래 개방 가속화

아시아 전역에 몰아닥친 경제위기로 주춤했던 베트남의 개방과 개혁이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은 25년만에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빌 클린턴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과 천득렁 베트남대통령의 합의로 가능하게 됐다.

클린턴대통령과 천득렁대통령은 베트남이 한층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체제로는 힘들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 개혁과 개방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판반카이 베트남 총리도 클린턴을 만나 이같은 필요성을 제기하고 앞으로 개혁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폐쇄정책을 고수해 온 공산주의 베트남은 90년대 들어 도이머이정책의 도입으로 개방을 시작, 한때 `동남아의 용'으로까지 떠올랐으나 97년 아시아전역을 강타한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베트남은 연초 파산의 위기까지 몰렸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미국과의 무역협정 서명으로 위기를 넘기고 외국인투자법 개정, 관세법 개정 등 경제모든 분야에 걸쳐 개방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개방정책도 보수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공산당의 반대로 속도가 늦어졌고 국내기업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아 어려움이 계속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날아든 클린턴 카드는 베트남의 개방파들에게는 천군만마가 됐고 클린턴은 베트남의 인권과 종교자유 등을 들며 보수파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결국 쩐득렁 대통령과 판반카이 총리는 17일의 클린턴 면담에서 지속적이고 과감한 개혁과 개방추진을 약속했다. 대신 미국이 이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주고 특히 베트남의 남은 현안 중 하나인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도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합의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최고결정권을 갖고있는 공산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클린턴 대통령은 18일 호치민시로 떠나기에 앞서 레카피유 공산당 서기장을 방문, 미국측의 입장을 전달하고 공산당의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이 자리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다시한번 개혁과 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인권과 종교자유문제의 언급도 빠뜨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에 처한 베트남경제를 살려줄 유일한 대안인 미국의 요청을 레카피유 서기장으로서도 쉽사리 거절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의 개혁과 개방은 당장 미국보다는 베트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에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까다로운 절차와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베트남 진출 기업들은 베트남이 하루빨리 국제무대로 나와 모든 기업환경이 개선되고 다른 나라들과의 연계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뉴스, 발행일: 2000/11/18)

 

3. 사 회

1) 의료 보건

- 20012월 전염병 발병율 급증(열병 및 콜레라 7599.1% 증가)

- 구정연휴 이후 진료급증

- 어린이 대상 예방접종 6개 실시(7.5% 완료)

- 20012월 현재 에이즈 환자 총 7,397

 

한국 치과의사들 베트남 중부에서 의료봉사

한국 치과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이 베트남 중부를 방문하여 의료봉사하였다는 보도를 현지언론 VNA23일 보도하였다.

VNA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 치과의사협회 소속의 70명의 치과의사들이 베트남 중부의 꿩응아이(Quang Ngai)성의 선띤(Son Tinh)현을 319-22일 방문하였다. 의사들은 무료로 2천명의 베트남인들을 진료하였으며, 10명의 어린이들에게 얼굴성형수술을 시술하였다. 이제까지 2번의 의료방문을 통해, 치과의사협회는 1,700명을 진료하고, 116명을 수술하고, 5천만동(VND) 35백불에 이르는 의료장비를 기증하였다.

방문기간 동안 의사진들은 방문지역의 역사적 유적들을 둘러보았으며, 한 의사는 특별히 선띤현에서 베트남전으로 인해 고통받은 병사들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한국 의사들은 한국인들이 베트남전을 통해 베트남인에게 입힌 아픔에 대한 미안함을 자신들의 의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었다. 

(자료출처: KCM MIR, 발행일: 2001/03/23 hannah@kcm.co.kr)

 

베트남 국민보건과 의료서비스 향상 노력

베트남은 국민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정책을 입안하였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현재 66세인 평균수명을 2010년까지 71세로 끌어올리는데 노력할 것이다. 이 정책은 319일 판반카이 총리가 서명한 정책안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건강관리 서비스 뿐만아니라 양질의 의료서비스도 제공하고자하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정책안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또한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베트남은 2010년까지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71세가 되고, 임산부 출산 사망률이 70/100,000로 줄며, 1세 이하의 유아사망률이 천명에 25, 그리고 5세이하의 유아사망률이 천명에 32명이하로 되도록 힘쓸 것이다”. “신생아 체중이 2.5Kg 미만인 비율은 6% 이하로, 5세 이하의 유아 영양실조 비율은 20%이하로 하고, 반면 젊은이들의 평균 신장을 1.6M 이상으로 높히고, 만명에 4.5명의 의료진과 1명의 약사 확보를 목표로 노력할 예정이다

또한 정책안은 정책실현방안과 이를 위한 의료부문에 대한 예산확보 등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더불어 예방의약품, 전통약품, 기본적인 건강관리 뿐만아니라 극빈자들과 소외된 지역의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의 우선권을 둘 것을 강조하고 있다(자료출처:VNA- KCM MIR, 발행일:2001/3/20)

 

베트남 인구 급증, 환경오염 심각

베트남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 2034년에는 지금의 2배인 15천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한 환경파괴도 심각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엔개발계획(UNDP)21일 발표한 베트남에 대한 환경관련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인구는 해마다 2.07%의 높은 증가율을 보여 35년마다 2배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현재 77백만명인 베트남 인구는 2034년에는 155백만명으로 늘어나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방글라데시, 인도, 르완다, 브룬디의 순이다.

이러한 인구증가에 따라 베트남의 환경오염도 심각해 베트남의 삼림보존율은 43%에서 28%15%가 줄어들 전망이다. 또 베트남의 각종 공장은 90%가 제대로 공해처리 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고 대도시의 대기오염도는 국제 기준치의 25배를 초과하는 것으로 발표됐다.

UNDP이같은 상황으로 볼 때 베트남은 환경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심각한 환경오염을 겪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료출처:하노이=연합, 발행일:2001/2/21)

 

2) 사회질서

ㅇ 경제 사범

- 2157건 발생(전년 동기 대비 31% 감소, 전달 대비 80%증가)

- 2월중 500억동 상당의 담배 밀거래, 위조품 생산 65, 외제담배 불법매매 23건등

ㅇ 형사범

- 2699건생, 4명 사망, 41명 부상, 재산피해액 600억동

- 1730건생, 6명 사망, 27명 부상, 재산피해액 711억동

ㅇ 사회범

- 328건 밀매적발(594), 122건 마약중독자 적발(265), 1,237개의 헤로인 압수

- 매춘 12개소 적발, 포주 13명과 매춘부 22명 검거

 

베트남 접대부 HIV감염 급증

베트남 접대부들의 에이즈바이러스(HIV) 감염율이 급증하고 있고 그 연령층도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베트남 노동사회부가 하노이와 호치민시 등 베트남내의 주요6개 도시의 접대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조사대상 500명중 354명이 마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고 13.3%HIV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도시의 부녀보호소에 들어있는 접대부들은 더욱 심각한 상황을 보였는데 하노이 제2사회 지원센터의 경우 보호인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41.3%, 호치민의 투덕여성교육센터도 21.6%HIV감염율을 나타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접대부들의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는 것인데 호치민시 집계를 보면 17세 이하 소녀들이 15.6%를 차지했고 25세 이하는 전체의 70%나 됐다. 지난 96년 조사에서는 17세 이하가 14%, 25세 이하가 43.3% 였다.

(자료출처:하노이=연합, 발행일:2001/2/22)

 

베트남, '부패 일등국' 오명에 반박

베트남 외무부는 홍콩의 국가신용평가기관인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에서 발간되는 보고서가 베트남을 가장 부패가 심한 나라중 하나로 꼽은데 대해 반박했다.

판투이탱 외무부 대변인은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부패는 모든 국가들에 가장 위험한 요소중의 하나이지만 베트남은 이 발표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발표된 PERC 보고서는 아시아 12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베트남이 부패지수 10점중 9.75점을 기록, 최악의 부패국가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탱 대변인은 '베트남은 이미 이러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98년 이후 해마다 부패한 당과 정부의 고위관리에 대해서는 철퇴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과거에는 일부층에 부패가 만연됐던 경우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강력한 정부의 의지로 사라져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탱 대변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들은 '베트남이 부패 일등국임에 틀림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3/22)

 

3) 사회복지

생활보호 대상자

- 호치민시위원회는 구정맞이행사로 3만개의 선물세트 증정

- 기아근절대책 기금조성 12,338억동

 

북미 한인단체, 베트남에 두번째 고아원 건립

북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자선단체인 GEDA(세계교육개발기구.회장 김성각)가 베트남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사업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주로 미국, 캐나다 등에 거주하는 교회관계자들의 자선모임인 GEDA4년 전부터 하노이 인근 빈푹성에 고아원 '소망의 집'을 지어 운영해 오고 있는데 이어 28일에는 하노이 서쪽 50km 거리에 있는 훙엔성에 또 하나의 고아원인 '소망의 센터'를 건립키로 하고 기공식을 가졌다.

이날 기공식에서 김회장은 '한국과 역사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베트남을 돕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베트남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GEDA는 지난 97년 빈푹성에 소망의 집을 세운 후 소외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영어교육과 생활교육 등을 해왔다. 이 단체는 훙엔성에 5만달러를 들여 만들 소망의 센터에도 숙식시설을 완비해 인근 지역 불우어린이들을 수용하는 한편 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3/29)

 

베트남 교사, 학생 200여명에 독극물 테러

소수민족의 소요로 몸살을 앓고 있는 베트남 중부지방의 일부 학교에서 200여 명의 학생과 교사들을 노린 5차례 이상의 독극물 테러가 자행됐다고 현지 언론들이 6일 보도했다.

노동 신문은 '두 지역의 사상자들이 심하게 중독돼 병원으로 후송됐다''몇 명의 수상한 침입자들이 교실에 악취가 나는 화학물질을 투입해 많은 학생과 교직원들이 중독됐다'고 밝혔다.

호치민시 탄니엔(청년) 신문은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중부 닥락지방에서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5차례 독극물 공격이 가해졌다고 전했으며, 노동 신문은 40명 이상이 중독된 또 한차례의 테러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아직까지 정확한 사상자 숫자와 피해학생들의 출신 민족, 테러를 자행한 단체나 세력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지 지방정부와 경찰은 테러 공격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베트남 중부 닥락과 자이라이 지방에서는 작년 말부터 소수민족 농민들이 빼앗긴 커피 재배지를 반환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사항을 내걸고 관공서를 습격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여 왔으며, 이 지역의 학교들은 소수민족을 배제한 베트남어 교육 때문에 소수민족 분리주의자들의 주요 공격 타깃이 돼왔다(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4/06)

 

4) 교통안전질서 (Traffic order and safety)

- 20011월 교통사고 166건 발생, 사망자 62, 부상자 176

- 2월 교통사고 237건 발생(전달 대비 40% 증가), 사망자 98, 부상자 250, 해상 교통사고 7건 발생

 

베트남, 교통사고 현저히 감소

베트남 전국에서 3월 한 달 동안 1,773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났으며, 이는 지난 2월에 비해 29.5% 감소한 것이라고 현지언론 VNA28일 보도하였다. 3월 한 달 동안 교통사고로 652명이 사망하였으며 1,995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이는 지난 2월에 비해 사망에 있어서는 23.2% 부상에 있어서는 32.5% 상대적으로 감소한 수치이다. 그러나, 20011/4분기 전체의 교통사고 건수는 예년에 비해 3.2% 증가한 것이다.

2000년 베트남에서 교통사고가 22,586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한 사망은 7,500, 부상은 25,400명에 이른다.

(자료출처: KCM MIR, 발행일: 2001/03/29)

 

5) 과학 기술 활동

- 2월 과학연구활동

ㅇ 과학연구주제 총 10: 공업, 환경보호, 자동화시설, 관련

ㅇ 공업 소유권 : 공업소유권 112건 검토

- 정보통신 관리사업

ㅇ 정보통신 연구소 설치

 

베트남, 유선전화 평균 100명에 4

베트남에서 350만번째 유선전화가 설치되었다고 베트남우편전화국(VNPT)의 발표하였다. 이로 베트남 전화 보급율은 평균 100명에 4대가 된다. 올해 1/4분기 동안 238천 대의 전화가 설치되었으며, 이는 해마다 41%의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하노이와 호치민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15%가 집에 전화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올해 말까지 898천 대의 전화가 더 설치되어 전화 가입자가 모두 4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렇게되면 전화보급율은 100명에 5대가 될 것이다.

현재 베트남 내 이동전화 가입자는 비나폰(Vinaphone)과 모비폰(Mobiphone)을 합하면 모두 88만 대에 이른다.

(자료출처: KCM MIR, 발행일: 2001/04/04)

 

4. 문 화

1) 문화 행사

-새천년 맞이 행사

-공산당 창립 71주념 기념행사

-2001년 새해 봄맞이 꽃시장

 

베트남에 다시 한국영화.TV드라마 붐

베트남에 다시 한국영화와 TV드라마붐이 일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베트남에 한국붐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와 영화는 송혜교.원빈 주연의 '가을동화'와 안재욱.김혜수 주연의 ''.

이 드라마와 영화는 거의 같은 시점인 이달초부터 베트남TV와 극장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는데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한국드라마 붐을 타고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한국 드라마가 들어오면서 베트남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은 이후 반년여만에 베트남TV에 방영되고 있는 '가을동화'는 슬프고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인기불변의 소재에 수채화를 방불케 하는 서정적인 영상미로 방영 20일여만에 안방극장을 휩쓸고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는 베트남TV에서 수요일과 일요일 저녁 9시에 방영되고 있는데 주부층은 물론 젊은여성과 학생층까지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어 같은 시간대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던 유럽축구의 인기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지난해 '편지'에 이어 다시 하노이 지역에 선을 보인 한국영화 '''편지'의 인기를 훨씬 앞질러 개봉 20일여일만에 5만관객을 동원했다. 하노이 시내 2개극장에서 상영하는 이 영화는 처음에는 다른 극장과 마찬가지로 밤 8시 매일 한차례씩만 상영했으나 관객이 폭주하자 매일 3차례씩 방영하는데도 며칠후의 표가 매진되는 기록을 올리고있다.

''이라는 베트남 말이 남성 심벌을 의미하기 때문에 '마음 다 바쳐 사랑해'라는 긴 이름을 사용하고있는 이 영화는 베트남 영화에서는 거의 보기드문 현대 코미디물이어서 특히 젊은층에 인기를 모아 암표가 정상가격의 두배가 넘는 4-5만동(3700-4500)에 거래되고 있다.

이같은 한국드라마와 영화붐에 대해 하노이주재 한국대사관의 이명섭공보관은 '베트남인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이 드라마와 영화가 방영되기 시작한 이후 대사관에도 드라마와 영화의 내용과 주인공 등에 대한 현지인들의 각종 문의가 빗발치고있다'고 말하고 '지난해 폭력물의 방영으로 흐려졌던 한국문화의 이미지를 '가을동화'''으로 완전히 만회할수 있게 돼 다행이다. 앞으로 건전하고 아름다운 한국문화를 베트남인들에게 소개하는데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3/28)

 

하롱베이, 29일부터 다양한 관광축제

베트남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관광지인 하롱베이에서 관광객을 위한 축제가 이달 말에 펼쳐진다.

하롱베이를 끼고있는 베트남 북동부의 쾅린성은 하롱베이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오는 29일부터 일주일동안 다양한 문화 스포츠 관광축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축제에는 베트남의 전통씨름과 어선경주 등 다른 곳에서는 보기힘든 행사가 준비되며 음식축제와 노래및 춤 경연대회 등도 겯들여진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하롱베이는 뛰어난 경관과 볼거리로 94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명된데 이어 지난해말에는 세계최대의 카르스트 지형과 다양한 석회 동굴로인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지형유산으로 지정되기도했다.

2천여개의 섬으로 바다위에 풍경화를 그려놓은 듯한 하롱베이는 깨끗한 물과 천연의 모래사장 형형색색의 동굴 등으로 국제적인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있는데 지난해는 모두 87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한국인들도 베트남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찾는 코스중의 하나인 하롱베이는 최근 중국으로부터 배를 이용한 관광객들이 밀려들어 고급 유람선이 투입되고 고급호텔과 식당들이 건설되는 등 급속한 개발붐을 타고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4/01)

 

, 소수민족 청소년들의 문화축제

베트남의 중부고산지역 4개성(람동, 닥락, 자라이, 꼰뚬)의 소수민족 청소년들 2천명이상이 소수민족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람동성의 달랏시에 모였다.

이번 축제는 세번째 개최되는 것으로 매해 이틀간의 축제 기간을 가져왔다. 319일부터 열린 이번 축제는 소수민족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 및 계발하고, 호치민공산주의청소년연맹 설립 70주년과 조국통일 26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이다. 이 축제에는 전통노래부르기 대회, 전통의상 쇼, 악기 연주, 고향음식법 소개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60개 이상의 그림(사진)12개의 악기와 전통복장 등이 전시되며, 어떻게 중부고산지역 청소년들이 소속 민족의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자료출처: VNA-KCM MIR, 발행일: 2001/03/20)

 

소설 '조용한 미국인' 촬영 승인

베트남은 영국 작가 고()그레이엄 그린이 베트남전 발발의 원인을 그린 고전적인 소설 '조용한 미국인'을 베트남에서 촬영하도록 호주 영화제작사인 베리 콰이어트 프로닥션에 승인했다고 관영 베트남통신(VNA)5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호주 영화제작사는 이달 말부터 수도 하노이, 상업 도시 호치민, 역사적인 무역항 호이안, 북부 닌빈주() 등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VNA는 프랑스 식민지배 말기 미국의 베트남 개입 초기를 묘사한 이 소설을 이념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공산 당국이 인정했다면서 '이 소설은 1950년대 베트남 국민에 대한 적대세력과 외국 침략자의 책동을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출처: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2/06)

 

-베트남 문화교류 새해 들어 본격화

새해 들어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가 본격화 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와 경제교류 외에는 별 교류가 없었던 한국과 베트남은 최근 문인과 예술인들의 베트남 방문이 잦아짐으로써 문화면에서도 이웃이 될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은 지난 12일 한국예술인 8명이'-아세안 미래지향적 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을 방문, 베트남 예술인들과 만남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시작돼 13일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이문구) 소속의 문인 10명이 베트남을 찾아 베트남작가동맹과 우의를 다짐으로써 비롯됐다.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원장을 비롯한 예술관계자들은 베트남 예술인들과 만나 한국-아세안 아트 페스티벌 개최와 한국에 의한 교육 프로그램 개최 등에 합의했다.

문화관광부와 외교통상부관계자, 국립중앙극장과 예술의 전당 및 각 대학의 음악 무용관계자들로 구성된 베트남 방문단은 앞으로 양국간 음악 무용 등 문화 전반에 관한 잦은 교류를 합의했다.

한편 13일 하노이에 도착한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들의 베트남 방문은 베트남민족작가동맹(위원장 흐우틴)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는데 17일까지 하노이에 머무는 동안 상호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문학인들로서는 처음으로 이루어진 이번 방문에서는 상호협력을 다짐하는 성명서 채택과 상호작품교환, -베트남 및 동아시아 작가평화연대 결성 등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뉴스, 발행일: 2001/01/14)

 

베트남에서 사는 소리 (베트남에서 사는 한국인의 생활수기)

베트남 시장 (두번째 사는 소리-2000.7. KCM in Vietnam)

그 동안의 베트남 생활에서 제일 많이 가본 곳이 집 근처 시장이다. 주부로서 시장을 자주 가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베트남의 주부들을 주로 아침 나절에 장을 본다. 냉장고가 있는 집이 그리 많지 않기에 싱싱하고 신선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다. 가족들이 6시 반이면 학교로 일터로 모두 향하고 주부들은 장으로 간다.

시장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 곳이 오토바이와 자전거 주차장이다. 저마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주차하고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시장의 풍경은 우리 나라 재래식 시장과 다를 바 없다.

포장이 안된 시장 길로 들어서면 한 켠에 푸줏간이 보인다. 스무 칸 정도의 고기 장사들이 즐비하게 있다. 냉장 시설없이 진열대에 돼지고기, 소고기를 부위별로 썰어놓고 팔고 있다. 간간히 파리떼가 앉는 것도 보인다. 그리고 한쪽으로 닭을 파는 곳이 보인다. 큰 광주리 속에 생닭들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채 꼬꼬댁거리고 있고, 닭을 파는 아주머니는 닭을 부위별로 다듬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분비는 곳 중의 한 곳이 생선 파는 곳이다. 베트남에서도 여러 가지 생선이 많이 난다. 꽁치 같은 등이 푸른 생선류, 조기, 오징어, 참치...... 개구리를 가죽을 벗겨서 파는 것을 보고 처음엔 징그러워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아직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곳곳에서 뱀장어를 판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내었던 싱싱한 새우를 파는 곳도 있다. 한국의 시장과 다를 바 없는 야채 노점들. 배추, , 시금치, 당근, 양파, 오이.....

시장 건물 안에는 밑반찬 가게, 건어물, 옷가게, 신발 가게, 잡화점 등이 있다. 일회용품을 파는 곳도 있다. 일회용 도시락, 종이컵, 젓가락, 일회용 접시, 비닐봉지, 그리고 제단에 피우는 향과 가짜 종이돈, 제사지낼 때 쓰는 종이옷 등을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아직 환경보호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한 이유에서 일까? 일회용품 천국같은 느낌이 든다.

옷감을 파는 가게와 금은 보석 가게에는 이른 아침에도 언제나 젊은 여성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물건을 고르고 있다.

그런데 시장에는 장사하는 사람들 외에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름 아닌 걸인들. 나이 많은 할머니, 두 다리가 없는 아저씨, 어린 아이를 안고 핏기 없는 얼굴로 바라보며 한 푼을 구걸하는 아줌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이나 거리에서는 외국인을 상대로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는 전쟁으로 인해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구걸해 와서 당황해 하기도 했다. 또 돈을 줄 때까지 따라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누군가에게 적선하는 걸 보고 쫓아와서 달라는 사람들도 있어서 난처할 때도 있었다. 맘이 안 좋았다. 또 한편으로는 귀찮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시장을 갈 때는 항상 구걸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로 잔돈을 준비해서 주머니에 챙긴다.

시장을 다니며 이곳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를 스스로 가늠해 본다. 진흙 바닥을 누비고 다니는 것도 즐겁고, 베트남의 음식에 들어가는 야채의 독특한 향기를 맡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유난히 땀냄새가 많이 나는 이곳 사람들과 부딪히며 장을 보는 것도. 가끔은 물건값을 깎기 위해 실랑이를 벌여보기도 한다. 아마 물건파는 사람들은 외국 여자가 무척 깍쟁이라고 하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시장 보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시장을 보며 돌아오는 길엔 어김없이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야!'

글쓴이 : 임시연(베트남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주부)

 

여름 그리고 비 (일곱 번째 사는 소리-2000.8. VCM)

기다란 베트남 안에서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살고있는 남쪽 지역은 지금 우기이다. 햇볕의 열기가 뜨겁게 느껴진다 싶으면, 비가 한번씩 와서 그 기를 죽여놓는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더운 여름이 되면, '한국이 이렇게 더운데 베트남이야 얼마나 더 더울까?' 생각이 드시는지.. 더위에 관해 안부를 묻는 분들이 많다. 사실, 하노이 쪽이야 다르겠지만(하노이는 7-8월이면 찜통이라고 들었다) 호치민시의 7-8월은 더위에 있어서만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친하게 지내는 미국 아저씨가 얼마전 한국에 다녀왔다. 잘 다녀오시라는 말과 함께 지금은 서울이 호치민시보다 더 더울 거라고 했더니.. ~ 웃고는 안 믿는다. 한국이 아무리 더운들 위도가 있는데 어떻게 더 더울 수 있냐고 묻는다. 4계절이 모두 다 있지만, 여름은 진짜 덥다, 베트남은 우기이기 때문에 안 더운 거다... 골이 다 아플 정도로 열심히 설명했건만, 안 믿었다. 영어로 말하기 연습만 열심히 한 격이 되었다. 몇 주 후, 아저씨가 한국에서 돌아왔다. 날 만나자마자, ", 진짜 네 말대로 서울이 호치민시보다 더 덥더라."하고 신기한 듯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물론 일년 내내 이런 것은 아니다. 호치민시가 있는 남쪽 지방의 경우, 4월이 가장 덥다. "4월은 잔인하다"라고 한 시인은 베트남에 와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지난 4월 내 방에 있는 온도계의 눈금이 하나만 내려가도 너무너무 좋아했다. 비 한방울 안 내리면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기 때문에 그 열기란... 밤새 하루의 열기가 다 식기도 전에 아침이 되고, 아침 8시만 되어도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한다.

반면, 11, 12월은 비가 올 때 오토바이를 타면 반팔로는 춥다고 느끼게 된다. 해와 비가 이렇게 다르구나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가장 안 더운 12월은 베트남 여자들이 결혼과 출산의 시기로는 최고로 꼽는다.

베트남에 안 와본 분들이 믿기 어려운 하나가 또 있다. 베트남에서는 비와 우산이 그리 친하지 못하다는 사실! 비가 엄청 오지만,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밖에 없다. 베트남 사람들의 애용품은 우비이다. 우비는 생활 필수품이다. 우비를 입고 농(원뿔 모양의 베트남 모자)을 쓰면 발 빼고는 비를 전혀 맞지 않는다. 요즘은 서양물품들이 밀려오면서 세련되게 우산을 써보는 아가씨들도 눈에 보이지만, 하늘에 구멍난듯 쏟아지는 베트남의 비 속에서는 우비와 농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근래에 아는 분의 공장에 한번 가보았었다. 세옴(영업용 오토바이)이랑 흥정을 한 후, 여정길에 올랐다. 송베라는 곳에 있는데.. 오고 가는 길에서 자연의 숨결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2000동짜리 비옷을 걸치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는 비가 너무 세서 머리가 따가울 정도로 아팠다. 그런데 서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뒤에 타고 있는 내가 이 정도인데 앞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세옴 아저씨는 얼마나 힘들까? 결국 1시간 반 동안 줄창 달려서 도착했다. 아저씨한테 너무 미안해서 또 고마와서 돈을 좀 얻어서 주었다. 거울도 볼 틈 없이 물에 빠진 새앙쥐 차림으로 베트남어 교실로 갔다. 내 꼴을 보고는 선생님이 막 웃는다. 사연을 얘기했더니.. 비가 저렇게 많이 오는데 집에 안 가고 공부하러 바로 와줘서 고맙단다.. 공부 끝나고 집에 와서는 밥 먹고 씻고는 12시간 동안 잤다.

난 베트남의 비가 좋다. 가랑비의 보슬보슬한 낭만은 없지만, 머리 속의 잡념을 씻어내리 듯 굵고 짧게 지나가는 시원한 베트남의 비가 좋다. 이 곳의 비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몬순이다, 사회나 지리 교과서에서 이름만 보았던 몬순.

집에만 있을 때는 날도 선선하게 해주고 넉넉한 거품이 있는 카푸치노의 멋을 한층 더해주는 비가 너무 사랑스럽다.

글쓴이: 이은경 (베트남에서 살았던 싱글)

 

5. 역 사

1) 베트남 약사-(연대표)

BC 300,000 구석기 시대

BC 100,000 중석기 시대

BC 3,000 신석기 시대

BC 2,000 청동기 시대

BC 257 Au Lac 왕국 건설

BC 208 중국의 Zhao Tuo장군,Au Lac왕국 점령하여 NamViet으로 호칭

BC 111-AD939 Nam Viet가 중국의 통치하에 들어감

939-968 Ngo 왕조

968-980 Dinh 왕조

1010-1225 Ly 왕조

1225-1400 Tran 왕조

1282 몽고의 침략

1284-1287 몽고군 격퇴

1400-1407 Ho 왕조

1414-1428 중국의 지배하에 놓임

1428-1788 중국군 격퇴, Le 왕조시대

1603 프랑스 동인도 회사 설립

1615 프랑스 선교사 활동 개시

1627 베트남어의 로마문자로 표기 시작 (Alexandre de Rhodes)

1802-1945 Nguyen 왕조 개막 (Gia Long 왕이 1802년 최초로 Vietnam통일. 국명을 Vietnam으로 함)

1841-1847 Tu Duc의 지배

1884 프랑스와 보호조약 체결

1885.6.9 AnnamTongking에 대한 프랑스의 보호령 설립에 관한 프랑스-중국간 조약 체결

1887 프랑스는 Cochin china, Annam, TongKing Cambodia로 구성된 Indochinese Union을 결성

1890 Ho Chi Minh 탄생

1919 Ho Chi Minh, 베트남의 자결권을 요구하기 위해 베르사이유 평화회의 참석 시도

1920 Ho Chi Minh, 프랑스 공산당 가입

1925 Ho Chi Minh, 베트남 혁명 청년 협회를 조직

1930 Ho Chi Minh, 베트남 공산당 그룹들을 하나의 공산당으로 조직

1940.8 일본군의 인도차이나 반도 점령

1941.5 Viet Minh 창립 (공산주의자들이 주도, 독립운동)

1945.3 일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직접 통치

1945.8 일본의 패권, Viet Minh은 민족해방위원회를 구성

1945.8 Ho Chi Minh, 임시정부 구성

1945.9 베트남의 분리 (북위 16도 북쪽은 중국이, 남쪽은 영국이 점령)

1946.3.6 프랑스-Viet Minh간 협정 체결 (프랑스 연합 일원으로서 자유국가 지위 인정)

1946.11-1954.5 1차 인도차이나 전쟁

1954.5 Viet Minh, 프랑스군 격퇴

1951.2 Ho Chi Minh, 노동당 창립

1954.7.21 인도차이나에 대한 제네바 협정 체결

1955.10 Ngo Dinh Diem, 베트남 공화국 대통령 취임

1964-1975 2차 인도차이나 전쟁

1969.9 Ho Chi Minh 사망

1971   미군의 베트남 철수 개시

1973.1.27 파리 평화협정 체결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에서의 휴전)

1973.3.29 미군철수 완료

1975.4.30 공산군의 전 국토 장악 (해방기념일)

1976.1. 2 베트남의 통일 실현

1978. 5 단일통화 채택

1978. 6 베트남 COMECON 가입

1978.11 베트남-소련 우호협력 조약 체결

1978.12 베트남-캄보디아 전쟁

1979. 2 베트남-중국 무력 충돌

1989. 9 베트남, 캄보디아로부터 군대 철수

1991.11 베트남-중국간 관계 정상화

1992.12.22 베트남-한국 수교

1995. 7 베트남, ASEAN 가입

 

베트남 정부,'일본은 올바른 역사관 가져야'

베트남 정부가 처음으로 일본의 역사교과서 수정에 대해 '일본은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베트남 외무부의 판투이탱 대변인은 5'2차 대전중 일본의 인근국가들에 대한 침략행위에 대해 일본은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이 최근의 일본 교과서 왜곡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밝힌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은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의 주장을 서울발 보도 등으로 전하는데 그쳤을 뿐 잔신들의 구체적인 의견을 밝히지 않았었다.

탱대변인은 그러나 이날 성명에서는 '일본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 '일본은 평화정착과 안정 발전을 추구하기위해 인근국가들과 협조체제를 강화해 나가야한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역시 2차대전 중 일본의 지배를 받은 아픈 역사를 갖고있으나 베트남은 지금까지 과거사에 대해서는 외교적인 거론을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옴으로써 교과서문제를 둘러싸고 일본과 마찰을 빚지는 않고 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4/06)

 

베트남, 화산李氏에 극진한 王孫 대우

황해도 옹진반도의 화산리를 본관(本官)으로 하는 한국의 화산李氏가 베트남 리왕조(1009-1226)의 후손으로 베트남 정부로부터 극진한 왕손대우를 받고있다.

베트남 정부는 해마다 리왕조가 출범한 음력 315(올해는 48)이면 29대 종손으로 알려진 이상협(李相協,69) 종친회장을 비롯한 종친회 간부들을 왕조출범 기념식에 초청하는가하면 출입국관리와 세금 사업권 등 모든 대우를 한국인이 아니라 베트남인과 똑같이 해주고있다.

지난 95년 화산이씨 종친회의 간부들은 선조가 한국(고려 고종13,1226)으로 망명한지 무려 780년만에 베트남을 찾았다. 당시 도무어이 당서기장 겸 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이 모두 나와 이들을 환대했고 이들에게 베트남에서도 잘살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라고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

이들의 방문으로 공산주의 등장과 함께 황폐화했던 리왕조의 왕궁이 복원되기 시작했고 오는 2010년의 리태조가 세운 하노이 정도 1천년 기념식에는 화려한 왕조복원잔치가 준비되고있다.

지난 8일 하노이 인근 하박성 티엔방에서 벌어진 리왕조 출범 991주년 기념식에도 이상협 종손을 비롯한 종친회 관계자들이 참석해 화려한 기념식을 가졌고 일부 TV에서 이를 방영하기도했다.

이처럼 베트남이 화산이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들이 자신들의 왕손이자 뿌리라고 믿기 때문. 베트남은 1009년 리왕조가 출범하기 전까지만해도 중국의 속국에 불과했으나 리태조가 수도를 티엔방에서 하노이로 옮기고 본격적인 자치정치를 시작함으로써 독립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왕조는 1226년 중국계인 진씨에 의해 멸망하고 베트남에 남아있던 왕족 72명이 모두 생매장을 당함으로써 왕조의 뿌리가 없어졌다. 일부 리왕조 관계자는 살아남기위해 성씨를 지금은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응웬으로 바꾸기도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당시 왕의 동생으로 군의 총수였던 이용상 왕자가 배를 타고 베트남을 빠져나와 중국으로 가려다 항로를 잃고 표류하다 고려 고종13년에 옹진반도의 화산리에 도착해 그 뿌리를 한국 땅에 내리게됐다. 이용상 왕자는 이곳에서 두 아들과 함께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을 물리침으로써 그 공로로 화산이씨 성을 받게됐고 이후 이곳 화산을 중심으로 자손이 늘어나게됐다.

현재 종친회장을 맡고있는 이상협씨는 좌랑공파 29대손으로 종손이며 베트남 법원에 등록을 출원한 상태이며 한국에서 족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있다.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노이에 머물고있는 이 회장은 화산이씨는 북한에는 많지만 한국에는 대부분 남하한 230여가구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앞으로 북한과 협의해 고향의 이용상 왕자묘를 복원하고 베트남에서도 각종 기념사업을 펼쳐 한국과 베트남의 뿌리가 같음을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4/11)

 

6. 종 교

1) 복합적 종교문화

베트남의 신앙과 종교들은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토착문화의 바탕 위에 여러 외래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형성된 "중층문화적"(重層文化的) 구조를 갖고 있다. 정령숭배, 조상신숭배, 혹은 샤머니즘 등 토착적인 신앙 구조 위에 지난 2,000년 이상 인도, 중국, 유럽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들어온 여러 외래종교들이 수용되었다. 그러한 외래종교들로 참(Cham)족을 통해 들어온 힌두교와 이슬람,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들로는 기원 1-2세기부터 들어온 불교와 도교와 유교가 있다. 이 세 가지 종교는 베트남어로 땀 쟈오”(三敎)라는 혼합주의적 신앙체계를 이루었다. 기독교는 16세기 포르투갈 사람들이 가톨릭을 전파한 이후 들어오기 시작하여 17세기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개신교도 전파되었다. 베트남 토착적인 신앙과 기독교와의 만남은 근대에 들어서서는 까오다이(Cao Dai)와 같은 베트남 특유의 신흥종교를 낳기도 했다.

 

2) 베트남 정부의 종교정책

1992년 헌법 제70조에 의하면 모든 시민은 어떠한 종교신앙에서도 믿을 혹은 믿지 않을 자유를 갖고 있다. 모든 종교는 법 앞에서 평등하다. 모든 신앙의 예배장소는 법에 의해 보호된다. 누구도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으며, 누구도 신앙의 자유를 법과 국가정책에 일치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용할 수 없다.” 즉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은 그 인민에게 외형상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위 조항의 끝부분에서 명백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베트남 공산당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종교 및 신앙의 활동을 언제든지 제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의 종교에 대한 통제는 다음의 세 가지 방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1.종교계들을 베트남애국전선 등과 같은 공산당의 조직적 통제하에 둔다.

2.모든 종교적 행위의 사전 허가제.

3.차세대 승려, 신부 및 목사의 양성에 대한 통제의 확보.

 

남부베트남 개신교회 공인 기념 행사 가져

남부 베트남 개신교회는 베트남 정부의 남부 베트남 복음성회 법적 지위 공인 결정을 기념하는 행사를 43일 호치민시에서 가졌다.

베트남 정부 종교위원회 레꽝빈(Le Quang Vinh) 의장은 중부의 꽝찌(Quang Tri)성에서 남부의 끝인 까마우(Ca Mau)성까지의 수천명의 개신교도들에게 개신교도들이 국가의 법에 따라 자신들의 신앙과 믿음을 행하기를 소망하며, 이를 통해 교회의 모토인 "국가 속의 복음 생활(Living of the Gospel amidst the nation)"대로 국가내 일체감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였다.

남부 베트남 개신교 총회 팜쑤안티우(Pham Xuan Thieu) 대표는 국가의 쇄신과 개발 역사에 동참할 것을 약속하였다. 티우 대표와 다른 몇몇 장로들이 정부가 특별히는 교회를 돕고 일반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또한 중부고산지대의 일부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개신교회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이를 비판하면서 이러한 사람들은 참 개신교도(프로테스탄트)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자료출처: VNA, 발행일: 2001/04/03)

 

오픈도어, 종교자유 박해국가 순위발표

국제 오픈도어 선교회는 해마다 1월과 7월에 종교의 자유 박해 국가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지난 20011월에 발표된 새로운 순위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회교 이외의 그 어떤 종교도 믿을 자유가 없으며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조차도 회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식을 행하거나 성경을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되면 즉시 추방된다. 또 회교 신앙을 포기하고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로 개종할 경우 교수형에 처하게 되어있다.

TOP10에 속한 국가들을 보면 모두가 회교율법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아니면 공산국가여서 공산주의와 회교가 세계선교에 있어서 넘기 어려운 장벽임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이 순위에서 상위 20개 국가는 종교의 자유가 극도로 탄압을 받고 있는 나라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

오픈도어가 20011월에 발표한 종교의 자유 박해국가 순위는 다음과 같다. (괄호안은 20007월의 순위)

1-사우디 아라비아(1)

2-라오스(19)

3-아프카니스탄(2)

4-중국(3)

5-북한(6)

6-베트남(13)

7-투르크메니스탄(16)

8-이란(8)

9-이집트(15)

10-말디브(7)

(자료출처:연합, 발행일:2001/3/21)

 

베트남, 개신교 활동 첫 공식허용

공산주의 베트남이 처음으로 개신교를 공식 허용했다. 국영 베트남통신은 10일 베트남 종교국이 9일 호치민시에서 진행된 베트남 복음교회 총회를 공식 인정하고 정부대표를 모임에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이 개신교모임을 공식 허가하고 대표를 파견한 것은 베트남전 종식 후 처음 있는 일이다.

300여개의 교회를 아우르는 복음교회 총회는 910일 호치민시에서 총회를 이끌어갈 대표선출과 헌장마련 등을 위한 집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총회측은 베트남 정부의 레쾅빙 종교국장에게 총회 허가 및 참석을 요청했었다. 종교국은 검토 끝에 개신교단체의 집회를 허가하기로 하고 정부대표와 조국전선 대표 등을 이 총회에 공식 출석시켰다.

베트남에서는 일부 정부가 인정하는 종교단체 외에는 활동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종교단체와 정부간의 알력이 상존해 왔다.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비공식적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보고 있다.

(자료출처: 국민일보, 발행일: 2001/02/10)

 

베트남 복음교회 󰡐26년만의 총회󰡑

베트남내 최대 개신교단인 베트남복음교회(ECVN)가 지난 8일 베트남 종전 이후 26년만에 처음으로 공식 총회를 갖고 다낭 교회 즈엉 탄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했다9일 베트남선교회(회장김을권 장로)A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베트남복음교회는 8일부터 이틀간 호치민시에서 역사적인 총회를 갖고 총회장 등 회장단을 선출한 뒤 교단의 주요 정책을 결정했다

베트남복음교회는 지난해 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베트남 정부 종교위원회로부터 정식으로 법인 허가를 받았으며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아 합법적인 총회를 개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선교회에 따르면 베트남복음교회의 이번 총회 개최는 베트남에 개신교가 전래된 지 90주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뜻깊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트남 교계는 오는 318일 베트남 최초의 개신교회인 다낭교회에서 개신교 전래 9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다낭교회 신축 헌당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다낭 교회는 지난 1911년 베트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개신교회로 베트남 복음화의 중추 역할을 해왔으나 공산화 이후 일체의 종교 행위가 금지되는 등 핍박을 받아왔었다베트남 정부는 지난 1989년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282개의 교회를 인가하는 등 일부 교회에 대해 종교 활동을 허용했으나 내부 단속은 종전보다 훨씬 강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베트남의 개신교 전래 10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지난 96년 다낭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새문안 교회 이수영 목사 등 새문안 교회와 베트남선교회 관계자 67명이 베트남 현지를 방문, 90주년 기념 행사와 다낭 교회 신축 헌당 예배에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 새문안교회는 신축을 위해 3만달러를 지원했다. (자료출처: 국민일보, 발행일: 2001/02/10)

 

'베트남 반체제 종파, 집단자살 기도'

베트남의 불법단체인 한 불교 종파가 지난 주말 남부 호치민시에서 개최한 집회에서 집단 자살을 감행하려 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베트남 관영 인민군보를 인용, 25일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인민군보는 베트남 당국이 이에 대응해 지난 17일 반체제적인 호아하오파 지도자 레 쾅 리엠(81)에게 앞으로 2년 동안 당국의 허가 없이는 정해진 지역을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연금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이 종파의 관계자들은 호치민시 집회가 종교 자유를 위한 단순한 평화시위였을 뿐이었다고 강조하고, 리엠이 시위집회 후 경찰에 체포돼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인민군보는 '리엠이 여러 차례 불순분자들을 모아 당과 국가의 종교정책 반대를 선동했다'면서 시위에 참여한 일부 여성들이 '스스로 희생의 제물이 되기 위해' 석유에 적신 솜을 갖고 호치민시로 가도록 요청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본부를 둔 해외호아하오불교협회 사무총장인 차우 구엔은 이 파의 여성동맹 위원장인 구엔 티 투가 분신자살을 기도했다고 밝혔으나, 그녀의 분신은 리엠가 체포된 지 이틀 후 이에 항의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리엠과 다른 3명의 반체제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달 베트남 이교도(異敎徒)평의회를 구성했으며, 그 가운데 한 사람인 가톨릭 신부 타데우스 구엔 반 리는 이달 초 베트남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면서 베트남과의 무역협정을 비준하지 말 것을 미 의회에 촉구한 후 연금상태에 놓여 있다.

호아하오파는 불교와 유교, 애니미즘을 결합한 신흥 불교종파로서 신도가 400만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이 종파는 자신들이 베트남전쟁 당시 총을 들고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자료출처: 런던=연합 BBC, 발행일: 2001/03/26)

 

베트남경찰, 반정부 불교지도자 체포

베트남 경찰이 베트남의 불교 최고지도자인 틱쾅도를 체포했다고 비공식불교단체인 베트남불교연합이 밝혔다.

베트남에서는 공식단체로 인정받지 못해 파리에 본부를 두고있는 이 단체는 최고지도자 틱쾅도가 4일 중부 쾅응아이성에서 원로지도자인 틱현쾅을 방문했다가 붙들렸다고 5일 발표했다.

틱쾅도는 베트남의 반정부인사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무려 18년간을 감옥에 있거나 가택연금생활을 했으며 지난 9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데 이어 지난해에는 미국 의회 의원들로부터 노벨상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호치민시로 거주 이전이 제한돼있다.

파리본부의 대변인은 '틱쾅도가 뗏(구정)을 맞아 전 지도자인 쾅을 방문하러 갔다가 경찰에 붙둘렸다'고 밝히고 '이는 명백한 종교자유에 대한 도전이며 베트남자유국민에 대한 구속'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틱쾅도는 이미 지난 98년 사면된 자유인이며 따라서 '그의 모든 활동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고 '특히 뗏을 맞아 나이많은 사람을 방문하는 것은 베트남의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두 베트남 불교 지도자는 98년 탁쾅도가 사면된 이후 이번으로 두번째 상봉을 했는데 지난 99년 상봉때도 경찰은 두 지도자를 체포했었다.

경찰은 이번 틱쾅도의 체포에서 두 지도자가 함께 찍은 비디오테입과 사진을 압수하고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쾅응아이성은 물론 인근 푸옌성과 닌빙성을 수색하고 있다고 이 단체는 밝혔다.

틱쾅도는 지난해 가을에도 메콩델타지역의 홍수지원차 현지를 방문했다가 일시 체포된 적이 있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2/05)

 

베트남, 주권침해죄로 가톨릭목사 연금

베트남 정부는 미국에 미-베트남 무역협정 비준을 하지말도록 권유한 응웬반리(54) 가톨릭 신부를 연금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베트남의 군기관지인 '콴도이년전(인민군보)'5'무역협정 비준에 반대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베트남에 어떤 지원도 하지말라고 주장한 응웬반리 목사를 정부가 보호하고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일 이 신문은 리목사에 중형을 내려야한다고 주장했었다.

이 신문은 또 '리목사는 오랜기간 목사라는 옷으로 가장하고 범법행위를 해 온 사람'이라고 주장했고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인 '년전'(인민일보)'리의 목표는 사회주의 붕괴에 있다'고 비난했다.

75년 통일이후 1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응웬반리목사는 지난 213일 미국에서 있은 국제종교자유위원회 회의에 보고서를 보내 중부지방에서 일어난 소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종교와 인권을 탄압하는 베트남에 미국은 어떤 지원도 해서는 안되며 특히 지난해 7월 서명후 비준을 앞두고있는 미-베트남 무역협정을 비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지금도 베트남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치민에 대해 전범으로 처리하라고 주장하고있다.

베트남 정부의 응웬반리 목사에 대한 이같은 강력행위는 미국의 인권압력에 대한 반발로 받아들여지고있다.

최근 미국무부가 베트남의 인권에 대해 '다소 나아지고는 있으나 아직도 열악한 단계'라고 지적한데 대해 베트남 정부는 외무부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는 미국의 상투적인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3/05)

 

베트남, '내정간섭 말라' 경고

베트남은 지난 2월 중부 산악지방의 소수민족 소요사태에 대해 미국이 간섭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현지의 한 주간신문이 23일 보도했다.

베트남 외무차관은 지난달 19일 피트 피터슨 베트남 주재 미 대사를 만나 이같은 의사를 전달했다고 신문은 밝혔다.

베트남 외무부측은 피터슨 대사에게 중부지방에서 발생한 사태에 대해 설명하고 미국이 더 이상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베트남 신문들은 정부가 지난 2월초 중부지방 소수민족의 인권과 종교의 자유가 탄압받고 있다고 폭로한 보고서를 국제종교자유위원회에 전달한 응웬반리 가톨릭신부를 주권침해 혐의로 연금했다고 보도한바 있다.

미국의 종교 및 인권관계자들은 베트남의 이러한 행동을 비난하면서 의회의 비준을 앞두고 있는 미-베트남 무역협정을 재검토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3/23)

 

7. 인도차이나에서의 베트남

1) 지정학적 관계

중국에 있는 55개의 부족들 중에 남부와 남서부에서 내려온 부족들은 약32개 부족(실제로는 150개 부족과 언어)에 이른다.

이들이 남하하여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에 이르러 원주민들과 어울려 살게 되었는데 이들이 사는 지역을 가리켜 인도차이나 지역이라고 부른다.

 

인도차이나 4개국 항공협력 강화

베트남항공의 관계자가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항공사 관계자들과 민간항공 협력을 논의하고 있음을 현지언론 VNA28일 보도하였는데, 이러한 민간항공 협력은 특별히 인도차이나 지역내 항공수송에의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근래에 열렸던 프놈펜에서의 연례 모임에서, 항공 관계자들은 항공사들이 좀 더 효과적으로 서로의 지역을 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양해각서에 조인하였다.

또한, 공항세 인하를 비롯한 4개국간의 승객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전해진다. 4개국 항공 관계자들은 새로운 항공노선 신청 절차 간소화에도 합의했다.

베트남과 인접 3개국은 1998년 하노이에서의 모임을 시작으로 하여 연례모임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

(자료출처: KCM MIR, 발행일: 2001/03/29)

 

2) 정치, 문화, 경제적 배경

인도차이나 국가들은 문화적으로는 인도의 영향(예절, 언어), 정치적으로는 공산권(과거에는 구 소련, 지금은 중국)의 영향을, 경제적으로는 서방의 도움을 받았으며 베트남은 지금도 생활 전반에 프랑스의 영향이(11302시까지가 점심시간이며, 파티가 있을 때는 댄스를 하는 등) 곳곳에 미치고 있다.

인도차이나 국가들은 지리적,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밀접한 공생관계에 있는 지역이다.

 

훈센, 베트남 난민 처리 미국쪽 선회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24명의 베트남 난민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번복, 미국의 뜻에 따를 것임을 시사했다.

훈센은 3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24명의 베트남 난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한 것을 내정간섭이라고 한 베트남의 주장은 옳지 않다. 만약 미국이나 다른 어떤 나라가 이들 난민들을 데려간다면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말해 이들을 미국에 넘겨줄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 경우 미국의 입장은 반드시 휴머니즘에 입각한 것이어야지 미국의 이익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캄보디아 경찰이 조사한 결과 이들은 베트남 대사관이 주장한 것처럼 중부지방의 소요를 주도한 반정부 반군들이 아니었으며 현재로선 이들을 베트남에 돌려 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하고 '나는 미국이나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상호간 분쟁의 장소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남자 23, 여자1명으로 이루어진 24명의 베트남 소수민족들은 지난 2월 중부지방의 소요가 진행될 무렵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들어왔다가 캄보디아 경찰에 체포됐었다.

캄보디아는 그동안 이들의 처리문제에 대해 훈센총리를 비롯한 대부분이 베트남과의 국경협정에 따라 베트남으로 송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들을 순수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에게 안식처를 주겠다고 제의하자 캄보디아의 태도가 달라졌다.

한편 이에대해 베트남 외무부는 3일 판투이탱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더이상 베트남 난민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미국의 이같은 태도는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4/04)

 

베트남, 인권단체의 요청은 내정간섭

불법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탈출한 사람들에게 보호처가 제공되어야만 한다는 국제인권단체인 국제 암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의 요청이 내정간섭에 해당하며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판 투이 탄(Phan Thuy Thanh)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발언하였다.

탄 대변인은 최근에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간 베트남 소수민족 사람들에게 보호처가 제공되어야한다는 국제 암네스티의 요청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반응을 묻는 AFP/AP와 후아난 모닝 포스트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다.

"국제 암네스티가 이러한 요청을 함으로, 국제 암네스티는 불법적인 탈출를 독려하고 베트남-캄보디아 국경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일부 외국인들이 도망친 사람들을 베트남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려는 책략을 꾸미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강력히 반대하며, 그 이유는 이 사건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원칙들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탄 대변인은 또한 베트남과 캄보디아 두 정부가 양국간의 출입국 협정을 명백히 어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음을 밝혔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베트남 중부산악 지방의 소수민족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수배망을 피해 캄보디아로 탈출하던 베트남인들이 국경을 넘다 캄포디아 경찰에 체포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들에 대해 베트남 대사관은 미국에 본부를 둔 소수민족 단체 회원들로 반정부활동 인사들이며 베트남 중부산악 지방의 소수민족 소요에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캄보디아는 국경을 넘어 온 이들(24)을 베트남 정부의 요청에 따라 본국(베트남)으로 송환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료출처: KCM MIR, 발행일: 2001/03/28 , hannah@kcm.co.kr)

 

난민문제로 미-베트남 관계도 급속악화

중국 전투기와의 충돌로 중국과 마찰을 빚고있는 미국이 캄보디아의 베트남 난민 처리문제를 놓고 베트남과의 관계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 2월 베트남 중부지역에서의 소요 후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간 24명의 베트남 소수민들을 즉각 송환하라고 캄보디아측에 요구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이들을 난민으로 규정 보호하겠다고 나섰기 때문.

더구나 이들은 지난 베트남전쟁중 미국을 도운 소수민족위원회연합(FULRO) 소속원들로 알려져 양국간의 해묵은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상호 성명전까지 펼치며 난민들을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미-베트남무역협정 비준 등 주요현안을 안고 있는 양국관계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푸틴 러시아대통령의 방문 이후 베트남이 군사, 경제 등에서 러시아와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과도 여전히 친선을 다짐하고 있어 새로운 블럭형성으로 인한 신냉전시대가 돌아오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또 이러한 양국간의 관계약화는 오는 19일로 예정된 제9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보수파의 입장을 강화하는 빌미를 제공해 현재의 권력구도가 그대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됨으로써 미-베트남 관계는 당분간 호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2월 베트남 중부지방의 소요가 일어나면서 베트남은 이 소요를 주동하고 있는 조직이 미국에 본거지를 소수민족위원회 소속의 풀로(FULRO)라는 조직이며 이들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을 도운 그룹이라고 말해 간접적으로 미국을 비난해왔다. 이들 소요 주동자를 '반정부 분리주의자들'이라고 표현하던 베트남은 이들이 국경을 넘어가다 캄보디아 경찰에 체포되자 '즉각 이들을 송환하라'고 캄보디아에 요구했고 캄보디아 역시 송환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지난 1일 미국은 캄보디아주재 대사관을 통해 이들이 보호가 필요한 난민이라고 확인되면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고 캄보디아도 이를 받아들일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대해 베트남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은 통해 '베트남 난민문제에 미국이 나서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은 즉각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친 베트남계로 알려진 훈센 캄보디아 총리마저 '미국이 원한다면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난민들을 미국에 보낼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보임으로써 베트남을 난처하게 했고 베트남은 대신 언론 등을 통해 미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베트남은 미군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고가 일어나자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고 최근 주베트남 러시아 대사의 이임리셉션에는 레카피유 당서기장까지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외교전문가들은 '최근 베트남의 분위기는 클린턴 행정부시절의 친미 움직임과는 정반대로 반미.친러시아로 기울고 있다'고 분석하고 '양국관계가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5년마다 열리는 제9차공산당 전당대회를 오는 19일로 예정해놓고 있는 베트남은 이같은 반미분위기로 인해 개혁세력이 주도권을 잃고 보수세력이 득세해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권력구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 발행일: 2001/04/05)

 

. 베트남과 선교

-선교역사

1. 베트남복음성회(Hoi Thanh Tin Lanh Vietnam)

   1) 초기 접촉 - 첫 발걸음들

기독교가 베트남에 전해진 것은 10세기경 로마 카톨릭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후 무역상, 선원, 외국군인들 가운데 일부 기독교인들이 베트남에 들어왔으나 아직 공식 복음 전파의 단계라 말하긴 어렵다.

1984, 프랑스선교회가 첫 목사를 하이퐁에 보냈는데 아쉽게도 단지 프랑스인을 위한 목회자로 보냈다. 그 당시 성서공회의 부분적인 활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구미 각 교회의 대 부흥운동 이후 선교운동이 극에 다다르고 많은 선교회가 조직되었을 때, 심프슨 목사에 의해 복음선교연합회(CMA)가 설립되었다. CMA 선교단체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관심을 갖고 베트남에 복음을 전할 방법을 모색했다.

-1887:심프슨(A.B.Simpson)목사 베트남 복음전파를 위한 동기 부여시작.

-1893:데이비드 렐라쳐(D.Lelacheur) 목사 사이공에 방문하다.

-1897:C.H.Reeves목사 중국에서 베트남 북부 랑선(Lang Son)에 들어옴.

-1899: R.A.Jaffray 선교사 하노이 방문하다.

-1901: Dayan 목사 하이퐁이 오다.

-1911: R.A.Jaffray, P.M.Hosler, Hughes선교사 다낭 도착 선교사무실 건축을 위한 부동산을 사다.

    (1) 1911-1918년 단계

언어공부 기간이 지난 후, 선교사들은 베트남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다. 몇 명의 선교사가 추방되었다는 이유로 인해 프랑스 사람들의 불신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권능은 많은 최초의 성도들의 믿음을 강력하게 그 어려움을 통과하게 역사 했으며, 복음을 받아들이는 많은 민중성원을 얻게 되었다.

-1915: 지회들이 다음의 순서에 따라 설립되었다.

               다낭, 호이안, 다이안, 쯩안, 꾸에선, 껌롱, 남오, , 냐짱, 닌호아, 뀌, 꽝응아이 등등

-1916: 하이퐁까지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 후 하통, 타이빈, 닌빈, 선터이, 박닌, 박지아앙, 하이증, 남닌, 랑선, 호아빈,

              흥이엔 등 지회가 설립됨.

-1918: 복음은 사이공까지 전파되었고 지회들이 설립되었다.

               미토, 벤쩨, 모까이, 속사이, 떤타악, 사덱, 컨터, 쩌우독, 롱수엔, 락쟈, 빈롱, 박리우, 투져우뫁, 빈옌화 등의 순서로 지회 설립

    (2) 1918-1927년 단계

이 단계는 베트남 목사, 전도사들의 양성을 위한 기간으로 기록된다.

-1919: 최초 성경공부반은 마굿간에서 가르쳤고, 그 이후 다낭에 짚으로 만든 최초의 예배당이 세워지게 되었다.

-1921: 다낭 성경학교가 설립되었다.

-1926: 전체 성경이 하노이에서 출판되었다.

-1927: 교회는 4,326명의 신도와 74개의 지회를 가졌다.

    (3) 1927-1942년 단계

이 단계부터 교회는 자립을 하게 되었고, 행정에 대해서도 독립하게 되었다.

-1924-1926: 1, 2, 3회 총회는 다낭에서 시행되었다. 이때의 총회는 단지 영성 보강의 책임만 졌다.

-1927: 최초의 행정회의(총회 순서로는 4번째)는 다낭에서 모였고 첫 회기 임원회가 시작되었다.

-1928: 복음회의 조례안(3개 언어로 구성:베트남어, 프랑스어, 중국어)널리 보급되어 졌고 적용되었다.

복음은 또한 캄보디아에도 전파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 교회의 명칭은 동팝(1927)복음회라 했고, 이후 동팝 베트남 복음성회(1936), 베트남 복음회(1945), 그리고 베트남 복음성회(1950년 이후부터)로 바뀌었다.

-1928: 지역조직을 중북부 지역과 남부지역으로 구성하여 모양을 갖춤.

-1930: 기독인쇄물들을 출판하기 위해 하노이에 복음 인쇄소를 설립. 이것은 1943년 달랏으로 이전하였고, 1970년에 사이공으로 이전함.

-1932: 고원지역에도 전도하였다.

-1939: 교회의 조례가 인도차이나 총독의 공인을 받았다.

-1942: 교회의 재산관리회의를 공인 받았다.

    (4) 1942-1954년 단계

두 인도차이나 전쟁 사이에 베트남 복음성회는 많은 어려움을 만났다.

교통은 두절되었고, 북쪽은 기근을 당하고, 선교사들은 투옥 당하고, 신 도는 흩어지고, 성경학교는 중단되고(1944-1948), 예배당들은 문을 닫고, 사악한 이론들이 나타나서 교회의 자치 자립의 기운이 다 소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 전도사들은 여전히 성직을 행함에 정직했으며, 주를 시중드는 일에 자급했고, 신도들을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지켰다.

-1948-1954: 전쟁의 영향은 계속 되었지만, 신도 수는 여전히 증가하고 교회는 회복되고 주를 믿는 사람 수는 평상시보다 증가했으며 약간의 예배당은 재건되었다.

-1950: 베트남 복음성회 최초의 찬송가가 출판되었다.

-1952: 22회 총회 쩌런(Cho Lon)에서 모여 복음 고아원을 설립 표결함. 냐짱 고아원 외, 이후 미토, 벤깟, 푸퐁, 벤고에도 건물을 짓기로 함.

    (5) 1954-1975년 단계

-1954: 제네바 협정으로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짐. 따라서 교회도 북부 총회와 남부 총회로 분립됨.

 1954년 이전에는 북지방회, 중지방회, 남지방회 등 3개 지방회가 있었다.

             남부 총회에서 중지방회와 남지방회 2개로 나누었다.

 1960년부터 상지방회(Thuong Hat -주로 소수부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중서부 고원지대)가 추가로 나누어 짐

-1960: 다낭 성경학교가 냐짱으로 이전, 성경신학원으로 승격

-1961: 각 진료병원 설립, 냐쨩진료원 외에 부온메투옥(1961), 뿌레이꾸(1969) 진료원 개원

-1961: 베트남 복음전파 50주년 기념대회 개최

-1962: 중지방회가 둘로 분립됨(북중지방회와 남중지방회) 라오스 사역

-1966: 사이공의 꽁화운동장에서 복음전도 대운동이 열림. 이 때부터 다양한 방법의 전도방법이 사용됨.

              방송선교, 차량선교, 사회구제사역 등등...

-1967: “아직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이를 목표로 한 심화전도계획시작.

-1969: 남지방회가 둘로 분립됨(동남지방회와 서남지방회). 상지방회가 둘로 분립됨(남상지방회와 북상지방회).

-1969: 어린이 전도센터가 냐쨩에 설립됨

-1970: 사이공 쩐흥다오155 번지에 총회 사무실 개원, 사이공에 복음인쇄소가 세워짐

-1971: 베트남 복음전파 60주년 기념대회 개최

-1975: 국가가 통일됨. 교회도 새로운 시기로 나아감

    (6) 1975-2001년 단계

-1975년 이후: 각 교회의 전도활동이 교회 내 모임 안에서만 이루어지다. 신자의 수는 증가하다.

-1976: 42차 총회가 호치민시에서 열림. 옹반후엔 목사가 총회장에 선출되다.

-1980년대: 교회가 빠르게 부흥함. 신자들이 모인 곳마다 주의 말씀을 배우려는 정신이 변함없이 강하게 역사 했다.

-1990년대: 많은 교회가 증축되거나 새로 세워짐

-1992-1994: 베트남 성경 출판계획이 정부의 허가를 얻음 33,000권의 성경과 20,000권의 찬송가를 외국에서 들여옴

-1994-2000: 정부가 성경 인쇄를 허가함. 신구약 65,000, 신약85,000, 찬송가 25,000, 복음서적 80,000,

                           성경 120,000권을 인쇄하다.

-2000: 교회의 새로운 전진을 위해 총회준비위원회가 헌장(교회헌법)을 준비함.

-200127-9: 1차 총회(교회사로는 43차 총회)가 개최.

            호치민시 쩐흥다오 155번지 소재 사이공교회에서 개최되어 헌장이 통과되고

            2001-2004년도 임기를 위한 신 임원이 선거로 선출되다.

-2001316: 정부 종교성 규정 15-QD/TGCP에 의해서 베트남 복음성회(남부)가 종교 법인체로서의 자격을

          얻음으로써 1회 베트남 복음성회(남부) 총회에서 통과된 헌장에 의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총회에서 선출된 총회 임원들과 위원 23명의 인사에 대해서도 인준을 받았다.

200143, 베트남 복음성회(남부)의 합법적인 (종교)법인체 공인 기념식이 호치민시 쩐흥다오 155번지 사이공교회에서(총회본부) 열리다.

(*200143, 사이공교회에서 발표한 베트남 복음 도착 90주년’(1911-2001) 기념 자료집에서 발췌)

 

2. 베트남침례교회(Hoi Thanh Bap Tit Vietnam)

남침례교 해외선교회(Southern Baptist Overseas, 이하 침례교)1959년에 베트남에 입국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개신교 선교에 한 몫을 감당하고 있다. , 195810월에 베트남에 선교센터를 세우기로 결정하였고 이 결정에 의해 195911월 하이스(H. P. Hayes) 목사 부부가 베트남에 입국하여 아래와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전개하였다.

  1) 사이공(Saigon) 사역

19616, 침례교에서 온 선교사들은 베트남어로 기도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베트남인 중 최초의 침례교 신도는 레국짠(Le Quac Chanh) 이었다. 당시 그는 푸토화지역 침례교회의 한 관리 전도인이었는데 지금 호치민시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응웬반쪼이(Nguyen Van Troi) 거리 209번지 은정침례교회(Hoi Thanh Bap Tit An Dien)'사이공 지회의 담임 목사이다. 이들은 19621118일 총회를 조직하였는데, 교단명 역시 베트남 은정침례교회42명의 베트남인과 18명의 미국인 신도가 있었다. 공산화 전을 기준으로 사이공에는 5개의 침례교회가 있었으나, 지금은 단 1개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2) 달랏(Da Lat) 사역

19619, 마이어스(L. Myers) 목사 가정이 달랏에 도착하여 베트남어를 배웠다. 그 뒤, 몇 명의 동료 선교사 및 베트남 신도들의 도움으로 달랏에도 침례교회가 세워진다. 몇 년 간 접촉 후 달랏에는 침례교 선교사들을 위한 베트남어 훈련센터가 세워졌다.

  3) 냐쨩(Nha Trang) 사역

1962, 로벗슨(B. Robertson) 목사 가정이 냐쨩에 도착하여 사역할 준비를 한다. 그 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데이비스(B. Davis) 목사는 냐쨩에 침례교회를 세우는데, 이름을 믿음침례교회(Hoi Thanh Bap Tit Duc Tin)'라 하였다. 또한 이 곳에는 침례교의 성경학교 분교를 세웠다. 공산화 전을 기준으로 냐쨩 시내에 2, 근교인 깜란(Cam Ranh)1개 그리고 귀년(Qui Nhan)1개 등의 침례교회가 있었다.

  4) 다낭(Da Nang) 사역

1965, 달랏에서 사역하던 마이어스 목사는 다낭에 가서 일하며, 동시에 사이공의 업무도 관장한다. 그 뒤, 몇 명의 선교사들이 와서 동역하는데, 주로 직접적인 전도의 교육 방법과 사회 활동이었다. 공산화 전을 기준으로 다낭 시내에 희망침례교회(Hoi Thanh Bap Tit Hy Vong)', 광아이(Quang Ngai) 읍에 침례교회가 있었다.

 

3. 베트남기독전도회(Hoi Truyen Giao Co Doc Vietnam)

베트남기독전도회는 국제 선교단체인 ‘W.E.C.(World Evangelization for Christ, 초기에는 ’for Crusade'를 사용했음, 이하 전도회)'이 베트남에 세운 교회이다. 전도회가 베트남에 도착한 것은 1957년 초였다. 첫 선교사는 스미스(G. H. Smith) 목사 부부였다. 스미스 선교사는 이보다 일찍이 1934년부터 1937년까지 캄보디아 북부와 라오스 남부 그리고 베트남 서부 일대의 고원지대의 예, 세당, 까뚜 등의 종족을 정탐하기도 했다.

  1)다 낭 선교센터

1956, WEC 본부에서는 베트남의 다낭에 기독전도회의 선교센터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선교사 파송과 함께 이 지역의 미전도 종족인 꾸어, 흐레이, 빠코, 브루족에서 사역을 감당할 종족 지도자 훈련원인 성경학교를 세웠다.

하여 이들을 통해 예족 20,000, 세당족 40,000, 바나르족 20,000명 바나르-참족 10,000, 릉아오족 10,000명 등에게 복음을 제시하였다.

  2) 선교 지원과 사역의 확대

이러한 사역 보고를 전해들은 WEC 본부에서는 195710월 호 간행물에 베트남, 150명의 선교사를 부른다라는 주제로, 당시 WEC 선교회 회장인 그룹(N. Grubb) 목사의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195841, 전도회는 WEC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미국 본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19585, 스미스 목사는 7개 이상의 교회를 설립하여 활동하였으며, 1960년이 되자 외국에서 일하던 선교사들 중 14명이 베트남에서 사역하기 위해 입국하였다.

19626월에는 기독교어린이기금에서 다낭 가까운 미케(My Khe)에 센터를 마련하여 사역에 들어갔으며, 여러 사회 사업도 병행하였다.

  3) 교세 확장

공산화 전까지 전도회에는 중부 지역 소도시 및 소수 민족에 걸쳐 17명의 선교사와 37명의 베트남인 사역자 그리고 30여 개에 이르는 교회와 5,000명 이상의 신도가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산화 이후에 더욱 교세가 확장되었으며, 최근의 교세를 지역(종족)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이들 중 대부분은 비 공인 교회이다).

-다낭 : 3

-광남(까뚜 1) : 16

-광응아이(꾸어 1) : 20

-빈퉌 : 2

-광찌(브루 1) : 4

-트아티엔후에 : 2

-푸옌(흐로이 1) : 2

-꼰뚬(2, 하랑 1) : 8

-빈딘 : 3

-닥락(브루 1) : 2/ 62

아울러 전도회 자체 자료에 따르면, 현재 사역 중인 교역자(목사, 전도사)는 총 77명이다.

 

4. 프랑스 개신교회

프랑스 개신교회는 베트남이 당시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점을 십분 이용, 아래의 내용으로 베트남의 개신교 선교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1) 베트남에의 관심과 도전

1886, 베트남에서 군목으로 사역했던 개신교회의 보이셋(T. Boisset) 목사는 프랑스 개신교회가 인도차이나에 진출 시 유의해야 할 점과 개신교 선교에의 시급성을 편지로 보냈다. 프랑스 개신교회의 정기 간행물인 생활과 신앙(Foi et Vie)' 190611월 호에 당시 하노이교회에서 사역했던 리치몬드(A. de. Richmond) 목사는 인도차이나 선교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를 발표하였다.

(1) 이 민족은 15세기 동안 문명화된 민족이므로 선교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2) 선교 지역을 선택할 때, 로마 카톨릭의 활동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3) 그들을 개신교인으로 만들려 하지 말고 그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데 힘쓸 것이며, 그들의 종교를 바꾸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1927년 이전 사역

1884, 프랑스의 식민지복음전도회에서 파견한 고클레어(Gockler) 목사가 하이퐁(Hai Phong)에 와서 인도차이나 최초의 개신교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교회는 군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인 개신교인만 참여하였다.

1902, 하노이와 사이공에도 이러한 교회가 세워졌다.

1904년부터 1911년까지 베트남에서 사역한 안드레(L. de S. Andre) 목사는 그의 편지에서 ‘400명의 (유럽) 민간인과 1,000명의 군인을 목회한다고 밝혔다.

19211023, 프랑스에서 3인의 선교사에 의해 인도차이나개신교연구회가 조직되고, 이들은 그 다음 해 1월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19223월 초에는 그들 중 하나인 모넷(P. Monet)인도차이나와 복음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였고, 동시에 학생회관을 세워 운영하였으나 재정난으로 소울리어(U. Soulier)에게 인계하였다.

19233, 보이스(G. Bois)가 소울리어를 대신하여 사역하였다.

  3) 1927년 이후 사역

전쟁과 베트남 정치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베트남의 프랑스 개신교회는 더 이상의 발전을 하지 못하며,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였다.

19579, 루즈(B. de Luze) 목사가 사이공에 도착하였다. 그는 사이공교회에서 사역하며, 달랏교회를 개척하여 프랑스어로 신도를 가르쳤다.

195812, 메달(P. Medard) 목사가 루즈 목사를 대신하여 왔으며, 당시 사이공과 달랏의 신도는 어린이를 합하여 약 150명 정도 되었다. 사이공교회에서는 가끔 CMA 선교회, 베트남복음성회와 함께 사회 구제 및 의료 활동을 하였는데, 대상은 주로 귀년의 나환자촌과 여러 고아원, 양로원 등이었다. 또한, 프랑스어로 가르치는 유치원을 세웠고, 베트남 내 화교 신도들이 세운 푸토화 복음고아원에 헌금을 하기도 하였다.

 

5. 영국성서공회

영국성서공회(이하 공회)는 일찍부터 중국 화남(華南)에 선교센터를 세우고 인근 지역을 향해 사역을 시작하였다. 당시 인도차이나인 베트남도 이 영향권에 들었는데, 사역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중국어 성경 배포

1895년부터 중국 화남 지방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를 사이공으로 보내 중국어 성경 배포를 시작케 하였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공회는 1902, 심도있는 토론을 거쳐 보넷(Bonnet)을 다낭에 파송하였다.

  2) 다낭 선교센터

보넷은 응웬반픅(Nguyen Vn Phuoc)이라는 베트남인 동역자를 만났는데, 그는 풍부한 경험과 학식,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보넷은 시내 중앙 기차역과 시의 탄약 병참소 사이에 위치한 응웬반픅의 넓은 땅을 사서 선교센터를 세웠다.

보넷은 이곳에서 중국어 성경을 인쇄하였고 최소한 세 명(Phan Dinh An 2)의 종교 서적 상인을 통해 1911년까지 베트남인들에게 한자어나 쯔놈(chu nom, 이두 문자 계통)으로 번역한 신약 성경과 쪽 복음을 팔거나 배포하였다. 활동 지역은 주로 중부인 광남 지역이었고 그다지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울러 보넷은 응웬반픅의 통역을 통하여 주변 베트남인에게 간단한 설교(복음 제시)도 하였다.

  3) CMA와의 협력

이러한 공회의 베트남 사역은 성경 번역과 배포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으나 지속적인 사역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한 차에 1911, CMA에서 세 명의 선교사가 베트남에 입국하자 공회에서는 이들을 환영하였으며, 공회의 주요 사역장이었던 다낭 선교센터를 CMA 선교회에 저렴한 가격으로 양도하였다.

하여 CMA는 비교적 안정되이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곧 베트남 개신교회가 발전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6. 메노나이트 선교회 (Mennonite Central Committee)

1954,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의 국토가 양분되고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자 이들의 구호와 의료 사역을 중심으로 선교하려는 많은 선교 단체들이 베트남에 입국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메노나이트 선교회(이하 선교회)이다.

  1) 중앙구제위원회 설립

선교회는 1954년에 메노나이트 중앙구제위원회를 베트남에 설립하였는데, 이는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온 이재민들에게 현물, 현금과 봉사를 통한 의료 활동을 펼치고자 함이었다.

선교회는 이들에게 의사와 간호사, 약사를 파견하였으며, 중부 고원 지대인 반메툭의 복음나병센터와 협력하였다.

크라빌(W. Krabill)부부는 선교회에서 베트남으로 파송한 첫 의료 선교사였다. 이를 시작으로 선교회는 베트남복음성회, CMA와 함께 각 지역에서 사회 사업 및 의료 활동을 전개하였다.

선교회에서는 계속적으로 선교사들을 베트남으로 파송하였는데, 1957년에 스타퍼(J. K. Stauffer) 목사 부부가, 그 해 말에 메츨러(E. G. Metzler) 목사 부부가 들어왔다.

  2) 1960년 이전 사역

1957, 선교회에서 협력하던 반메툭의 복음나병센터는 주 사역자인 딕(J. B. Dick)과 그의 가족, 웨버(E.Weaver), 호츠텔러(A. Hochsteler) 등이 냐쨩으로 옮기는 이유로 문을 닫았다. 그들은 냐쨩에 도착해 베트남복음성회와 긴밀한 협력 가운데 의료 사역을 시작하였다.

1959, 병원설립위원회는 4명의 베트남인 목사와 1명의 선교회 의사로 조직되었는데, 위원장 팜쑨띤(Pham Xuan Tin) 목사, 서기 레응옥홍(Le Ngoc Hong) 목사, 회계 옹반휀(Ong Van Hyuen) 목사, 의원 레반타이(Le Van Thai) 목사 및 의료 담당에 딕이었다.

병원 건축과 운영 경비는 선교회에서 부담하였고 베트남복음성회에서는 부지를 제공하였다.

3) 1960년 이후 사역

1960년은 선교회와 베트남복음성회가 협력하여 냐쨩복음병원을 설립한 해이다. 이를 통해 본격적인 의료 사역에 들어갔으며, 병원장에는 설립위원장이며 당시 베트남복음성회 부총회장 겸 냐쨩 총회신학원의 교수였던 팜쑨띤 목사를 선임하였다. 띤 목사는 베트남 교회의 지도자요 교수였지만 전공인 약사인 실질적인 의료 사역자였다.

같은 해 1014일부터 이동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인근 지역에서부터 시작하여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였다.

1961년부터는 남부 송베(Song Be, 지금의 빈즈엉과 빈프억) 지역 픅롱(Phuoc Long)에 거주하는 스팅족을 집중적으로 사역하였다. 같은 해 79, 냐쨩복음병원 건축이 완료되어 봉헌 예배를 드렸다. 이후 여러 명의 의료진이 추가로 배치되어 사역하였고,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였다.

1962년에는 선교회에서 두 가정의 목사 선교사를 베트남에 보냈다.

1963년에는 25개의 병상을 확보하였으며, 월 평균 환자는 약 3,000명이었다. 매일 오전 9시마다 전 환자를 대상으로 예배가 있었으며, 많은 개종자가 있었다.

1964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hurch Committee)의 지원으로 건물을 확장하여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었다. 연간 총 3,600명의 환자 중 입원은 650(이중 외래는 하루에 150) 정도였다. 또한, 병원 원목제도가 시작되어 레칵짠(Le Khac Chanh) 목사가 예배 시 전담 설교를 하였다. 이와 함께 전도지나 소책자를 통한 복음 전도가 왕성히 이루어져 많은 환자가 주님을 영접하였다.

1961년부터 1964년 중 총 22,470명이 소책자와 전도지를 받았으며, 그중 20,995명이 복음을 들었고 488명이 개종하였다.

1966년과 1967년 중 베트남기독봉사회가 조직되었다. 이는 미국의 사회사업 단체인 C.W.S.(Church World Service)L.W.R.(Lutheran World Relief) 및 선교회의 후원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이 단체의 주관으로 19661018, 플레이끄병원의 봉헌식이 있었으며, 19671126일에는 두 번째 봉헌식이 있었다.

베트남복음성회에서 파견한 쯩반상(Truong Van Sang) 목사는 선교회 의사들과 함께 사역하였으며, 이는 베트남기독봉사회와 베트남복음성회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4) 사이공 선교센터

19649, 선교회는 사이공에 첫 선교센터를 설립하였고 두 번째 선교센터는 지야딘(Gia Dinh)에 설립하였다. 이 곳에서 19명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주일 예배와 기도회를 가졌다.

선교회 선교사들은 주로 사이공과 지야딘의 청년 학생을 대상으로 선교하였는데, 문화 활동을 통하여 교회로 인도하기도 했다. 선교회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여름방학이 되면 여름성경학교를 조직하여 전도와 양육을 하였다. 또한, 한 학생을 베트남복음성회의 총회신학원에 위탁 교육하였고 영어 방송을 통하여 전도하며,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7. 한국 교회

베트남 교회의 개신교 선교역사 중에는 한국 교회의 역할도 있었다. 한국 교회가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4, 국군을 파병하면서부터이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사기 진작을 위해 조직된 군목과 군종을 통해 베트남 교회 또는 소수 민족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구제와 봉사, 선교가 시작되었다. 또한, 민간인들이 사이공과 다낭, 붕따우 등에 거주하면서 한인 교회가 설립되었고, 당시 월남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작용되어 민간 교류가 활발해졌다.

당시 월남에서 개신교 선교 활동을 전개했던 한국 교회의 교단 선교부와 선교 단체는 다음과 같다.

  1) 장로교 통합 선교부

1960, 남부 베트남복음성회 빈롱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피선된 도안반밍(Doan Van Mieng) 목사와 부 총회장 팜쑨띤 목사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복음성회에서는 일할 곳은 많은데, 일군이 부족하다는 주의 말씀에 따라 외국 교회에 일군을 요청하였는데,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여 베트남에 선교사로 파송받은 선교사가 장로교 통합 선교부의 박성준 목사였다.

박 선교사는 19701, 당시 전쟁으로 얼룩진 베트남에 통합측 여전도회의 후원으로 사역하였다.

19727월에 박 선교사가 보낸 선교활동 상황보고에 따르면 베트남인 교회에서의 설교와 가정 방문, 문서 전도, 피난민 수용소 방문 등을 통해 사역하였으며, 상당히 고무적인 결실을 거두었다.

  2) 장로교 합동 선교부

19693, 베트남선교회의 설립자이자 베트남 선교사인 강원균 목사의 소개로 베트남복음성회의 신학생인 응웬쑨바오(Nguyen Xuan Bao)를 총신대학 신학연구원에 입학시켜 장기적인 베트남 선교의 교두보를 삼았다.

3년 간 베트남선교회(대표 강원균 목사)와 혜성교회(당시 담임 박찬목 목사) 등의 후원으로 총신에서 유학을 한 바오 전도사는 월남에 돌아가기 전 주변의 학교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월남 선교에의 동참을 강하게 호소하였으며, 많은 선교사가 월남에서 사역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는 월남으로 돌아가서 곧바로 장로교회를 개척하였으며, 설립된 23개의 장로교회를 중심으로 총회 조직 및 총회 신학교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 통일되자 모진 핍박을 견디던 바오 목사는 아들과 함께 해외로 탈출하였으며, 기착지인 말레이시아 피난민 수용소에서 월남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다가 뉴스 레터지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미국 나성한인교회의 김의환 목사가 초청하여 미국으로 안착하였다.

바오 목사는 지금 미국에서 베트남인 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고국인 베트남 복음화를 위해 여러 모양으로 힘쓰고 있다.

  3) 기하성 선교부

기독교하나님의성회에서도 베트남 전쟁 기간 중에 김남수 목사를 베트남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사역케 하였다.

김 선교사는 주로 중부 고원인 달랏 지역에서 사역을 하였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기하성의 총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4) 한국세계교회협의회(K.W.C.C.)

한국세계교회협의회는 감리교 목사인 신원균 선교사를 베트남에 파송하였다. 이는 한 교단 선교부 차원의 선교 사역이 아니라 초교파적인 협력 사역으로 하는 베트남 복구와 구제 차원의 선교 사역이었다. 당시, 휴전이 성립된 베트남을 위하여 세계 교회들은 전후 복구 사업을 위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계교회협의회에서는 에큐메니칼 인도차이나 재건 및 화해 기금을 만들었으며, 19732월 초에는 9톤에 달하는 의약품과 의료 장비를 베트남에 전달하였다. 이 물품은 신 선교사의 지휘 아래 베트콩 점령 하에 있는 난민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이러한 일들은 베트남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5) 베트남선교회

강원균 목사는 장로교 합동측 목사로서, 베트남 전쟁이야말로 베트남을 선교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그는 먼저 이러한 비전과 베트남 선교에 대한 필요성을 전국 교회에 알리고 구제품의 모집, 선교사의 발굴과 선교비의 모금을 주선하였다.

1966년부터 베트남을 출입하던 강 목사는 한국 유학을 통한 베트남 교회 지도자 양성(이가 전술한 바오 목사이다)과 베트남 사이공에 한인교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하여 베트남선교회는 1970년에 기독교장로회 소속인 김상우 목사를 베트남에 선교사로 파송, 사이공한인교회의 담임 목사로 사역하게 하였다.

김상우 선교사는 강원균 목사가 베트남 최초로 설립한 한인교회의 담임으로 만 5년간 목회하였으며, 그 당시의 한인교회는 베트남복음성회 남부총회의 행정 지원과 자체 헌금으로 단독 건물을 건축하였다(현재 호치민시 푸녕군 소재). 성격이 대범하고 사교성이 좋은 김 목사는 한인교회 목회 뿐 아니라 베트남 교회와의 관계, 소수종족 선교와 교민 공익사업 등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현재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다.

한편, 강원균 목사도 베트남선교회의 파송 선교사로 1975년까지 베트남에서 사역하였다. 현재 아세안선교회의 대표인 강안삼 장로는 강원균 목사의 장남으로 그 역시 청년 시절을 아버지와 함께 사이공에서 보냈으며, 아세안선교회는 베트남 및 아시아 지역 선교를 위해 설립된 선교회이다.

(*이 내용은 20007월에 발표한 총신대 선교대학원의 베트남 개신교회 선교역사 연구논문과 20013월 인선동네 세미나 자료를 발표자의 허락을 얻어 요약한 것임)

 

-현지교회 동향

베트남의 기독교 상황에 대한 현지동향을 살펴하기로 한다.

1. 공인교회 현황

베트남교회는 공산화된 직후에는 정부에 의해 교회의 폐쇄, 목회자의 투옥, 불법 종교 집회의 차단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러나 기존 교회를 중심으로 계속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던 교회가 각 교회별로 집회허가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공인교회이다. 그리고 종교 활동이 허락된 교회 외에 기존 공인교회가 운영하는 기도처나 나중에 생겨나 아직 허가받지 못한 교회를 처소교회라 부른다. 또한 정부 시책상 대부분의 소수부족들의 교회를 허가해 주지 않았는데 이런 교회들 역시 처소교회라 부르고 있다. 한편 가정교회는 정부의 조직과 법 테두리와 상관없이 신자들이 가정이나 일정한 장소에서 모이는 교회를 말한다.

최근에 베트남 정부가 그 동안 법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개신교단을 처음으로 인정해 주고 법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종교법인으로서의 등록을 받아 줌으로 남부 베트남복음성회라는 총회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교회 대표들이 투표로 선출한 임원들에게 대표권을 주었다.

공인교회의 모든 종교활동은 교회 내에 국한된다. 따라서 교회 밖 전도활동이나 예배활동은 금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일상적인 종교활동은 연례적인 보고서를 통해 허가되지만 교회별 모임이나 비정기적인 특별한 행사는 반드시 허가를 얻어야 운영될 수 있다. 공인교회의 조직 및 운영 실태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조직

베트남 공인교회는 교회운영위원회(Ban Tri Su)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한국 장로교회의 당회 역할을 하는 교회 운영위원회는 담임목사, 서기, 회계, 위원 등으로 구성이 되는데 이들은 집사회에서 선출된다. 집사회의 구성은 교인들에 의해 매년 투표로 선출된다. 자격은 28세 이상된 세례교인 중 교인의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하며 임기는 2년이다. 2년 후 계속 표를 얻을 경우 연임할 수 있고 집사회의 인원은 교회 규모에 따라 정해져 있다. 사이공의 큰 교회는 대략 16-24명이고 작은 교회나 지방의 경우는 8-16명으로 구성된다.

2) 모임

예배 모임은 주일예배와 주중 모임을 갖는다. 교회마다 시간대가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주일에는 새벽 530, 오전 830, 오후 7(혹은 5) 3차례 모이는 교회도 있다.

각 부서별 모임이 주일 혹은 주중에 있다. 주일학교는 유치부 유년부 청소년부 청년부 장년부 등 각 부서로 나누어져 운영이 되는데 주일예배 전에 성경공부 시간이 있고 주중에 부서별 모임을 갖는다.

3) 교회 현황

현지교역자의 자료에 의하면 공산화 전 신도수가 10만명이었는데 현재 40만명에 달했고 소수부족 중에 약 150만명으로 추정되는 신자가 있어 합치면 약 200만명까지도 되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역자는 공산화 된 이후 신학교가 폐쇄되었기에 더 이상 배출되지 못하고 그 당시 신학교를 졸업하고 암수 받았던 목사나 신학교 과정을 수료했으나 지방 사역 중 공산화됨으로 인해 안수를 받지 못한 전도사들에 의해 교회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총회가 인정되고 난 다음 총회 결의로 신학과정을 다 수료한 158명의 전도사들이 20015월 첫째주일 부로 목사로 임직을 받았다.

4) 교회 수

베트남 교회의 여건상 정확한 통계를 갖는 것은 쉽지가 않다. 집회를 허락 받은 공인교회와 교회가 비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처소교회, 기존교회와 상관없이 비밀리에 모이는 처소교회 및 가정교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음은 현재 공인받은 교단인 베트남복음성회에 속한 교회 및 목회자 현황은 다음과 같다.

< 예배를 드리는 교회 >

북부총회 15개처, 남부총회 193개처   273개교회

교역자 없는 교회 65개처

<공산화 이후 계속 닫혀있는 교회>

폐쇄된 교회 287개처,  빼앗긴 교회(타용도로 사용중) 65개처   352개교회

 

5) 베트남 복음 성회의 인가와 당면과제

200127-9일간 남부 베트남복음성회 제 1차 총회(베트남교회사로는 제43)가 열려 헌장이 통과 되고, 7인의 임원(총회장, 부통회장2, 서기, 부서기, 회계, 부회계)과 위원 16인이 선출되었고 이어 43일 정식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은 것을 공보하는 기념식과 선교 9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이로 인한 베트남복음성회의 새로운 출범은 현지 교계에 있어 새로운 바람이 예상된다.

우선 총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신학교 복원 문제, 교역자 수급 문제, 폐쇄된 교회 및 처소교회 등의 교회 복원 및 인가 획득 문제, 성경 찬송 등 기독출판물 인가 문제, 은퇴 교역자 및 미망인 사모를 위한 생활관 제공 문제...등등의 제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당면문제이다.

 

2. 비공인교회

1) 오순절 교단의 가정교회현황

베트남에서 오순절 교단은 CMA나 기독전도회, 침례교단등 기타 여러 교단보다 훨씬 늦게 활동을 시작했다. 그것도 베트남에서 30년간의 남북전쟁 말기인 70년대초에서야 시작을 했고 전쟁후에는 그나마 공산화 이후에 겪은 시련으로 인해서 뿌리를 채 내리기도 전에 심한 홍역을 치렀고 오순절교회는 베트남 교회 역사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성령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그 분의 계획과 방법대로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어 가신다.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베트남 오순절 교단은 박해와 시련을 겪으면서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흩어지는 등 대내외적으로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을 견뎌왔지만 여전히 교회는 존재하고 있고 성장해 가고 있다.

베트남 오순절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제대로 문자화된 자료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전쟁중에 세워진 터 위에 불어닥친 평온하지 못한 주변환경들이 과거를 되새겨볼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이번에 뜻이 있는 하나님의 성회 목회자들이 모여 세계와 베트남 오순절 교단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성회 약사를 기록하게 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가정교회에는 20여개가 넘는 군소 교파들이 존립하고 있다. 크게는 200여개의 처소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교단이 있는가 하면 2-3개 혹은 5-6개의 처소교회를 치리하면서 독립교단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교회들도 있다. 이런 가정교회 전체를 한꺼번에 제한된 지면을 통해 연구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중에 베트남 가정교회와 오순절 교단의 뿌리이며 세계오순절교단에 가입해 있는 베트남 하나님의 성회를 살펴보면 베트남 가정교회의 역사를 알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베트남 하나님의 성회에서 발간한 소책자를 본론부분만 번역을 해 옮겨본다.

(1)베트남 하나님의 성회 : 1975430일 이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누구든지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오순절부흥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주의 성령의 충만한 부으심은 주님께서 권능과 구원의 영광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계속해서 불어가고 있습니다. 베트남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2)붕따우와 남부지역 각 성들

70년초 성령은 주님의 자녀인 Don Warren부부로 하여금 붕따우에 여행을 하도록 인도했습니다. 그곳을 여행하는 동안 두 부부는 미국인이 낳아서 버리고 간 많은 아이들을 보았고 Warren은 탁아소를 세우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곳은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품는 고아원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Warren은 미국의 많은 교회들과 접촉,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많은 오순절과 성령의 은사를 받은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미국의 교회들이 베트남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Warren부부는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배당에서 많은 갈망하는 사람들과 호기심으로 찾아왔던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Phat 부부와 Phuc과 또 다른 몇몇 가정들이 있었습니다. 후에 이들은 붕따우 오순절교회의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천주교 수녀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천주교 오순절 운동의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이 예배당에서 일어난 은사주의 운동은 그 당시의 남부지역 내의 각성과 시로 번져갔습니다. 권능을 통한 기적들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권능으로 자유를 얻고 새 삶을 찾게 되었습니다.

(3)중부지역

그 즈음에 성령님은 여러 필리핀 목사(:Gioen, Luciano, Peter, Ceicel, Sony, Josep)들을 베트남으로 보내 전도하게 했습니다.

성령님의 놀라우신 인도하심으로 그들은 Aaron Rothganber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이 교수를 통해서 그들은 다낭으로 올라가게 되고 꽝남다낭성:Ha Lam, Que Son, Tam ky에서 선교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현재 동나이성 소속인 타이티엔 롱탄(Thai Thien Long Thanh)이라는 정착지역을 조성하게 됩니다.

닌투언-판랑(Ninh Thuan-Phan Rang)에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선교사 Fernandez가 일선에 서서 교회개척을 시작했습니다. 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 성도수는 300명이 되었고 통일로에다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역시 이로부터 이 교회를 통해 또다른 소수부족 지교회가 세워져 Yaloi라는 전도사가 이 교회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안개가 많이 끼는 달랏에는 미국 선교사 Robert Tripp이라는 선교사 가족이 Tran Quoc Toan에 오순절 복음교회를 세웠습니다. 몇몇 나이 많은 성도들 중에는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4)천주교 공동체중에서

존경하는 여러분! 그때는 은사운동과 오순절 교리가 너무 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지적도 당하고 언제든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주님이 여전히 주님의 일을 성실하게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복음교회들에서처럼 천주교회 회중들 사이에서도 성령님은 운행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끼동(Ky Dong)Ba Huyen Thanh Quan길에서 주님의 행적을 따라 기도하는 프로그램과 오순절 운동, 은사주의 운동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듣게되었습니다. 후에 우리는 이것이 성령운동이며, 은사운동 혹은 천주교 오순절운동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5)베트남 오순절 복음교회의 형성

이런 산발적인 성령의 임재하심이 정리되는데 3년이 걸렸습니다. 1973623일 사이공 정부 내무부 차관 Le Cong Chat이 허가서 번호 326/BVN/KS 14b를 통해 오순절 복음 교회 활동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교수, 목사, 박사인 John Hurston이 초대 총회장을 맡았습니다. 1973년부터 베트남 오순절 복음교회는 정부법률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되었고 다음과 같이 각처에 활동장소를 두게 되었습니다:

본부: 213Tu Do(현재 Dong Khoi 4층 방)

교회: 3Nguyen Van Thoai (현재 Ly Thuong Kiet)

예배당: 119 Nguyen Hue

교회: 59 Le Van Ty (현재 Binh Gia), 붕따우시

성경신학교: 12BIS Le Loi, 붕따우시.

교회: 01 Thong Nhat, 판랑, 닌투언성

교회: 02 Tran Quoc Toan, 달랏시.

그러나 1975430일의 사고는 교회성장 행진을 중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의 교회는 공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도연합 교회인 CMA에 병합되어야 했습니다. 오순절의 교리는 교회화 하고 말았고 한편으로는 경제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또 한편으로는 위협의 시기속에 있었기 때문에 실망과 좌절, 물러섬이 주님의 자녀들과 주의 종들에게서 확연하게 나타났습니다. 교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날마다 나타나는 성령의 기적과 권능의 사역은 기왕지사가 되어 단지 시간의 음향속에 아련히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6)베트남 오순절 교회 : 1975430일 이후

베트남 오순절 복음교단의 중요한 이정표: 할렐루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베트남의 백성들과 나라에 대한 변함없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1975년 이후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는 마치 소멸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설립자이셨고 주님 스스로가 교회의 지도자이셨습니다. 주님이 놀라운 기사로 영원한 생명과 생명력을 교회에 불어넣으셨습니다. 뽑혔지만 여전히 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라게 될 것입니다. 끝없이 피어날 것입니다. 비록 뿌리가 흙 속에 묻혀있고 줄기는 죽어 모래 흙 속에 묻혀있지만, 물을 부어주면 싹이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가지 왕성한 큰 나무가 될 겁니다.

13년간 지존하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정체상태로 휴식한 후, 1988년 성령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넘치게 하시고 갈망하는 많은 기독인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방언기도의 은사와 다른 은사들을 주님의 섬기게 하시려고 곁들여 부어 주셨습니다. 진정한 기독인들은 이제 막 시작된 성령의 불길을 꺼버리기 위한 교권와 정부로부터 차별대우를 받고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AI목사와 LAC목사, HOA전도사등이 있습니다(이들은 교회에서 서로 교제토록 허락을 하지 않았고 복음교회에서 축출시켜버렸다. 왜냐면 성령의 세례를 받고, 방언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님의 도가 존중되지 못하고 자유하지 못한 곳, 베트남에 성령이 임재하시던 초기에는, 비록 학대받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힘들었고 만족할만한 기쁨이 없었습니다.

근본 오순절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순절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도 놀라운 방법으로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이것을 여기에서는 베트남에 있는 주님의 백성들을 위한 영적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로 무엇보다도 우선 사이공 성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1975년 사고 이후 주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미리 교회의 될 일들을 알고 계셔서 여러 베트남 오순절 복음교회 목사들을 숨겨주셨다는 것입니다. 1988(성령의 임재하심이 각 교회에 나타나던 초기 여러 날들)에 이르러서 주님의 사용하시던 많은 종들 가운데 AI라는 목사가 일어나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세례에 대해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은 오순절의 교리와 베트남과 세계 오순절 복음 성회에 대해 가르치고 안내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구주 예수님의 약속인 사도행전 1:5을 받아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기뻐하였는데 이는 주님이 방언의 은사를 그들에게 부어주셨기 때문이었다. 이 방언은 비밀스럽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실제적인 의의는 고전 144절의 말씀처럼 자신에게 덕을 세우게 된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전 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듯이 만약 개개인이 세워지지 않고, 강하지 않으면 교회전체가 정체되고 미지근 해져서 성령의 권능이 없어지고 삶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모든 개인들이 회복되고, 성령의 불의 혀에 접촉이 되어지면 틀림없이 그들은 뜨거워지고 담대해지며 기쁨과 열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멘

이 시기에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단지 새 방언을 말하는 은사만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여러 은사를 받아 실행하였는데 예언의 은사 병을 고치는 기적의 은사, 축사의 은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여러 멀고 위험한 외딴 벽촌들을 두루 다니면서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완전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뜻을 찾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주님의 성령의 은택의 강물, 시원하고 신선한 물에 잠기게 될 수 있는지를 나누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희생의 값을 치루었습니다. , 재물, 시간 필요하다면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최상의 이름 앞에 드렸습니다. 일부 주님의 자녀들은 학대받고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기쁨으로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불러 예비하신 축복의 가시밭길을 걸어갔습니다.-아멘-

오순절 교회는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성도들은 점점 많아지고 가르치고 돌볼 사역자들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지도자에 대한 훈련이 급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9896월에 제1 여호수아 과정(GIOSUE)을 열어 전국에서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삶을 드리로 작정한 25명이 모여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19899월 두배로 증가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다시 제2 여호수아 과정(GIOSUE)을 개강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5개의 예배장소가 있었습니다.

호산나 교회(VAN 자매가 예배처소 장)

다니엘 교회(QUAN목사가 예배처소 장)

디모데 교회(LIEN자매가 처소 장)

예루살렘 교회(RU자매가 처소 장)

베들레헴 교회(HOANG자매가 처소 장)

성도수가 날이 갈수록 성장해 갈 때, 단지 지도자 훈련만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이끌어가 총 지도자를 세우고 조직하는 일이 어느때 보다도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989년 말 제1차 오순절 복음교회 대 회동을 목사, 박사였던 CAO TAN PHAT(75년 이전 붕따우 오순절교회의 담임목사)의 도움과 자문아래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TRAN DINH AI 목사가 총회장의 직분을 투표를 통해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목회자 여러분! 한가지 짚고 넘어 가야할 슬픈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하지 못하며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인가를 보기 위함이다. 이는 1990년에 들어서 일인데 몇 명의 주님을 섬기며 지도자의 반열에 있던 종들이 해외의 목사 선교사들의 꾀임과 견해차이로 교회를 버리고 떨어져 홀로 서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께 감사드리는 것은 1990년 말 남아있던 주의 종들은 임시교회 총 회동을 통해서 베트남 오순절 복음 교회 최고 치리부를 선출하였습니다. 그때까지 AI 목사는 여전히 총회장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는데 신임을 얻게되었습니다.(그 때 베트남 오순절 교회의 정식집행부 직분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총회장:목사AI, 부총회장:목사LAM, 총서기:목사 KHOI, 총회계:자매VAN, 총대의원:목사QUAN-현재 미국에서 목회중)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는 이때까지 Di Linh, Da Lat, Long Thanh, Vung Tau, Bao Loc, Nha Trang등지에 퍼져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주님의 자녀들은 늘 정부의 박해를 받아야 했고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는 평온한 기간이 잠시 지나자 19912월 총회장이었던 AI목사가 감옥에 들어가므로 직분을 쉬어야 했습니다. 이는 조직이 단순하고 실력에 있어서 어린아이였던 교회에는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공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교회가 소망이 있을 때는 반드시 회생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회는 주님의 절대주권을 가지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인 반석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음부의 문이 감히 성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아멘- 그래서 불에 물이 끓고 있는 동안, 마치 뱀이 머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교회가 지도자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주께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주님의 자녀의 요구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바로 부총회장인 LAM목사와 당시 남아있던 집행부 구성원들을 통해서 교회의 총 지도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오순절 성령운동은 그때부터 멈추지 않을뿐 아니라 계속 불타올라 베트남 땅 아직도 여전히 은밀한 억압 속에 있는 구석구석까지 번져나갔습니다. 그 때 당시 사이공은 마치 신약시대의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각 주의 종들과 주님의 충성스런 백성들 특별히 거의 모두가 바울의 아름다운 발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과감하게 일어나 구석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한적한 곳까지 복음을 들고 다녔습니다. 사이공에서 서부지역 Cai Be, Can Tho, Ca Mau, Rach gia,로 내려가고 북부지역; Vinh Phu, Hai Phong(공안의 감시가 집요하며 사람들의 마음이 냉정하고 주의 복음에 낯선 지역)까지 나아갔습니다. 중부지역으로 들어와서:Ha Lam, Tam Ky(더위와 바람이 심한 지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원지대인 Dac Nong, Quang Khe(집단 신앙이 강한 지역으로 주님을 믿으려하면 온 동네가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래서 단지 3년 동안 확실한 지도와 조직이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 부흥은 사랑하는 몸 “S"자형을 한 전국에 퍼져나갔다. 매일 주님은 교회에 새로운 성도들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멀리 떨어진 각 지역에서도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교구 중 지방회, 소 지방회 등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각 주의 자녀와 종들은 계속 믿음과 자신의 직분으로 인해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AI목사가 22개월간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조사를 받은 것 이외에도, K Philip목사 역시 3년간 감금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고Nguyen Thi Ha목사, K Sep목사, Dam목사, Hoa목사도 역시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했습니다. 거의 모든 주의 종들이면 누구나 시저의 사자들과 대면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불변하는 하나의 원칙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핍박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주님의 교회가 성장하며 확장되어진다는 것을......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주님의 교회를 축복하셨고 교회를 사용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드리는 것은 주의 종 AI목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양들을 돌보고 가르치게 하셔서 날마다 건장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베트남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는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 결과와 믿음을 통해서 세계위에 크게 이름을 드러내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결실을 얻어내는데는 지도자들(LAM, KHOI, THU목사, 그리고 LINH, 또한 각 처소장들, 바울전도 그룹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주의 교회의 지도자들이다)의 고난과 노고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잊을 수 없는 것은 물질적 헌신, 노력 그리고 생명까지도 드리며 우리가 알 수 없는(주님은 아시지만) 은밀한 가운데 주를 섬긴 주님의 종들과 주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주님의 교회 때문에 억압받고 감옥에서 세월을 보냈던 HOA, HEN, VUONG, K PHILIP등과 같은 분들도 계십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복과 상급을 주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견디며 섬기셨고 또 섬기고 있는 그들과 우리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아멘

현재 베트남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는 THOMAS TRASK가 총재로 있는 140여개국 소속 국제 오순절 하나님의 복음성회 공동연합의 정식구성원입니다. 존경하는 목회자 여러분! 우리는 제1차 전 교회 대 회동이 있었던 1989년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AI목사께서 1997년 말까지 총회장에 선출되어 2회를 연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8차 대 회동에서 하나님을 통해 인간이 할 수 없는 지혜로 주님은 총회장의 지도권을 부총회장인 LAM에게 넘겨주게 하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베트남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는 비록 강건하게 자랐고 조직도 튼튼하게 다져졌지만, 한가지 교회의 존망을 결정할만한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처음에는 넘어설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어졌습니다. 왜냐면 각 지방지회들은 총회의 지원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우선은 총회장을 맡은 목사의 나이가 어린데다가 평탄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직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구하는 것에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자치관리하는 길에 교회는 정체되거나 약해지지 않고 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강해졌으며 점점 더 성장되어 가는 결과를 보았습니다. 이는 자신 스스로가 두발로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2001, 성령을 통해 설립된지 12, 베트남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는 만9천명 정도의 성도와, 2백여개의 지회, 그리고 9개의 지방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훈련에 있어서는 갈렙(CALEP)과정531,250명이 공부를 했고, 여호수아(GIOSUE)과정45665명이 공부를 마쳤으며, 안드레(ANDRE)과정 700여 차례, 목사를 위한 과정으로 모세,(MOISE,)과정과 미래 지도자 후보생들을 위한 아론(ARON)과정을 개설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런 12년의 과정을 통해서 35명의 목사(25명의 임직목사, 10명의 비임직목사), 50명의 바울(역자주:순회전도자)을 포함한 2백명의 처소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통계숫자는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현존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대신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 영광스런 향기로운 제물로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또한 주님의 충만한 은혜가 지속적으로 베트남 하나님의 성회 위에 부어지기를 기원하는바입니다.-아멘

존경하는 베트남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에 소속해 있는 목회자와 주님의 백성되는 여러분! 우리가 베트남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에 성령이 임하시고 설립되는 과정을 약사로 만드는 것은 이제까지 거두었던 결실들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만족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다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봄으로 불완전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시정해 나가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승리한 것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편안히 잠을 자기 위함이 아니라 눈앞에 놓여있는 경주를 달리기 위해 더욱 은혜를 의지하여 노력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자신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권능과 영광과 존귀를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 무한한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아멘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오순절 복음성회의 우월한 진리를 발휘해야만 합니다. 교회의 운명을 성령님께 의지하고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신앙의 덕을 쌓게되는 새 방언의 은사를 발휘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에도 덕을 세우는 일임은 물론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소홀히 해서 사장시켜버린 모든 은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지난 짧은 과거 속에서 특별한 형태로 교회에 찾아오신 성령님 감사합니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성령이 자유롭게 일하실 수 있도록 하십시오. 교회를 어떻게 사용하시든 주님의 지존하신 뜻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도구일 뿐입니다. 주님의 만지시기를 원하실 때 마음을 찢고 우십시오. 책망하심에 회개하십시오. 말할 수 없는 기쁨, 평안과 만족함과 승리로 인해 웃읍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의 기쁨으로 춤추십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낮고 부드러운 음성에 침묵하십시다.

베트남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 역사는 하나님의 성회역사의 공통 무형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자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았던 은혜의 불을 다시 지펴봅시다. 지킵시다. 성령의 불이 베트남 민족에게 비추어 따스하게 되도록... 그 불이 불어 사랑으로 민족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생애를 불태우도록 합시다.

오늘날 베트남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는 일치되는 정신을 발휘해야할 때입니다. “선지자의 심령이 선지자를 부복케 해야 합니다. 혀끝으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형식을 떠나서 서로 기뻐해야 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아래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중국인들 가운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 “한가지 일을 함께 좋아하면 서로 시기하고, 한가지 일을 함께 걱정하면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다교회가 영육간의 군병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와 함께 은사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거울삼아 조직을 갖추어야 합니다. 세기초에 위임받은 주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계속해서 우리들의 교회에 현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7) 맺는 말

초대교회 오순절의 성령운동은 교회성장의 뿌리이며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의 약사를 읽어 보면서 베트남에서 교회위에 역사하신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교회의 개척자이시며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정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하나 들라면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 정립이 정확히 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서로 분열되는 모습도 쉽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이런 시도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힘든 상황가운데서도 성실하게 일하는 가정교회의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든든하고 왕성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세워가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선교사역의 현장

베트남의 각 분야별 선교 사역 현장의 내용들을 실제적인 사례와 함께 보안을 유지하면서 가급적 상세히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1. NGO (비정부-민간원조단체)

기독교 복음과 함께 가난, 기아, 질병, 문맹 등 삶의 모든 부분으로부터 발전과 향상을 가져왔으며 우리 민족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사랑의 빚진 자서 이제 우리도 그들을 돌아보며 섬기고 나누어야 할 책임이 있기에 국가차원에서 저개발국가에 의료보건사업, 교육사업, 고아원사업, 농업개발, 장학사업, 각종구호사업 등을 추진함으로 인류사랑과 복지 및 세계평화에 기여해 왔다.

1975년에 33개국이던 전통적 선교사의 접근 제한 지역이 1989년에 86개 국가로 늘어났다. 2천년이 지나면 40억이 넘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아예 접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죽어 갈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남아 있을 선교지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북한,중국,이슬람처럼 정치구조가 복음과 양립할 수 없는 나라들.

두번째:노예 무역이나 십자군 등 과거 역사속에 기독교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상처를 갖고 있는 지역 국가들

세번째:전쟁이나 기아, 질병 등의 재난이 가득한 곳으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지역들이다.

이들 나라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생존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식량 부족으로 인해 1800여만 명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으며, 오염된 물과 식수 부족으로 한 해 2,500-3천만명의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이들에게는 영생의 복음이 말로만 아닌 현실로도 전달되어야 한다.

특히 공산권, 사회주의권. 회교권, 흰두교, 불교등 기독교의 활동이 극히 제한되는 어려운 나라일수록 이들 나라에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NGO를 통한 네트워킹이 더 요구되어 지고 있다.

 

1)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s)의 의미

NGO란 민간차원에서 결성되는 私的조직이며 정부조직이 아닌 비영리 민간단체를 지칭한다. 국제 사회에서 NGO 활동분야는 개발과 빈곤퇴치 및 환경문제 등 범 지구적 이슈를 포함하며 개발도상국의 빈곤완화 및 복지증진 등 최빈국을 포함한 저개발국의 개발을 목적으로 활동하므로 NGO의 원조는 양자간 원조, 다자간 원조에 이어 제3의 원조로 불리운다.

UN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NGO의 명칭은 국제사회에서비정부 민간단체로 칭하는 용어로 통용되나, 3세계의 개발에 참여하는 NGO를 개발 NGO(Development NGO)로 구분하고 우리의 경우 이러한 NGO민간원조 단체로 명칭하고 있으며 개도국의 개발을 지원하기 위하여 비영리사업을 수행하는 비정부 조직을 말한다.

 

2) NGO의 특징

정부 차원의 협력사업이 어려운 미수교국, 한인교포 밀집거주국가 및 수원국의 사회저변층(Grass Root)에 민간원조단체(NGOs)의 지원을 통해 공적개발원조와 상호보완적 기능을 수행한다.

NGO의 사업에 대한 헌신적 사명감, 소외계층에 대한 접근 용이성, 비권위적이고 효율적인 업무추진성 및 토착문화, 가치 및 지식 등에 대한 NGO 활동 경험 등의 장점을 살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빈곤완화 등 BHN(Basic Human Needs)부문의 효율적 지원이 가능하다.

원조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통해 정부 차원의 대외원조에 대해서도 긍정적 여론 및 공감대를 형성한다.

 

3) 국내 NGO 현황

국내NGO는 해외원조 경험이 있는 NGO는 약 50여개로 추산된다. 그간 국내NGO를 관리하는 기관이 없었고 현재 OECD에는 미등록된 상태국내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NGO 등록을 실시하고 있다.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한국국제협력단)

"함께 잘 사는 인류사회 건설"이라는 숭고한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발전을 지원코자 1991년 설립된 정부출연기관이다세계화의 첨병으로 활동중인 해외봉사단원, 협력요원, 의료단원, 협력의사, 태권도사범, 전문가 등과 개도국과의 우호관계를 증진하고 국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제협력업무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출연기관 이다.

 

4) KOICA에 등록된 NGO의 베트남에서의 활동 사례

  (1) 악안면 성형의료봉사활동 - 대한 악안면 성형재건 외과학회

경제 및 의료기술이 낙후된 베트남 지역에서 구순, 구개열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로 수술을 해주는 의료봉사팀이다.

  (2) 베트남 하따이 개발 사업 - 경실련 경제정의 연구소

청년층을 대상으로 직업교육과 농가에 대한 지원, 의료봉사 ,민간교류를 통해 빈곤퇴치에 기여하고 경제정의 실현을 앞당기는데 목적이 있다.

  (3) 베트남 의료사업 - 사단법인 글로벌 케어

하노이 삐에뚝 국립병원에서 언청이 아동 수술 사업 및 개발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4) 베트남복지선교회 - 감리교산하 한국 복지 활동 기구 (Korea Methodist Church - Korea Vietnam Welfare Association)

비영리를 목적으로 1991년에 설립. 휴멘직업학교, 휴멘공업고등학교, 안양유치원등을 운영하며, 인도주의적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사회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한국인 2세와 3, 베트남의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직업학교에서는 학비 면제와 장학금을 지급한다.

  (5) 한아 봉사회(Korean Society For Mission and service in Asia)

-Study, association and cooperation to improve historical and cultural understanding in South Asia

(연구, 협회 그리고 협력을 통한 과거의 개선과 남아시아의 문화 이해)

-Elimination of poverty (빈곤 퇴치)

-Implement and support health care (건강을 위한 물자 공급)

-Youth education and leadership development of women (청소년들의 교육과 여성의 지도자 개발)

-Peace making activities (평화 활동)

  (6) 국제개발협회(IDA: 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

송베성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며, 한글학당을 열어 베트남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각분야에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양성을 위해 베트남 청년을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 공부시키고 있다.

  (7) 재단법인 호산나- Hosanna International

저개발 국가 및 필요한 지역에 개발사업, 의료보건활동 및 교육사업을 비롯한 각종 구호사업을 통하여 인류사랑과 복지 및 세계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현재 베트남에서 유치원운영과 불우아동 장학금지원,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

 

5) 베트남 NGO 활동

현재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는 대략 400여 개에 달하고 있으며 그중 NGO자료집에는 약 271개가 소개되어있다.(NGO Directory,1999-2000)

나머지는 정확한 소재, 사역, 예산과 인원 등을 알 수가 없다.

베트남에서 정한 법을 따라 등록후 허가서를 받아 활동하는 단체는 극히 일부분 이다. 내역을 보면 지역적으로는 북부를, 사역 분야로는 농촌, 소수 민족 그리고 부녀자, 어린이, 극빈자, 장애자를 많이 선호한다.

이 밖에도 인원이나 예산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단회성, 단기성으로 베트남에 와서 NGO활동을 하는 한국 단체는 훨씬 더 많이 있다. 이중 대부분은 각 종교 단체 소속이지만 외국인의 종교 활동이 엄격히 제한 받는 이 곳 현실에 비추어 볼 때, NGO의 위상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베트남 정부에서도 1996년까지 묵인하던 NGO를 국제적 역량강화와 관리에 역점을 두고 그 관리법을 통과시켰다. 수상이 서명한 340/TTG 이는 점점 늘어나는 외국 NGO의 득실을 고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베트남의 국시는 지키면서 경제 개발과 복지 향상은 계속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 정부의 입장은 계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문호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기에 NGO에 대한 입장도 기본적으로 환영하고 있고 여러 혜택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정치와 종교에 연관된 활동은 할 수 없음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어 활동에 장애가 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1) 국제관계 협력기구 (International Relationship Organization)

베트남 수상 결정기구인 베트남 동남아 과학연구협회와 직속기구인 농촌발전후원연구원 등과 협력하여 전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발전 등을 위한 폭 넓은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구이다.

매월 1회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고, 최근 두 차례의 수재민 구호 및 의료봉사 활동은 한국인 다수를 포함한 70여명의 인원이 보다 자유롭게 활동한 바 있다. 또한 특수 지역을 선정하여 구호활동 및 정기적인 의료봉사활동, 유치원, 학교 설립, 공장 및 농장 건설 등 특정 지역을 집중 투자하여 한국인 NGO 사역자들의 결집된 네트웍의 힘으로 베트남 전반적인 사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외국인 NGO 등록에 비해 비교적 가입과 활동이 용이하므로 향후 사역의 안정성이 높고 지속적인 사역이 가능하다.

 

6) 효율적인 NGO활동을 위한 제언

(1) 대사관, 총영사관, 무역진흥공사, 한국국제협력단등을 중심으로 NGO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

(2) 교민회에서도 민간 차원의 참여가 필요하다. NGO를 통해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계획과 함께 일을 추진하며 이러한 사업은 베트남 정부와 지방에의 유기적인 역할 분담이 필요하며. 이의 법적인 파트너는 국제친선협회(UFO)/민간구제위원회(PACCOM)'라고 할 수 있겠다.

(3) NGO활동을 지속적으로 담당키 위한 연구 모임이나 자료정보 수집과 발행이 있어야 한다.

 

7) NGO 협력 네트워킹 가능성

(1) 분야별 팀 사역 가능

각자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선교지서 분야별로 사역이 가능하게 되어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며 사역할 수 있게 되어 재정, 인력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2) 초교파적인 후원과 참여 가능.

대외적으로 많은 홍보와 활동을 통해 자신의 교단뿐 아니라 초교파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참여가 가능하다.

(3) 등록된 인원의 장기 주재 가능.

합법적으로 입국한 단체이므로 등록된 인원의 장기체류가 가능하며, 사역의 안정성 및 지속성이 보장된다..

(4) 현지정부와 협력관계 가능.

NGO 사역은 낙후된 현지인들에게 특히 지원 혹은 개발이 필요한 지방 단위의 지도자들에게 좋은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관계를 맺게 함으로 향후의 사역에 대비할 수 있으며 사역자들의 노하우를 서로 공유함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원 및 투자 규모에 비해 보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NGO 사역자들간의 힘을 결집시켜나가는 네트워킹 사역은 막강한 NGO의 영향력을 베트남에 인식시켜 나갈 수 있으며 언론과 사회분위기를 유도하기에 용이하고 추후 본격적인 사역을 위한 안전 장치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2. 교회개척사역

1991년 발표된 종교활동 규정 제6조에 의하면 모든 공민은 특정 종교를 따르거나 혹은 따르지 않거나, 종교를 버리거나 바꿀 수 있는 자유권이 있다. 그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행위는 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되어있다. 또한 규정7조에서는 신도는 국가의 법률과 정책주장에 반하지 않는 각 종교 활동을 실시할 권리가 있다. 집안에서 구원을 할 수가 있고, 교회에서의 종교활동에 참가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1992년 정부 종교위원회령 2, 규칙 제24조에서는 각 종교조직이 해외에서의 종교활동에 사람을 파견, 외국종교조직의 대표 혹은 지도자, 수행자를 아국으로 초청하는 것은 모두 허가를 신청하여야 하고 각료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 직접전도와 교회 세우기

선교사가 선교 제한 지역에서 현지인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의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감당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1) 순수한 개인전도를 통한 개척

모이는 수 : 매주 20-30명이 모여 예배드림

순수한 개인전도 운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꼭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는 무리한 의욕보다는 그저 한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구령운동에 기초를 두고 시작되었다. 애타는 심령과 불타는 마음으로 베트남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니 주를 영접했던 자들이 자연적으로 서로 교제하면서 매주 한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더 적극적인 동기는 저들의 간청 때문이었다.

이제 막 복음으로 태어난 자들이 복음을 자신들에게 전하여 주었던 자로부터 직접 양육 받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비록 민족과 문화가 달라도 성령님은 그 장벽을 초월하여 영적인 교감을 갖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님은 그들 스스로 "당신이 복음을 전했으니 당신이 우리를 양육해 주시오" 라는 고백을 하게 하셨다.

확실한 주님의 약속과 기도 응답에 근거한다.

"주님! 어떻게 해야합니까? 정치적인 상황을 두고 볼 때는 저들을 도저히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낳은 영적인 자녀들을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저들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저들을 돌봐주고 섬겨야한다는 부담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지나간 경험으로 보아 초신자들을 현지인 교회로 인도하면 신앙 생활을 잘 적응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염려 때문에 복음을 전했던 복음 전도자는 뜨거운 어머니의 가슴으로 저들을 끌어안고 매주 돌아보고 지켜 나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주께로부터 확실한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된다.

2) 다양한 교회 세우기 사역들

(1) 소외된 공인교회 기도모임을 통한 개척

-개척한 해: 1997316, -장소: 다낭, -교회명: 임마누엘 교회,

-성도수: 재적87, 출석28(2000년 말 현재)

-시작동기: 공인교회에서 성령운동을 하다 소외된 성도 6명과 함께

40일 작정기도 실시.

-사역 방법: 심방과 주일 예배 현지인이 인도 (개척 1년후 전도사 임명)

매일 새벽기도, 매주 2회 성경공부와 1회 경배와 찬양, 기도

모임은 선교사가 인도.

(2) 대학생들을 통한 교회개척

-개척한 해: 200011, -장소: 사이공, -교회명: 안디옥교회,

-성도수: 출석 15(200010월 현재)

-시작: 한국 평신도 사역자가 뿌려놓은 복음의 열매 4.

2000년 말 4명과 전도된 2, 그리고 선교사가 함께

호텔에서 3일 금식기도.

-활동 전개: 이 교회개척 사역을 통해 붕따우에서 대학생 선교회 설립

(9개 대학 40명 모임),

(3) 능력사역을 통한 교회개척

-개척된 해: 200010

-시작: 다낭 임마누엘교회에서 병원에서도 포기한 70세된 노인이

유방암을 치료받음으로 다낭 지역에서 약 70km남서쪽에 위치한

꿰 미(Que My)라는 지역에 복음이 증거됨.

-발전: 그 후로 임마누엘 교회 사역자들이 그곳에 가서 아픈자들을 위해

안수하고 기도할 때마다 치료를 받는 기적들이 나타나게 되고 치료 받은 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개척됨.

-경과: 그러나 이 교회는 지방 정부의 핍박을 받아 다음해인 20012월에

450만동의 벌금을 내고 문을 닫았고, 성도들은 멀리 떨어진 공인

교회에 출석하고 있음.

이유는 병자를 위한 안수기도가 미신행위에 속한다는 것이다.

 

3) 교회개척의 과제

베트남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묵인하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겨우 300개 정도였고, 그리고 비밀리에 집회를 가지고 있는 가정교회들이 겨우 1,500개의 처소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 교역자를 양성하는 기관은 전무하다. 신학교 문제나 목사 안수, 교회개척 문제 등을 다각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이런 베트남의 상황속에서 선교사가 교회개척을 이루어 가는데 어떤 역할을 해야하며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까를 선교사의 입장에서 살핀다.

(1)영성 문제 : 교회 개척은 철저한 영성이 바탕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교회개척 사례를 발표하던 한 선교사의 정말 내 자신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문제였다라는 고백을 기억한다.

(2)교회개척의 은사 점검: 어떤 분들은 선교사를 목회자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교회개척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선교사역의 최종 목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독특한 달란트를 개발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선교사역의 효과를 극대화 해야한다. 모든 분야의 전문인들이 총 동원되어 Omnibus Missions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목회자가 선교사라는 패러다임을 버리고, 오히려 선교사가된 목회자라면 자신의 은사부분을 다시 한번 더 정확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3. 학원사역

학원 사역이 지니고 있는 선교 전략적인 측면에서의 중요성은 그들에게는 시간적인 자유가 많고, 젊은 그들의 생각은 많이 열려 있으며, 가장 큰 중요성은 그들은 곧 가까운 미래의 종교,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1) 학사 운영

대학생들 가운데는 지방의 목회자 또는 평신도의 자녀로서 도시의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상경한 학생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위해 현지 교회와 연합하여 숙소를 제공해주며 돌보아주거나(이런 경우는 현지 지방 목회자를 돕는 한 방편으로 양자를 겸하고 있다), 목회자나 평신도의 자녀가 아니라도 지방에서 상경한 신앙인 또는 직접 전도한 학생들에게 학사를 제공하여 신앙 공동체의 생활처를 마련해주고 캠퍼스의 일군으로 양육해 가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 사역은 매년 새로운 신입생들이 있으므로 영구히 지속할 수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학사를 구입하는 방안이 효과적이지만 현재 베트남의 상황에서는 현지교회와의 협력 구입, 직접 구입 등에 약간의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다.

학사 운영은 주로 제자 훈련과 연관하여 복음 기숙사또는 공동체 생활로 시도하였다. , 제자 훈련에 적절한 집(독채)을 얻은 뒤 각 지방에서 유학 온 제자들을 한 곳에 모아 운영하는 것이다. 공동생활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조심스러웠으나 점점 스스로의 생활과 훈련에 적응하였으며, 훈련을 인도하는 입장에서도 관리가 잘 되는 장점도 있었다.

평일에는 각 자가 속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주일 오전 역시 각 자가 속한 현지교회에서 봉사와 함께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주일 오후 저녁 식사 후부터 약 세 시간은 제자 훈련 시간으로 갖는데, 이 때 구원의 길성경 공부와 한 주간의 감사한 일 및 기도 제목을 내 놓는다. 때로는 안타까움도, 때로는 영육 간의 아픔도 같이 겪지만 즐거운 일도 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여러 해 다져 진 신앙과 사명을 공고히 하며, 선교사는 늘 힘을 주고 소망을 전한다. 대게 재정은 집세는 선교사가 전액 부담, 학비는 기본적으로 반액 부담(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대부분을 지원)하며, 그리고 생활비는 자체 부담을 하도록 하고있다.

 

2)  캠퍼스 및 대학생 선교

(1) 대학 현황

전국 4년제 대학수: 81(특수대학 포함)

하노이시: 45

호치민시: 25

기타지방: 11

2년제 대학수: 63

호치민시 국가대학교

호치민시에는 모두 9개 국가대학교가 있다. 이들은 모두 국립 대학으로 교육부에 소속되어 있어 교육부에서 관할한다.

-자연과학대학교(8개과), 법학대학교(5개과), 인문사회과학대학교(12개과), 건축대학교((3개과), 경제대학교(6개과), 농업대학교(10개과), 기술사범대학교(10개과), 사범대학교(14개과), 기술대학교(7개과)

특수대학교

호치민시에 있는 특수대학은 모두 7개이다. 국립대학이기는 하나 교육부 소속이 아니다. 각 행정기관에 소속되어 있고 그의 관할을 받고 있다.

-운송교통대학교(7개과), 미술대학교(5개과-320여명), 호치민시 음악원(7개과), 의과대학교, 보건위생간부 양성학교, 체육대학교, 통신우편업무학원

사립대학교

최근 사립대학교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학과도 예년에 비해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락홍대학교(15개과), 홍방대학교(9개과), 개방대학교, 흥븡대학교(9개과),

외국어 기술정보대학교(13개과), 반랑대학교(12개과), 공업기술대학교(11), 문화대학교(9개과), 똥득탕 공예대학교(8개과)

위의 대학교들 중 한국어과 있는 대학교는 4개 대학교이다. 국립대학교인 호치민시 국가인문사회과학대학교와 사립인 개방대학교, 외국어 기술정보대학교, 홍방대학교가 있다.

베트남 대학교의 특징

대부분의 대학교들이 큰 캠퍼스가 없어서 보통 2-3곳의 캠퍼스로 나누어 공부한다. 그 예로 호치민시 국가경제대학교의 경우 6개의 캠퍼스로 나누어져 있다. , 이곳 대학생들은 몇 개의 대학교를 동시에 다닐 수 있다. 2개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도 많이 있으며, 3개까지 다니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그래서 학과에 대한 전문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수도인 하노이와 남부 경제도시인 호치민시에 대학 소재지 집중율이 높다.

  (2) 청년, 대학생 모임 형성

역사

194123-4일 남부 지방 청년들 모임

1942815-19일 베트남 전체 청년 연합회 모임

1944년 중부 지방 청년들 모임

1952년 베트남 전체 청년 연합회 모임(사이공)

1956년 베트남 전체 청년 연합회 모임(다낭)

1957112일 청년 연합 집회 (빈롱)

196134-7일 소수민족들 청년 연합회 모임

IVF

195910David Adeney 목사 IFES 대표 자격으로 사이공 방문.

1960년 말 P.A. Contento 목사 베트남 방문하여 3일간 집회 인도 Intervasity Christian Student Fellowship을 조직하여 IFES에 가입

1961년 말 3명의 대학생 홍콩의 아시아 대학생 대표자 모임에 참석

19628월 베트남 대학생 연합집회 (사이공, 70여명 참석)

19635개의 분과를 나누어 구체적인 조직을 함

YMCA

1923Paul Monet YMCA 설립을 목적으로 베트남 방문

1938 - 1945년 프랑스 청년들이 YMCA 설립을 돕기 위해 베트남 방문

1956년 말 베트남 교회 대표 미국 YMCA 방문

1957년 초 YMCA 동남아지역 대표인 Pharmaraj 베트남 방문

1957년 말 YMCA가 정식 인가를 받음

대학생 사역 시작

1998년 다낭에서 교회 대학부를 조직하여 시작.

2000년 대학생 선교회(CMPS)룰 붕따우시에서 조직. 본부는 사이공.

  (3) 사역 현황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진 대학생 선교회가 조직되었지만 캠퍼스내에서의 사역은 공산화 이후 거의 사라져 버린것과 같다. 이에 따라 대학내의 전도 운동을 위한 캠퍼스 전도일군 양육과 전도 훈련을 실시하고 훈련된 이들을 통해 캠퍼스내에서 전도를 실천하고 있으며 대학생 선교회로 구성된 이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예배하는 그룹을 형성하고 전도의 열정을 키워나가고 있다.

대학생 사역의 목적 : “대학생 사역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모셔들이게 함으로써, 십자가 위에서 이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과 말씀의 교훈으로 거룩하게 성장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대학생 사역과 교회와의 관계 : 어느 교단 어느 교회 학생이든지 참여하여 활동하고 훈련받는 것이 가능하다. 단지 대학생 선교회는 개교회의 특성상 학생만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영성을 훈련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 선교회는 개교회에서 역량이 부족한 부분을 돕는 단체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사역하고 있다.

교육방법

-전도용 소책자 훈련 : 사영리와 비슷한 내용의 소책자

-기초 신앙 훈련 : 대학생 선교회의 7대 신앙, 다섯가지 복음의 원리 등

-일대일 양육 훈련

-성경 학교

프로그램 :

-여름 수련회

-각 대학별 캠퍼스 예배 : 매주 1

-캠퍼스 예배를 위한 조장 모임 : 매주 1

-매달 1 회 사이공내 각 대학별 연합 모임(9개 단과대학)

 

3) 전도훈련 및 제자훈련

캠퍼스와 학원복음화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전도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훈련을 받아 복음의 일군으로 나갈 자원에 대한 제자훈련은 선결 요건이라 하겠다. 제자훈련 대상자는 우선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목회자나 직분자의 자녀들을 집중적으로 전도훈련을 겸한 제자훈련을 하거나, 직접 전도나 관계를 통해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 양육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이 두가지를 병행해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는 기존 신앙인이 효율적이며, 신실함과 신뢰를 줄 수 있는 믿음적인 측면에서는 전도를 통한 새신자의 양육이 효과적이었다.

  (1) 베트남어 성경읽기

베트남어를 배우는 동안 언어학교 공부와 함께 베트남 교회의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것이 베트남 성경에 대한 이해였고 이것은 전도의 첫 열매인 T가족과 함께 매일 새벽에 베트남어 성경읽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성경을 읽을 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4:12)는 말씀처럼 성경을 읽는 중에 은혜가 넘쳤다.

이 성경읽기를 통해 베트남인 제자와 그 가족들은 모두 세례를 받았다.

  (2) 영성 수련회

일상적인 생활에서 탈피해 일년에 한 번은 영성 수련회를 가진다. 시기는 대학생인 제자들의 학기가 끝나는 6월 말에서 7월 초이며, 기간은 보통 23일이다. 이를 위해 베트남어 찬양과 설교, 간증을 준비하며, 제자들에게도 각자 충분히 준비하도록 한다.

베트남에서는 통성 기도와 찬양, 율동이 약하기에 이를 보강하는 좋은 기회가 바로 수련회인 것이다. 물론 육적인 영양 섭취(제자들은 보통 영양이 충분치 못함), 바다에서의 수영과 오락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회를 통해 하나님과 선교사, 제자들이 하나되는 것이다.

 

4) 베트남 문화연구

현지인 및 현지 문화 이해는 선교의 기초다. 이를 위해 현지 대학에서 수년간 공부하며 선교와 연관된 연구결과로 현지 문화이해와 선교사역에 공헌하고 있는 사역도 있다.

 

4. 음악, 찬양사역

음악과 찬양을 통한 사역은 노래를 부르거나 듣기를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적합한 하나의 사역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1)교회 음악 사역

베트남에서의 교회음악은 공인교회의 음악분위기와 가정교회의 음악분위기가 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공인교회의 음악은 주로 째즈형식을 가미시켜서 찬송가를 반주하고 찬양한다. 키타나 기타 전통악기로 찬양하는 것은 아직 전통교회의 정서에 익숙하지 않다. 악기는 주로 피아노나 오르겐이다. 요즘에는 복음성가들을 부르기도 하지만 보편화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가정교회의 음악은 키타를 많이 사용하는데 상당히 많이 낡아있다. 전통교회가 상당히 형식에 매여있다면 가정교회의 찬양분위기는 록 음악을 가미한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찬양들이 많다. 피아노를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대부분 배우지 못해서인 듯한데 그것이 오히려 쉽게 배울수 있고 값이 싼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계기를 만든 것 같다.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지만 주로 경배와 찬양을 메들리 형식으로 자유스럽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 자유스러워서 음악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생기는데 찬양사역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요구된다.

또 한 장르의 독특한 교회 음악의 형태는 이곳의 민요들을 개사하여 시편의 곡들을 붙여서 부르는 음악들이 있다. 가정교회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이 분야는 잘 개발하면 베트남 특유의 아름다운 교회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요즘에는 가정교회나 전통교회에서 찬양테이프나 CD를 제작할 만큼 수준도 갖춰져 있고 또 복음성가 책자들도 제법 구색을 맞춰서 만들어 낸다.

몇몇 찬양 사역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찬양테이프나 CD제작 그리고 제작된 것들을 보급하는데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찬양번역과 찬양 앨범 제작 사역을 하고 있다.

한국의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율동이 이곳에 접목된다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율동 사역자를 찾고 있다. 대학생 선교회와 가정교회에 율동을 보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약한 수준이다. 이곳은 율동이 거의 전무한 상태인데 한국과 베트남의 정서가 비슷한 점을 고려해 본다면 선교의 좋은 접촉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체면문화와 공산사회주의 정권 속에서 억압받아 두려움 속에 갇혀있는 이들의 영적인 마음을 여는데 율동이 굉장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 나라 베트남에 하나님 백성들이 모두 함께 모여 그 분의 이름을 목놓아 외치며 그 분이 하시는 모든 것을 온 맘 다해 찬양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2) 반주자 및 찬양단 양성

교회 음악에 대한 이해나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베트남에서 반주자를 양성하거나 찬양단을 양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반주자 양성과 교외음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휘자들, 찬양의 깊이를 시연해 보일 수 있는 찬양단(중창, 어린이 중창단, 합창) 등의 양성이 요구되고 있다. 이미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새로운 찬양의 보급을 위해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번역, 소개하고 있고 기존 복음성가 정리도 하고 있다.

 

5. 현지교회 협력

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사역의 한 방법이 바로 현지교회와의 협력 사역이다.

1)교회건축 및 재정 지원

베트남은 교회당 신축 통한 새로운 교회 개척의 사례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교회당 시설이 낙후되고 협소해져 증축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으나 재정이 어려워 교회를 증축하지 못하고 있는 기존 교회를 지원함으로 지역 신자들이 모두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해 줄 수는 있다.

이러한 부분에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많은 공헌을 해 왔다. 따라서 현지 교인들도 한국교회를 생각하는 비중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지교회에 자립심을 잃어버리게 하는 결과도 야기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있어 손쉽게 현지교회를 돕는 일을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트남교회는 한국교회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지원의 한 사례를 들어보자. 어느 날, 담임 전도사가 찾아왔다. 내용은 교회에 담장을 세워야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변에서 집을 지을 때, 교회 부지를 잠식해도 담장이 없기에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산은 약 천불 정도였다. 물론 예산은 확보되어 있지 않으며, 이 일에 대한 도움과 함께 자문을 요청한 것이다. 같이 기도하는 가운데,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전 교인에게 광고하고 작정 기도 및 작정 헌금도 하도록 하였다. 마침 베트남을 방문한 단기 팀이 있어 이를 기도 제목으로 제시하였고 그 교회에서는 흔쾌히 받아들였으며, 담장 뿐 아니라 교회 수리와 증축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T교회는 1973년에 건축되었기에 건물이 낡아 비가 새며, 비좁아 100명의 교인도 제대로 수용을 못하였다. 교육관이나 사택도 너무 허름하였다. 담임 전도사는 즉각 운영위원회를 소집하여 이를 통과시켰으며, 공사에 필요한 설계 및 예산안을 만들어왔다. 공사 내역은 담장 공사 및 본당 강대상 및 장의자 교체, 지붕 수리, 교육관 확장, 사택 개조 및 확장, 교회 내외부 전체 페인팅 등이었으며, 예산은 87백불이었다. 후원처인 부산서문교회에서 5천불을 헌금하였고, 19968월에 서문교회 정목사님 내외 및 성도들과 T교회 성도들이 함께 증축감사예배를 드렸으며, 참석한 성도 중 한 분은 은혜를 받아 피아노를 기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부터는 정기적인 목회 지원비도 보내주기로 약속하였다.

 

2)양육 및 교육 지원

베트남에는 현재 신학교가 없다. 그러나 현지인 교수,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 신학연장교육이나 성경연장교육을 교회 내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허가 없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한국 선교사가 간접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돕고 있다.

그리고 제자양육의 후속적 차원과 베트남 교회를 위한 인재 양성의 차원에서 교회 내 인재들을 한국에 유학 보내어 신학교육을 받게 하거나 일반 학과를 공부하게 하고 있다.

(1)신학연장교육 강의

베트남은 신학교가 없기에(물론 지금도 없지만) 전국의 주요 지역마다 신학연장교육(T.E.E. : 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을 하는 교회가 있다. 동나이 지역에서는 T교회가 그 장소였다. 신학연장교육의 총무가 T교회를 소개했기에 위험을 무릎쓰고 강의안을 준비하여 매월 약 10여명의 전도사 후보생(교회나 처소를 담임하지만 아직 신학을 이수하지 않았음)들에게 강의하였다.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 신학연장교육을 계속 진행할 수 없게 되어 T교회를 위해 기도하다가 교회의 담임 전도사 중심의 중직자들에게 목회적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 한국 교회의 장점인 기도와 목회의 열심, 주일학교 운영, 성가대 및 교회 음악, 사모의 역할, 교역자 자녀 지도, 청년 및 여전도회의 활성화 등을 접목하여 전도와 양육에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물론 재정적인 어려움도 같이 해결하고자 노력했으며, 우선 선교사와 현지인 교역자 간의 교제를 충분히 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하여 1996년 초부터는 T교회를 수시로 방문하고 담임 전도사 및 중직자들(5명의 운영위원회, 한국의 당회 역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2)정기 목회 세미나

담임 전도사와 중직자 교육인데, 처음에는 비 정기적으로 하였으며 일정한 커리큘럼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기적이고 예산과 강사진 그리고 커리큘럼이 수립되어 있다. 사역명을 정기 목회 세미나로 하였으며, 참석 대상은 담임 전도사 및 처소 지도자 부부로 제한하였다. 비록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고 늘 위험 요소가 따르지만 지혜와 기도를 통하여 사역하며, 작은 것으로 심지만 많은 것으로 거두기를 빌 뿐이다. 나아가 이러한 소그룹 모임이 성경학교, 지방신학교 또는 성경신학원으로 발전하며 베트남복음성회 및 국가에서도 인정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

 

6. 문서, 정보사역

문서와 정보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그 중요성이 더 높아져 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선교현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중요성도 더 높아 졌다.

1)문서 사역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행하신 가장 위대한 사역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문서 사역일 것이다. 온 인류의 인생의 길잡이인 성경이 바로 그것이다. 문서사역은 이곳에서 상당히 중요하면서도 상황에 적합한 사역이라고 생각된다. 적극적으로 전도할 수 없는 지역에서 문서의 인쇄와 보급은 이들의 영성생활을 돕는데 지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확신되어진다.

신앙서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성경에 기초를 둔 신학서적이나 신앙 서적들을 공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훈련교재 및 유익한 신앙서적의 번역 보급과 목회자를 위한 전문 서적 보급 등을 행한다. 특히 소수부족 성경책 보급을 위해 관여하여 비밀리에 성경책을 제작(복사본)하고 있는 팀도 있다.

문서사역은 주로 번역사역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팀들이 구성이 되어지기를 원하는데 아직은 번역팀들이 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필요에 따라서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서 영성 있는 책자들을 보급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영문서적들이 주로 번역이 되어졌는데 지금은 한글로된 훈련교재나 성경공부 교재들이 번역되어지고 있다.

지금 현재 번역된 조용기목사 책자들이 약 20권 정도 되는데 이는 조 목사님의 목회적 영성과 방향들을 이들에게 전해주고 가르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오래전에 번역된 조 목사님의 “4차원의 세계”(The Fourth Dimention:Duc tin nang dong:“역동적인 신앙으로 번역됨)는 베트남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의 고전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신앙인들의 실제적인 세계를 손으로 만지듯이 써놓은 책이다. 특히 말의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강조하고 있고, 조 목사님이 1979년에 직접 영문으로 쓴 책이다. 그 외에 번역된 대표적인 서적들은 성공적인 삶”(Successful life), “성공적인 구역조직”(Successful Homecell Group),“선배 동역자, 성령님”(Holy Spirit, My Senior Partner), “위대한 사업가”(Great Business Men), “More Than Numbers", ”Prayer with Jesus"(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도), "Threefold blessing"(삼중축복)과 기도에 관한 영문 서적들이 번역되어 보급되고 있고, 한글로 된 서적들은 구역공과와 새신자 양육교재, 일대일 양육교재, 성경학교 교재, 전도지 소책자 등이 지속적으로 번역되어 각 교회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구역공과 제 1 권은 공인교회에서도 사용되어졌었다. 구역공과 3권은 현재 은사주의 천주교회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교재이다.

앞으로 알차고 건전한 한국의 신앙서적들이 번역 보급되어지고 이로 인해 이 땅에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는 신실한 주의 백성들이 죽순처럼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2)컴퓨터(정보)사역

최근 베트남에서는 컴퓨터 사용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특별히 컴퓨터 수리와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기술적인 면에서 그 인력과 기술이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를 지원하는 업체와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몇 사람이 이미 정보 산업의 선두에 서 있으며 더 많은 동역자들이 점차적으로 세워져 가고 있다.

각 교회별, 교역자들간의 모임과 교류가 통제를 받는 베트남 상황을 볼 때 컴퓨터를 이용한 교류 및 정보 전달의 필요성과 그 비중이 크기 때문에 선교사들마다 공인교회나 관련 가정교회 및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정보 인프라 구축에 한몫을 하고 있다. 컴퓨터를 제공하거나 모뎀을 제공, 기초적인 컴퓨터 교육, CD 자료 제공 등에 한인 선교사들이 현지교회에 제일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계획적으로 이를 실행하는 컴퓨터 센터도 있다. 구체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주며 접촉점을 형성하고 있는 인터넷카페 운영, 컴퓨터 조립, 판매, 수리, 기술제공 및 VCD대여, 프로그램 제공 등과 같은 일들을 통해 저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7. 현지 지도자 양육

현재 베트남 선교의 한 과제는 베트남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의 부재에 있다고 선교사들은 말하고 있다. 현지 지도자양육에 있어서 그 방법은 그렇게 다양하지 못하고 대부분 비슷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지도자를 양육하거나 기존 성도를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세워나가는 방법으로 일차적인 방안을 실행하고 있다.

특별히 베트남에 지하교회가 생성되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사역 하나가 훈련이다. 그러나 특수한 환경에서 어떻게 훈련을 실시하는가를 알고 그 장단점을 파악해서 보다 효과적인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협력 해야 한다. 훈련사역에 동참한 경험을 토대로 기술하기로 한다.

1) 훈련환경

지하교회는 이미 지적한바와 같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아 활동하는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현행법에 의하여 지하교회는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훈련은 당연히 비밀리에 실시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신학교가 없는 상태에서 사역자를 양성해야 하고 일꾼들의 영적 훈련을 해야 하는 필요가 절실하다. 훈련의 비밀 유지를 위해

첫째는, 훈련생의 제한이다. (최대인원은 20명을 넘지 않는다)

둘째는, 일정한 장소를 사용하지 않는다.(개인가정이나, 미니호텔)

셋째는, 훈련기간은 짧게 한다.(사역자양성 202개월, 영성훈련 37)

 

2) 훈련종류

첫째, 사역자 양성훈련과 영성훈련으로 나눌 수 있고. 평신도지도자 훈련이 있다.

둘째, 자체훈련과정이 있고 해외단체에서 실시하는 훈련과정이 있다.

(1)목회자 양육

규모가 갖추어져 있는 지하교회그룹은 자체 내에 교육부서가 조직되어 있다. 이 부서는 그룹내의 모든 훈련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부서는 훈련일정, 과목, 등 훈련에 필요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훈련계획을 각 교회에 알려 사명 받은 대상자를 각 교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훈련을 한다. 두란노(1) 두란노(2) 안드레(1) 안드레(2)와 같은 4단계 등급으로 훈련 계획을 세워 매년 1단계 훈련을 실시하고 현장 사역에 헌신하다가 다음 해에 2단계 훈련에 참여하는 방식으로서 전 과정을 마친 후 사역자로서 자격을 부여한다.

또 다른 하나는 해외에 있는 신학교에서 단기 코스의 프로그램을 현지에서 실시하여 이 과정을 이수하면 사역자로 임명한다. 이 같은 신학과정에 대한 이름은 이미 밝혀져 있어 생략을 한다.

일찍이 통신신학의 하나인 ICI( International Correspondence Institute)코스를 도입하여 활용하는 그룹이 있다. 이 과정을 이수한 학생에게도 사역자 자격을 부여한다.

이렇게 해서 임명된 사역자들이 지하교회의 담임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지하교회 그룹들 내에서는 목회자로 인정을 받고 있으나 정부 또는 공인교회에서는 인정을 하지 않는다. 또한 훈련과정이 단기코스이며 가르치는 교수진들의 참여가 한계가 있어 주로 현장목회에 필요한 과목을 중심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자체내의 사역자 훈련과정을 이수하였더라도 해외신학교 과정을 참여하여 자질을 보충하기도 한다.

사역자 영성훈련

해외의 선교단체나 베트남선교를 하고 있는 개교회에서는 매년 한가지 이상의 단기 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주로 세미나 형식으로 2-3일간 각 그룹의 사역자들을 초청하여 실시한다. 이러한 세미나 형태의 영성 훈련은 거의 매월 1회 이상 실시되고 있다. 이 훈련을 통하여 침체된 영성부분을 재 충전하고 세미나 주제에 따른 영적 지식을 터득한다. 모든 필요한 경비는 프로그램을 주최하는 쪽에서 부담을 하고 있다. 이것도 비밀리에 실시해야 하므로 주로 관광지 호텔을 사용하고 있다.

자체 영성훈련은 매 3개월마다 금식기도기간을 정하고 한 장소에 모여 실시하기도 한다. 대부분 3일동안 아침7시부터 오후4시까지 실시하며 이 때에는 외부강사를 청빙하기도 하고 자체내에 임원목회자들이 집회를 인도한다.

(2)평신도 지도자 양육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장소에 처소모임을 갖게된다. 지하교회는 모임에 있어 숫자의 한계가 있다. 예배모임에도 30명을 넘을 수가 없다. 주변의 이목도 있고 장소도 주로 처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수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모임이 필요하게 되고 이를 인도할 일꾼이 요청된다.

임명할 일꾼은 평신도지만 준비된 자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평신도지도자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갖고 훈련을 시키고 있다. 특히 각 교회는 구역을 조직하고 구역장을 평신도 지도자로 세우고 있어 영적훈련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평신도 지도자 훈련은 사역종류에 따라 분류를 하고 있다. 먼저 구역장, 그리고 어린이 사역을 위한 교사, 전도사명을 받은 전도자로 구분하고 있다. 자체내에서 매주 1회에 걸쳐 각 교회의 담임이 주관해서 영성훈련을 하고 있지만 관계되어 있는 선교사가 프로그램을 갖고 참여하기도 한다. 본 선교사의 경우 3개의 교회에서 선발된 구역장들을 매주 1회 각 주제를 설정해서 훈련을 하고 있다. 전도자 훈련은 매 3개월에 한번 3일을 집중적으로 영성을 중심으로 실시하고 있다.

해외선교단체에서도 평신도훈련을 실시한다. 사역자 훈련과 같은 방법으로 각 교회에서 선발된 평신도들을 한 곳에 모아 훈련을 한다. 특히 지하교회는 어린이 사역이 취약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많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 평신도훈련에 참석할 숫자에도 한계가 있다.

3) 훈련과목

각 훈련과정에 따라 과목을 배정하여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학교와 같이 조직적으로 학점을 이수하는 과정은 아니다. 주로 현장목회를 중심으로 단기간 실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역에 당장 필요한 지식을 공급하는 과목으로 짜여져 있다.

신학부분에 있어 깊이 있게 다루지 않지만 조직신학의 창조론, 신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인간론, 죄론, 종말론 등을 배운다. 현장사역에 필요한 목회학, 지도자론, 전도학, 상담학 그리고 교회성장학을 배우고 교회역사학도 간단하게 배운다. 그러나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특수한 과정이 아니면 대부분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4단계를 훈련하며 각론으로 배우고 있다. 해외의 신학교와 같이 전과목은 아니지만 사역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자질을 가르치고 있다. 다만 보다 깊은 신학적 지식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훈련에 필요한 교재는 해외단체에서 실시하는 과정은 미리 준비를 해서 각 학생에게 무료로 배부를 한다, 자체 내에서도 대부분 준비돼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요약된 노트를 주어 강의 할 때마다 직접 내용을 필기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과목은 수료할 때 반드시 시험을 치른다. 시험점수의 결과에 따라 우수학생에게 상을 주어 격려를 해 준다. 물론 수료시 수료증을 준다.

 

8. 의료 및 특수사역

최근 선교전략의 인식변화와 함께 전문인에 의한 특수사역의 중요성도 한층 증가되었다. 베트남에서도 전문인에 의한 특수선교는 좋은 효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정치, 종교적 제한 상황하에서 적절한 사역 형태라 하겠다.

1)의료사역

베트남의 1차 진료기관인 응급종합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로 근무하며 환자들을 대하는 가운데 사역을 행하고 있다.

베트남의 의료제도는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은 정식 6년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있고 3년제 의대를 졸업한 준의사와 그리고 3년제 간호학교가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공공기관에서 5년간 근무한 이후에 개인이 개업할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과 같은 전문의 제도가 없고, 한 전문과에서 오래 근무하면 전문의로서 활동하게 된다. 국민일인당 GNP 400달러가 말해주듯이 베트남의 의료장비 수준은 전체적으로 떨어진다. 사회주의국가라 정부에서 모든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고 최근에는 개인병원이 많이 세워지고 있다. 경제적 수준에 비하여 사회주의국가라 기본적인 의료조직은 잘 구성되어 있다. 호치민시를 보면 각 전문과목마다 하나의 커다란 전문병원이 구성되어 있어 많은 환자를 해결하고 있으며 심장센터와 안과병원, 산부인과병원, 외상센터가 각각 하나씩 있어 각과 환자가 전문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각 구마다 보건소가 하나씩 있고 지방도 조직은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대도시 큰 병원에 가면 MRICT가 있는 병원이 몇 군데 있지만 건물은 낡았고 약간 더럽다. 지방에 가면 더욱 안 좋고, 우리나라에 비해 열악한 시설을 유지하고 있다. 의사가 많고 월급이 적어서 의사들이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일반 노동자 월급과 의사의 월급이 차이가 없다.

이곳은 의료사역자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아주 많은 지역이다. 먼저 지방에서는 의료시설과 장비가 열악하여 적절한 의료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도시에도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사역의 방법은 먼저, 이동 진료를 통하여 그들에게 도움을 줄수 있다. 이동진료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들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

다음으로 병원을 설립하여 활동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병원설립을 상당히 원하고 있으므로 병원을 설립하여 이곳에서 일하면서 우리들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지방에서 보건 사업을 통하여 우리의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다. 지방에는 보건조직은 잘 형성되어 있지만 모든 것이 부족하여 실질적으로는 잘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베트남 병원에서 일하는 방법이 있다.

다음으로, 서울의 단기 전문의료팀과 협력하여 활동을 할 수 있다. 예를들면 언청이수술이나 기형수술 등과 같은 것이다.

다음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곳은 아직은 진료비가 저렴하므로 진료비용이나 수술비용을 지원하는 방법이다.

 

2) 장애자 사역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병든자, 약한자, 가난한자, 억압받는자들과 함께 하시며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모든 고통을 담당하셨다. 장애인사역은 주님과 같이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베트남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있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보조와 인식의 결여로 전쟁으로 인한 장애인 등 수 많은 장애인들이 방치되다시피 버려져 돌봄을 입지 못하고 있다.

장애자 사역은 적십자사나 여성동맹 등과 협력해 부분적으로 사역을 진행할 수 있다. 혹은 N.G.O.를 통해 학교 설립이나 시설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농아학교에 보청기 지원, 맹아 학교에 지팡이 지원, 지체 부자유자들에게 보조기 지원 등의 사회 복지 지원을 통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최근 사회복지를 전공한 선교자원들이 베트남에 들어와 지역 봉사를 위해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두고 연구 중에 있다.

 

3),미용 사역

전문인선교사의 사역 분야로 깊숙한 지방에 들어가 현지인들에게 미용봉사를 행하고 있다. 매월 1회 의료진이나 다른 봉사팀과 함께 방문하여 사역을 하거나 단독으로 행하고 있으며 현지인에게 미용 기술을 전수하며 가르치는 일을 통해 미용사로 키우는 일도 하고 있다.

 

9. 교육사역

각 분야의 강의 사역이나 교육 지원을 통해 선교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1)한국어 강의

정규대학에서의 한국어 강의, 컴퓨터 강의, 한국어 캠프전개 등

공단이나 직업학교 등에서의 한국어 강의, 야학 교사 활동

학원에서 영어강의, 영어 캠프운영 등

한국어는 베트남에서 유망한 과목 중 하나로 지금도 호치민시의 4개 대학에 정규 학과로 개설되어 있다.

19959월부터 H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한국어를 강의하였다. 이 때, 중부 소수종족의 전도사 두 자녀를 이 학교 한국어과에 입학시키고 제자 훈련을 시작하였다. , 낮에는 학교에서 한국어를, 밤에는 집에서 성경을 가르친 것이다. 이들은 지금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 한 경우는 한국문화원 한국어학당 담당으로 있으며 만난 제자로 역시 한국어과 재학 중이었다. 당시 불신자였던 그에게 고급 한국어와 함께 성경을 가르치고 결국 주님을 영접하였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S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공부 중이며, 과정을 마치면 졸업한 학교의 한국어과 강사를 시작으로 교수 요원이 될 예정이다.

 

2)태권도 지도

체육관(도장) 운영-성인반, 아동반, ,,,대학생반, 직장인반, 여성반 등으로 나누어 계층별 전도 전략이 가능하도록 활동하고 있다.

기타 스포츠와 관련해 제반 운동 시설 및 강습을 통해 접촉점을 형성하여 복음 증거가 가능하도록 함.

 

10. 소수종족사역

베트남이 다민족, 복합문화를 가진 선교지임을 감안할 때,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모든 족속(종족)으로 제자를 삼으라’(28:19)는 지상 명령은 베트남에서의 소수종족사역에 대한 충분한 근거와 중요성이 있다.

1)정탐과 자료화

우선 종족 사역에 필요한 것은 현장 체험과 정보, 자료이다. 베트남은 소수종족에 대해 매우 폐쇄적이므로 이를 얻기는 매우 힘들다.

199510월부터 베트남 중남부에 거주하는 소수종족들을 정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탐을 나갈 때마다 사진기는 물론 메모지, 지도 심지어는 소형 녹음기까지 동원하였으며, 돌아와서는 이를 자료화하였는데 보통 한국미전도종족입양본부(A. A. P.)에서 제시한 규정을 기준으로 하였다.

19975, 정탐을 마친 종족 중에 우선적으로 입양이 필요한 7개 종족(크메르, 끄호, 에데, 야라이, , 스팅, )을 파일과 사진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근거로 미전도 종족 입양사역을 추진하였다.

 

2)미전도 종족 입양

현재까지 상기 종족 가운데 4개 종족을 한국 교회에서 입양하였으며, 계속적인 사역을 진행 중이다. 이는 해당 종족을 대상으로 사역할 선교사의 파송과 지원, 단기 팀 방문, 구제와 사회 사업 등을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입양된 종족과 입양한 교회, 시기와 관련 사역은 다음과 같다.

(1)크메르족- 서대문교회 : 1997. 2. 23 / 정탐 후 선교사 파송, 해당 선교사가 전담 사역 중

(2)예족- 광성교회 : 1999. 3. 21 / 예족 교역자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 지급

(3)야라이족- 천안대학교 선교학과 : 2000. 5. 9 / 야라이족 교역자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 지급

 

3)제자 훈련

19957월부터 소수종족의 교역자 자녀 중 대학생을 대상으로 제자 훈련을 하였으며, 그 내용은 성경 공부, 공동체 생활, 상담을 통한 진로 지도 등이다. 아울러 학비는 전액 지원하였으며, 생활비도 대부분을 지원하였다.

2001년 초부터는 방 3칸과 부엌, 거실이 있는 집 한 채를 세 내어 소수종족 제자 기숙사로 사용 중이며, 매 주일 저녁 모임을 통해 구원의 길을 교재로 성경 공부 및 공동체 생활 중이다.

현재 이 곳에는 소수종족 제자 8명이 생활 중인데, 이들의 종족 명과 수, 배경은 다음과 같다.

(1)에데족: 4/ 의사() 훈련생 - 의대 졸업, 전도사 후보생 - 한국어과 졸업, 컴퓨터 기사 후보생 - 직업학교 입학 예정, 경제대학 입학 예정

(2)야라이족: 3/ 의사() 훈련생 - 의대 졸업, 전도사 후보생 - 한국어과 졸업, 약학대학 입학 예정

(3)예족: 1/ 동남아과 재학

 

4)브루족 처소지도자 훈련

브루족은 베트남 중부인 광찌성에 거주하는 소수종족이다. 40,000명의 인구 중 약 5,000명 정도 만이 23개의 처소를 통해 복음을 들었을 뿐이다. 브루족이 거주하는 광찌성의 케산에는 1975년부터 브루족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베트남인 전도사가 있는데, 이 전도사를 지원하며 정기적인 처소지도자 훈련을 시키고 있다.

내용은 기초 복음제시(4영리), 주일학교 운영, 단계별 성경 공부 등이며, 여름성경학교와 성탄절에는 특별 교사 훈련을 가진다. 아울러 이 전도사의 자녀를 호치민시에 유학시켜 대학에 보내며,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지원한다.

 

11. 한인교회사역

오늘날 세계 곳곳에 한국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한인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베트남에도 하노이와 호치민에 연합된 한인교회가 세워져있고 현지에서 한인교회로서의 새로운 선교를 감당해 나가고 있다.

 

베트남언론, 하노이한인교회 선행 극찬

하노이에 유일한 한인교회가 1만달러의 거액을 모금해 베트남 장애인 등 불우이웃을 도와 현지 언론의 찬사를 듣고있다.

베트남 군 기관지인 콴도이년전(인민군보) 등 베트남 일간지들은 하노이 한인교회가 지난해와 올해 두차례에 걸쳐 바자회 등을 통해 모은 1만달러를 최근 베트남의 불우이웃들에 전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태원수목사를 비롯한 100여명의 교인들은 2년동안 바자회를 통해 모은 1900달러 중 5천달러를 전달했다.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두 차례에 걸쳐 전달된 이 자금은 이 마을 31개구가 소와 돼지 등을 길러 소득을 올리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한인교회는 또 지난달 27일 베트남 장애인 수술비용으로 3천달러를 남딩성 아가페병원에 전달했으며 5월초에는 하이증성의 나환자촌을 방문해 2천달러를, 5월말에는 하터이성 자이딩 장애인센터에 휠체어 10대를 각각 전달할 계획이다.

베트남 언론들은 한인교회의 이같은 선행이 베트남과 한국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고 양국간의 거리를 더 가까이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료출처: 하노이=연합뉴스, 발행일: 200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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