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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행정 연구소/베트남 정보

베트남 장례 문화와 틱녓한 스토리텔링

by 임도마 2024. 12. 5.

베트남의 장례문화와 승려 틱낫한의 스토리텔링을 통한 복음 전도 방안

임도마

 

베트남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과 같이 대승불교권(Mahayana)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 열반 후에 불교가 인도 대륙 대부분의 지역으로 전파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유한 재가 신자나 왕족들의 후원으로 사원제도가 정착하고 출가자들의 생활이 안정되었다. 그 후, 출가수행자들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현학적인 교학 연구에만 몰두하여 불교 본연의 임무인 중생 교화를 등한히 하게 되었다. 이에 재가 신자들과 그들을 지도하던 일부 출가수행자들이 중심이 되어 B.C, 1세기 무렵 새로운 신앙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시작이다.

대승불교는 과거불 사상에서 시작하여 미래불 사상(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해서 석존 대신 중생을 구제한다), 내세불 사상(서방정토의 아미타불), 사방변만불 사상(세상 사방 어느 곳에나 붓다가 가득 차 있다-비로자나불), 내재불 사상(붓다는 현재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까지 발전하였으며 대중 구제에 중점을 두었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라는 새로운 이상상(理想像)을 만들었다. 보살이란 원래 보리살타를 줄인 말로 이는 산스크리트어의 Bodhisattva를 한문으로 옮긴 것이다. ‘보리는 깨달음, ‘살타는 중생이란 뜻으로써 깨달음을 구하는혹은 깨달음 속에 있는 중생이란 뜻이다. , 깨달음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수행과 함께 끊임없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최상의 과제로 삼는다. 부처님은 오직 석가모니불과 미래에 등장할 미륵불만이 있다고 했으나 대승불교에서는 지장보살, 관음보살 등 수많은 보살을 설정하고 있다.

1. < 대승불교와 상좌부 불교 특징 비교 >

 

베트남의 신앙과 종교들은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토착문화의 바탕 위에 여러 외래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형성된 중층문화적’(重層文化的) 구조를 갖고 있다.

정령숭배, 조상숭배, 혹은 샤머니즘 등 토착적인 신앙 구조 위에 지난 2천년 이상 인도, 중국, 유럽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들어온 여러 외래종교들이 수용되었다.

이런 외래종교들로는 참(Cham)족을 통해 들어온 힌두교와 이슬람, 그리고 기원전 1-2세기부터 들어온 불교, 도교, 유교가 있다. 이 세 가지 종교는 베트남어로 바쟈오’(Ba Giao, 三敎)라는 혼합주의적 신앙체계를 이루었다. 베트남의 토착적인 신앙은 천주교, 도교, 불교의 혼합 신앙인 까오다이(Cao Dai)와 같은 신흥종교를 낳기도 했다.

유교의 강세와 더불어 쩐(Tran) 왕조(1225-1400) 때부터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 베트남 불교는 20세기 초에는 베트남 민중 사이에 인기가 거의 없어져 사멸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 통치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에서 민족종교로서의 위치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했으며, 독립 후 가톨릭 친근 정책을 추진한 응오딘지엠(Ngo Dinh Diem) 남베트남(월남) 대통령(재임 1955-1963)의 불교 억압에 대항하여 불교 승려들이 소신공양(燒身供養, Đốt xác để cúng dường)하는 것을 통해 불교가 베트남 사회에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다. 지엠 대통령의 사망 후 불교계의 영향력은 급속히 증가하여 남베트남 사회의 지배적인 민중종교로 다시 자리를 잡았고, 이러한 위치에서 1975년 남베트남을 통일한 북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을 맞이했다.

베트남 하노이 정부는 1975년 이후 민족종교인 불교에 대해서 가능한 한 포용적 자세를 취하면서 상가(Sangha-조합, 僧迦)를 사회주의 체제에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불교계를 공산당의 철저한 통제하에 두려고 198111월 하노이 정부는 베트남의 여러 불교 종파들을 베트남불교회(Vietnamese Buddhist Church)로 통합했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의 불교도들에게서 호응을 받지 못한 일방적인 조치에 불과했다. 특히 당시 외국에 살고 있던 베트남 불교도들의 대부분은 이 강압적인 통합에 적극 반대 했다. 이 통합 조치로 인해 일어난 여러 사건 중에서 1993521일 한 불교 신도가 훼(Hue)에서 소신공양하였고, 19951월에는 베트남 통일 불교회의 의장인 틱후인쾅(Thich Huyen Quang)이 구속되었고 그의 투옥에 항의한 23명의 승려도 체포되었던 것 등은 공산당 정부와 불교계 간에 존재하는 상당한 알력을 시사한다.

한편 베트남불교회는 종교-국가-사회주의의 표어 아래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공산당의 기본 방침에 입각하여 활발한 사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것은 베트남 불교계가 베트남 사회에서 불교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노력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당 정부가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베트남불교회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약 190만 불교 신자들을 동원하여 의료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의약품을 제공하며, 빈곤층에게 옷과 식품 등을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기독교는 16세기 포르투갈 사람들이 가톨릭을 전파한 이후 들어오기 시작하여 17세기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개신교도 전파되었다. 1975년 월남 패망 이후 베트남 공산당 정권하에서 모든 종교는 일시간 주춤했으나 교회는 계속 유지되었고, 개방정책 이후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띄기도 했다. 그러나 전도와 선교의 자유가 없고 특히 외국 선교사들의 현지인 접촉이 공식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상황에서 선교는 장기적인 계획과 다양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된다.

오늘날 베트남은 불교권이라는 인식을 거의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그 세력이 미미하다. 또한 과거에 종교 말살 정책에 대항하여 수없이 많은 불교 지도자들이 소신공양을 했지만, 현재 그 열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본 연구 발제는 베트남의 장례문화와 승려 틱낫한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베트남 불교인들에게 효과적인 복음 전도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I. 베트남 장례문화

장례식은 종종 특정 규정, 의식, 예배, 금욕과 관련이 있다. 장례식은 그 나라의 전통적 관습에 따라 거행되며, 그 공동체의 죽음 개념, 죽은 자의 세계,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를 표현한다. 베트남의 장례는 대부분 불교식으로 치러진다.

 

1. 불교식 장례

각 지역과 주민의 풍습에 따라 장례 형태가 다양하다. 베트남에서 유명한 보응웬지압(Vo Nguyen Giap) 장군 가족의 장례식도 불교 의식을 따라 치러졌다.

 

1) 베트남의 불교식 장례문화 특징

(1) 조상숭배 문화

베트남에서는 조상의 묘를 중요하게 여긴다. 논밭이나 마을 옆 들판, 공동묘지에 조상의 시신을 안장한다. 이로 인해 개장식이라는 독특한 장례문화가 존재한다. 1차로 조상의 시신을 안장한 뒤, 35년 후에 이장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뼈만 남은 시신을 깨끗하게 닦아 석관이나 항아리에 모신 뒤 생전에 고인이 묻히길 원했던 장소에 다시 안장하고 비석을 세운다.

(2) 혼백

베트남 사람들은 조상의 혼과 백을 붙잡기 위해 비단으로 시신을 덮는다. 이 비단을 혼백이라고 부르며, 혼백을 지붕으로 가져가 함께 날려 보낸다. 죽어서도 혼과 백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묘지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객사하기 전에 환자를 집으로 모시는 일은 중요한 일이며, 객귀라고 불리는 죽은 자의 영혼을 분노시키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처리한다.

(3) 장례 의식

불교의 장례 의식은 (1) 녑림(nhập liệm:입관) (2) 꿍껌(cúng cơm:49제의 식사) (3) 동관(động quan:운구) (4)하후잇(hạ huyệt:매장)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오래된 장례 의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지역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의식은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단순화되어 있다. 염불이 불분명하고, 단조로우며, 인간의 효도를 증진하기 위해 고대 승려들이 제안한 모든 사상을 표현하는 진정한 의식은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입관 :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최소 4시간, 바람직하게는 24시간 후, 철저히 씻어서 다음 의식에 따라 시신을 관에 넣는다. 고대 풍습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쌀이나 금, 옥을 입에 넣는다.

입관 후 향 그릇으로 제단을 세운다. 영이 깨어나 몸을 떠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도록 영의 안정을 요청한다. 전통적인 민족 풍습에 따르면 밥 한 그릇(그릇 두 개를 거꾸로 놓는 것), 젓가락 두 개, 삶은 달걀 한 개를 제단에 놓아둔다.

입관 후 친지와 친척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고인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의 감사와 효도를 기억하는 형태로 특히 이 의식에서 집례자는 세 가지 진언을 사용하여 상복에 대해 기도하고 백성들의 오복은 아름다운 옷을 받는다라고 구송하여 장례식 가족들에게 입혀준다. 베트남의 장례식 복장은 흰색과 검은색의 두 가지 색상이다. 붉은 혼례복의 색은 번영과 행운을 나타내고, 흰색은 상실과 삶의 흐름을 표현한다. 슬픔에 싸인 가족은 흰색 옷과 흰색 두건을 착용한다. 이때부터 장례는 공식적으로 발표되며, 친지와 지인들이 장례에 참석하게 된다.

운구 : 장례나 화장을 위해 관을 옮기는 의식으로 가장 감동적인 의식이다. 장례가 평안하고 편리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보호해 달라는 뜻으로 장례식장 앞에 공양상을 놓는다. 공양식이 끝난 후 집례 스님은 중생과 신과 형상이 멀리 승천하도록 축복하여 주소서.”라는 구창을 한다.

운구하는 동안 길 가운데서 한번 예배하는데 이 의식의 의미는 첫째, 길이 멀기 때문에 잠시 쉬어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도록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시간이며, 둘째, 쉬는 시간에 자녀들과 손자들이 절하고 효도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매장 : 땅의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땅의 신과 무덤 주위의 향령들에게 기도한다. 이제 영혼이 이 지역에 함께 거주하고 있다. 매장 후에 향을 피우고 스님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내빈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의식을 한다.

(4) 장례 기간

베트남 불교식 장례는 35일 동안 치러진다. 망자의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방문해 애도한 후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장지로 향한다. 장례 행렬은 화려하게 진행된다. 고인이 못 먹고, 못 쓰고, 그리고 못 누리고 죽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수록 장례 행렬은 화려해진다. 장례식에 사용하는 음식과 술, 음악은 고인에 대한 존경심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부자일수록 장례식 절차는 더욱 정교하고 복잡해지고, 고인이 생전에 가졌던 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장례비 지출을 당연하게 여긴다. 과거에는 애도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어떻게, 얼마나 오랫동안 애도해야 하는지에 관해 토마이(Tho Mai)서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49, 100, 1, 2, 3년 등의 기간에 제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시간이 바빠지고 생활이 각박해져서 긴 장례를 할 수 없다.

 

2) 베트남 불교인의 죽음에 관한 인식

불교에서 죽음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불교는 순환적인 시간관에 기초하여 업보, 윤회설을 믿고 있으며, 죽음은 한 생애의 종말이자 재생을 향한 행로의 출발이다. 불교도는 영혼을 육신으로부터 해방시켜 극락왕생(極樂往生)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죽음 이후 화장에 대해서 관대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1) 의식의 소멸

불교에서 죽음은 육신과 의식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 이는 수명을 지닌 생명체가 변화해 가는 과정의 하나에 불과하며, 새로운 탄생을 위한 중간 단계라고 이해한다.

(2) 생과 사

불교에서는 생과 사가 같다고 한다. 이는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이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삶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죽음은 삶으로부터의 출구이면서 내생으로의 입구가 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3) 무명의 세계와 윤회

불교에서 중생은 생사를 유전(流轉)하는 과정으로 인연에 의해 임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존재이다. 죽음은 무명(無明)의 세계에 윤회하는 한 기간의 상태를 뜻하며, 중생의 생존을 의미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2. 기독교식 장례

기독교 장례식은 유족의 위로를 위해 미신적인 형식을 절대 피하고, 위생 문제에 주의하며, 단순하면서도 품위 있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예식을 진행한다.

1) 베트남의 기독교식 장례문화 특징

(1) 종교적 의미

불교 장례문화는 조상숭배의 성격이 크지만, 기독교 장례문화는 종교적 의미를 가진다. 예배, 기도, 성경 읽기 등이 포함된다. 베트남 개신교는 고인을 위해 49일이나 100일 제사를 치르지 않는다. 친척이 부재중이거나 고인과 멀리 떨어져 있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 남아 있는 유족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기도회를 조직할 수 있다.

(2) 장례 의식

기독교 장례는 종교적 의식을 따라 엄숙하게 치러진다. 교회나 개인 가정, 장례식장 등에서 진행되며, 목사가 주도한다. 발인, 운구, 문상 등의 순서를 따른다. 모든 장례 의식은 기독교 신앙에 어긋나서는 안 되며, , , 과일 쟁반, 나팔, , 일시 정하기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번거로운 상복은 없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애도는 세상의 영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입관식에 앞서 고인의 시신을 수의로 덮어 관에 안치하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뚜껑을 닫지 않는다. 관은 예식 자리에 안치되고, 한쪽에는 유족, 반대편에는 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서고, 집례 목사도 해당 위치에 선다. 관 뚜껑에는 필요한 경우 고인의 사진만 놓고 흰색 십자가가 수놓인 진한 파란색 또는 검정색 천으로만 관을 덮는다. 관이 있는 동안 교회는 편리한 시간에 기도회를 열어 유족들을 위로한다.

매장 시 교회 목사와 집사위원회는 필요한 모든 일을 간단하고 위생적인 ​​방법으로 가족과 협력한다. 화장할 경우, 목사는 관 위에 모래나 꽃가지를 올려놓고 화장을 한다.

(3) 장례 기간

불교 장례는 35일간 진행되는 데 비해, 기독교 장례는 보통 12일 동안 진행된다.

 

2) 베트남 개신교의 장례에서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의미

(1) 하나님 안에서 안식한다.(14:13; 살전 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1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2) 축복된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한다.(23:43; 1:23; 고후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1:23)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8)

(3) 주님 오시는 날 부활할 것이다.(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II. 틱낫한 스토리텔링

불교 승려이자 세계 4대 생불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베트남 출신 승려 틱낫한(Thích Nhất Hạnh)19261011일 베트남 중부 훼(Huế)에서 태어나 16살이 되는 1942년에 출가하여 1951년 비구계를 수계하였다. 당시 법명은 풍쑤언(Phùng Xuân, 逢春)이며 1949년부터 녓한(Nhất Hạnh, 一行)이라는 법명을 쓰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한국어로 틱낫한으로 표기하지만, 실제 베트남어 발음(틱녓한)과는 차이가 있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스승이라는 의미로 그를 타이(Thay, 선생)라고 부르기도 한다.

1926년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태어난 틱낫한 스님은 16세에 훼(Hue)의 뜨히우(Tu Hieu) 사원에서 출가하였다. 1950년대 초반, 젊은 승려 틱낫한은 베트남 불교의 갱신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그는 그 시대의 승려들보다 앞서 사이공의 대학에서 불교가 아닌 일반 학문을 공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자전거를 탄 최초 6명의 승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승려들은 사원 안에서의 참선 생활을 지속해야 할지 아니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격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참여 활동을 해야 할지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틱낫한 스님은 그중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하여, 그의 저서 화염의 바다에 핀 연꽃(Lotus in a Sea of Fire)에서 소개한 참여 불교운동을 시작한다. 2007년에 베트남 정부와 협상하여 베트남으로 귀국했고, 20181026일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하였고, 2022122일 세수 95(법랍 79)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1. 틱낫한 스님의 삶 이야기

틱낫한 스님은 세계적인 영적 스승이며, 시인이자, 평화 운동가이며, ‘마음 다함’ (mindfulness, 정념, 마음 챙김, 주의 깊음 등으로 번역됨)의 가르침으로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았다.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다가 63년에 베트남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1966년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에서 반전운동가로 활동하였는데, 이 때문에 1975년 북베트남 정권이 베트남 남부까지 장악하자 귀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틱낫한 스님은 내면의 변화를 통해 개인과 사회 모두를 이롭게 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1961년 틱낫한 스님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강연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고. 이듬해에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불교 연구를 계속한다.

1960년대 초반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에서 청년사회봉사학교(School of Youth and Social Service)를 설립하여, 치열한 전쟁 중에 일어난 대홍수 피해 난민 구제 활동에서 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비폭력과 자비의 불교 가르침에 바탕을 둔 사회봉사 활동의 기초를 다졌다. “명상은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돌아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있으면 행동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 챙김을 통해 우리는 도움을 주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게 됩니다.”라고 스님은 말했다.

1960년대에 틱낫한 스님은 학자, 교육자, 그리고 사회운동가로서 사이공에 반한불교대학(Van Hanh Buddhist University)을 설립한다. 또한 라보이(La Boi) 출판사를 설립하여 평화 활동을 위한 영향력 있는 정기간행물을 발간한다.

1966년 불교 본래의 가르침에 기반한 종단인 상즉종(相卽宗, Tiếp Hiện-접현, Order of Interbeing)이라는 불교 종파를 신설하였고, 196651, 베트남 뜨 히우((Tu Hieu) 사원에서 틱낫한 스님은 쩐텃(Chan That) 선사로부터 법등(lamp transmission)을 전수 받는다. 틱낫한 스님은 이후 미국과 유럽에 평화와 베트남의 정전을 외치기 위해 다시 출국한다.

1966년 미국 방문에서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이 만남에서 킹 목사는 틱낫한 스님을 그는 평화와 비폭력의 사도입니다.”라고 했다. 이후 19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틱낫한 스님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한다.

틱낫한 스님은 이러한 해외 활동으로 남북 베트남 정부 모두에게 입국 금지 조치를 받게 되고,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그의 망명 생활은 39년간이나 계속된다. 틱낫한 스님은 멈추지 않고 전 세계에 평화와 형제애의 메시지를 알렸고, 베트남 전쟁을 멈추기 위해 서방의 지도자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1969년에는 파리 평화 협정의 불교계 대표자들을 이끌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파리 소르본 대학(University of Sorbonne, Paris)에서 불교 강의 및 연구를 하였고, 1975년 파리 근방에 달콤한 감자(Sweet Potato)’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1982년에는 프랑스 서남부 보르도 지역의 좀 더 넓은 장소로 옮겼으며, 이 공동체는 이후 플럼 빌리지(자두마을, Plum Village)’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플럼 빌리지는 틱낫한 스님의 영적인 지도 아래 프랑스 시골의 작은 공동체에서 서양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불교 사원으로 성장한다. 현재 200명 이상의 승려들이 머물고 있으며, 매년 전 세계에서 8천 명이 넘는 방문자들이 이곳을 찾아 마음 다함의 삶의 기법(the art of mindful living)을 배우고 있다.

플럼 빌리지 전통의 마음 다함수행센터들은 경제, 교육, 가족, 의료, 정신 치료, 정치, 청소년 및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퇴역군인 등 다양한 분야와 계층을 위해 특화된 수련회(Retreat)를 제공한다. 플럼 빌리지는 남녀노소, 성장 배경, 종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방문자를 환영한다. 참가자들은 수련회를 통해 걷기 명상, 앉기 명상, 먹기 명상, 완전 이완 명상, 일 명상, 멈추기, 미소 짓기, 마음 다함의 호흡 등을 배운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오랜 전통 불교의 수행 방법 중에서 틱낫한 스님이 이 시대에 맞는 수행법들을 추린 것으로, 쉬우면서도 일상 속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 십만 명이 넘는 수련회(Retreat) 참가자들이 다섯 가지 마음 다함 수행법(The Five Mindfulness Trainings, 5계를 바탕으로 한 일상생활을 위한 범세계적 윤리 규범)’을 수계 받았다.

틱낫한 스님은 전 세계 수천 젊은이들의 주의 깊음수행을 위한 깨어나기(Wake Up)’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유럽, 미주, 아시아의 교육자들이 학교에서 마음 다함을 가르칠 수 있도록 깨어난 학교(Wake Up Schools)’ 글로벌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세계 여러 곳에 수행원(修行園)을 세우고 실천을 강조하는 참여 불교를 통해 소외된 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펼치며 불교와 마음 다함을 서양에 소개하고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불교 공동체의 기반을 다지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틱낫한 스님은 마음 다함과 살아있는 평화에 대한 가르침과 강연 및 저술 활동을 계속하였다. 강연, 저술 활동을 위해 수행원이 있는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저술한 책들만 50권이 넘는다.

틱낫한 스님은 예술가이기도 하다. 틱낫한 스님의 주로 마음 다함의 에너지를 담은 짧은 문장이나 단어를 쓰곤 하셨던 그의 독특하면서도 인기 있는 서예 작품들은 2010년 무렵부터 홍콩, 대만, 캐나다, 독일, 프랑스, 미국의 뉴욕에 전시되었다.

지난 몇십 년간 틱낫한 스님은 미국 캘리포니아, 뉴욕, 베트남, 프랑스 파리, 홍콩, 태국, 미국 미시시피, 호주에도 사원을 세웠으며, 독일에는 유럽 최초로 응용 불교 연구소(Institute of Applied Buddhism)’를 창립하였다.

틱낫한 스님은 미국, 영국, 아일랜드, 인도, 태국 등의 국가 의회에 초청되어 강연하였다. 파리에서 개최된 유네스코(UNESCO) 연설에서는 지구 온난화와 폭력과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였고,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에서도 연설했다. 20139월 미국 방문 중에 구글, 세계은행 본부, 하버드 의대 등에서 마음 다함의 수행에 대해 강연했다. 한국에도 세 차례(1995, 2003, 2013) 방문한 적이 있다. <귀향>, <>,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 등 유명 저서는 한국에서도 출간되었고, 2017년에는 그의 구도 생활과 일상, 강연 활동, 철학 등을 담은 영화 나를 만나는 길이 발표되었다. 한국에서는 20225월에 개봉되었다.

틱낫한 스님은 석가모니의 직계 법손으로 그의 법통을 계승하였고, 2003년 내한 당시 생전의 조계종 5대 종정 서옹 스님을 예방하여 서로 법형제임을 밝혔다. 틱낫한 스님과 서옹 스님은 석가모니의 직계 법손인 9세기 당나라 선승 임제(臨濟) 스님의 법통을 물려받았다.

말년에는 세월과 건강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피부 노화가 좀 진행되긴 했지만, 70~80대까지만 해도 주름이 적고 깨끗한 피부를 소유한 동안이었다. 88세 생일이 지난 한 달 후인 20141111, 수개월 간의 건강 악화 끝에 틱낫한 스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말을 할 수 없고 신체의 오른쪽 부분이 대부분 마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존재 자체로서의 가르침과 영적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틱낫한 스님은 2022122일 새벽 130분 베트남 훼(Hue)의 뜨히우(Tu Hieu) 사원에서 향년 95세로 입적하셨다. 16세 때 출가했던 이곳 사원에서 생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셨기 때문이다. 스님의 뜨히우(Tu Hieu) 사원으로의 귀환은 깊은 뿌리를 가진 정신적 전통을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주의 깊음의 종소리가 되었다. 전 세계에서 스님의 가시는 길을 애도했다. 하지만 스님께서 말씀하셨듯 태어남도 죽음도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의 발걸음, 숨결에서 틱낫한 스님을 볼 수 있다.

 

2. ‘인류 영적 스승틱낫한 스님 입적 탄생도 죽음도 실제 아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중 한 사람인 틱낫한 스님이 베트남 훼(Hue)에 있는 불교 사원에서 입적했다. 틱낫한 스님은 명상을 현대인에게 일상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게끔 쉽고 구체적으로 전했다. 고인이 설립한 프랑스의 수도공동체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는 이날 “2014년부터 틱낫한 스님이 뇌출혈로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웠고, 사람들과 소통할 때는 몸짓으로 했다라고 하며 입적 전 틱낫한 스님의 상태에 대해서도 밝혔다.

고인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16세 때 출가했다. 61년에 미국으로 가서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코넬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반전 평화 운동을 펼쳤다. 정부의 탄압에 대한 저항 운동과 반전 평화 운동에 대한 공으로 67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런데 그해에는 노벨평화상이 누구에게도 수여되지 않았다. 틱낫한 스님의 지구촌 평화 운동을 저지하고자 베트남 정부는 귀국 명령을 내렸고, 틱낫한 스님은 1973년에 프랑스로 망명했다.

장기 망명한 틱낫한 스님은 프랑스에서도 난민 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1982년에는 프랑스 보르도 근처에 수도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설립했다. 플럼 빌리지는 불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명상과 힐링을 찾는 현대인에게 커다란 마음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서구인에게 불교식 명상의 현대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틱낫한 스님은 2003년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당시 서울에서 전남 순천의 송광사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주최 측은 틱낫한 스님을 위해 따로 VIP용 승용차를 준비했다. 틱낫한 스님은 나는 함께 온 일행들과 움직이고 싶다라며 승용차 탑승을 거절하고, 대중과 함께 버스로 이동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절집에서 회자 된다. 그는 대중과 함께하는 일상생활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다. 2003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를 찾은 틱낫한 스님은 서옹 스님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틱낫한 스님는 미국에서도 그린 마운틴 수행원을 세워서 현대인을 대상으로 명상을 전했다. 저술 활동도 무척 활발했다. 귀향, , 틱낫한의 걷기 명상, 부디 나를 참 이름으로 불러다오10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했고, 이중 베스트 셀러가 된 책도 상당수다.

뉴욕타임스는 21일 틱낫한 스님의 부고 기사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어록을 하나 뽑았다. “태어남과 죽음은 단지 개념일 뿐이다.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그들은 실제가 아니다.(Birth and death are only notions. No Death, No Fear. They are not real.)”

불교에서는 진리의 자리는 오고 감이 없다고 말한다. 태어남과 죽음도 바다 위에 일어나는 파도와 같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틱낫한 스님의 불교적 이해와 수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III. 복음 전도 방안

인생에서 맞이하는 중요한 두 가지 예식에서 결혼식은 단 하루에 마치는 예식으로 복음을 전할 시간이 많지 않지만, 장례식은 몇 일을 두고 치르는 예식으로 절차에 따라 복음을 전할 기회가 비교적 많이 있는 예식이다.

또한 베트남 불교인들에게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존경받는 한 사람의 인생과 삶을 통해 그가 가진 종교 생활의 결말은 불교의 진리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1. 죽음과 성불, 윤회 교리와 기독교의 부활과 영생 (종교 교리적 접근)

불교의 성불, 윤회 등 교리와 기독교의 부활과 영생 교리에 대한 대담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통해 복음에 도전한다.

1) 불교의 교리

(1) 삼법인(三法印)

법인(法印)법의 표지또는 불법의 특징을 뜻한다. 이 법인 사상은 석가모니의 정각(正覺)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어느 불경이든 법인 사상에 합치되면 이를 부처님의 진설(眞說)이라 인정하고, 만약 법인 사상에 어긋나면 이를 바른 불설(佛說)이 아니라고 판정하였다.

대승불교에 가장 중요한 게()로서 무상게(無常偈)가 있다. 이것은 제행무상과 열반적정의 법인을 설한 것으로, 불교를 대표하는 사상이다. 법인은 삼법인 또는 사법인이 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 제행이란 생멸변화하는 일체의 형상법을 가리키며, 유위(有爲)와 같은 뜻이다. 모든 현상은 잠시도 정지하지 않고 생멸변화하므로 제행무상이라 한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것은 눈앞의 사실로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며, 특별한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법인 중에는 제행무상을 가장 앞에 두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무상이라는 말에는 노((() 등과 같이, 사태가 나쁘게 변화한다는 비극적인 뜻으로 연상되는 경우가 많지만, 무상이란 사태가 나쁘게 변화하는 것뿐 아니라, 좋게 전개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무상의 체득을 위한 실천 행법을 불교에서는 무상관(無常觀)이라고 한다. 무상관이 설해지는 의의는 첫째, 부모 형제나 이웃의 죽음에 의해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고 종교심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있을 때 자기반성을 하게 되고, 그 반성에 의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바른 눈이 트이며, 자기와 세상과의 결합 관계를 알게 됨으로써 종교심이 움트는 것이다. 둘째, 무상을 생각함으로써 집착이나 교만심을 버리게 된다. 셋째, 무상관에 의해 시간을 아끼고 정진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 : 제법의 법은 무아성(無我性)의 것을 뜻하며, 이 제법은 제행과 마찬가지로 현상으로서의 일체법을 뜻한다. 석가모니 당시의 인도 종교들은 모두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영원한 존재로서의 본체를 인정하였다. 우주적인 실체를 범(, brahman)이라 하고, 개인적인 실체를 아(, atman)라고 하였다. 무아는 아가 없다.’, ‘아가 아니다.’라는 뜻이며, ()란 생멸변화를 벗어난 영원불멸의 존재인 실체 또는 본체를 뜻한다. 이와 같은 실체와 본체는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이를 인식할 수도 없고, 그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다고 하여 무기(無記)라 설하고, 또 그러한 본체와 실체는 현상계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수행이나 해탈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제법무아는 불교 이외의 종교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불교 특유의 교설이다.

열반적정(涅槃寂靜) : 열반은 불어 끄는 것또는 불어서 꺼져 있는 상태라는 뜻으로, 번뇌의 불을 불어서 끄는 것이다. 불교의 이상(理想)은 곧 열반적정이다. 석가모니가 인생의 고()를 불가피한 것으로, 우선 단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종교적 안심(安心)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 : 삼법인과 합하여져서 사법인을 이루는 일체개고는 일체고행(一切苦行) 또는 제행개고(諸行皆苦)라고도 한다. 이 법인은 일체의 현상법이 고임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 모든 현상법이 무상하기 때문에 고라고 한 것이다.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명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졌지만, 일체개고의 명제는 무조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상계는 고뿐만 아니라 낙도 있고 불고불락(不苦不樂)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3() 가운데 일체개고에 해당하는 것은 행고뿐이라고 보았다. 행고란 현상의 법을 고()라고 한 것으로, 현상의 법을 반드시 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불교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윤회(輪廻)와 미혹의 생활 자체가 고()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체개고는 미혹한 범부에게만 해당되며, 미혹이 잔존하는 이상은 일체의 현상이 고()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일체개고를 법인으로 설정한 까닭은 현실의 고()와 무상과 부정 등을 관찰하여 현실의 고뇌를 벗어나서 안락한 이상의 경지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2) 사성제(四聖諦)

49일간의 명상을 끝내고 각성한 부처의 처음 설교의 내용은 '사성제' 곧 고(((()의 네 가지 진리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덧없고 유한하며 비본질적이고 오직 괴로울 뿐이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염세적으로도 보일 수 있으나, 불교는 이와 같은 냉철한 현실 의식과 속세 생활의 포기로 불완전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첫째, 고성제(고제,苦諦)란 인간의 현실적 존재는 두카(DUKKHA) 즉 괴로움이다. ···(生老病死)4()와 원증회고(怨憎會苦애별리고(愛別離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온성고(五蘊盛苦)의 네 가지를 합한 8고가 있다.

둘째, 집성제(집제,集諦)는 고(두카)라는 것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힌 것이다. ()이란 말은 결합하여 일어난다는 뜻으로 허욕(,), 분노(,), 어리석음(,)이 괴로움()을 낳는다는 뜻이다.

셋째, 멸성제(멸제,滅諦)는 번뇌와 고통이 모두 없어지는 해탈의 세계, 열반의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고가 없는 이상의 세계(고통의 중단)를 제시하고 있다.

넷째, 도성제(도제,道諦)는 열반에 이르는 수행 방법. 팔정도(八正道) ,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명(正命), 정업(正業),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이다.

(3) 팔 정도(八正道)

사성제의 팔정도는 주로 상좌부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수행 방법으로 인생고의 병을 치료하는 수행과정이다. 팔정도는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지식으로 정견(正見,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 정사(正思, 올바른 생각)이다.

둘째, 윤리적 행위로 정어(正語, 올바른 말),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 정업(正業, 정직한 행위로 선행을 행하는 일)

셋째, 정신적으로 정정진(正精進, 선을 보존하려는 올바른 노력), 정념(正念, 바른 의식), 정정(正定, 정신 통일)

(4) 육바라밀

대승의 보살사상이 대두되면서 사성제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수행 덕목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육바라밀이다. 바라밀(Pramit)이란 피안(彼岸)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육바라밀은 대승불교에서 중요시하는 수행 방법으로 완성(혹은 궁극의 목표)에 이르는 길을 이루기 위한 여섯 가지 서원이며 길이다.

보시바라밀 :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 재물을 베푸는 것, 부처님의 법을 베푸는 것, 타인에게 정신적 안도감을 주는 것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베풀어주되 베푼다는 생각이 없는 보시가 되어야 진정한 보살의 수행이 된다.

지계바라밀 : 계율을 잘 지키는 것.

인욕바라밀 :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을 말함. 자기라는 개체에 집착하지 않고 평화스러운 마음으로 깊은 애타심을 가짐으로써 인욕이 이루어짐.

정진바라밀 : 부지런히 노력하여 게으름을 없애는 것.

선정바라밀 :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사색하는 것. 앉아서 좌선하는 것만이 아니고, 행동과 말 등이 모두 고요한 마음의 경지에 이르도록 수행하는 것

반야바라밀 : ‘반야란 최고의 지혜란 뜻으로, 모든 분별심을 떠난 지혜(無分別知)이며, 앞의 다섯 바라밀을 이끄는 기둥이다. 반야바라밀에 의해 모든 존재는 스스로의 성품(自性)이 비어있음을 보고, 실상을 직관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성제나 육바라밀은 모두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을 향해 나아가려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는 불교가 현실의 불완전한 고통의 상태를 벗어나 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종교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 그 방법에 있어서도 단순히 절대자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타종교와 차이를 보인다. 원래 불교가 석가모니 개인의 순수한 인간적 노력에 의해서 성립된 종교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5) 열반(Nirvana) : 열반은 불교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욕망의 소멸로 지리적 장소가 아닌 의식의 최고 상태로 열반(Nirvana)은 불어서 꺼버린다는 뜻이다. 즉 집착심 번뇌 애욕의 불꽃을 꺼서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완전한 평화와 해탈의 상태로,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생사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불은 단순히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위한 자비로운 행위와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인 깨달음과 해탈을 이루는 것이 성불의 목표이다. 불교의 목적은 열반이며, 성불은 해탈한 결과적 상태를 의미한다.

성불(成佛)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여 모든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지혜와 자비를 실현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불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 도덕적 규율을 지키며, 바른 행동과 마음가짐을 유지한다.

2. : 명상과 마음의 집중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고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3. : 지혜를 깨달아 현실의 진리를 통찰하고, 모든 존재를 자비롭게 대한다.

(6) 윤회(輪廻) : 일체 중생(衆生)이 삼계(三界), 육도(六道)로 돌고 헤매면서 나고, 죽기를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욕심을 제거할 수 없다. 욕심을 꺼버리기는 커녕 불상 앞에서 욕망을 채우는 기도를 한다. 그것은 불교가 아니라 무당적 불교로 변질된 불교인 것이다.

삼계는 미래를 셋으로 나눈다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육도는 : 천도(天道)-공간 세계/ 인도(人道)-인간으로 탄생/ 지옥도(地獄道)-죄를 지은 중생이 가는 곳/ 아귀도(餓鬼道)-늘 굶주리는 곳/ 축생도(畜生道)-죄업으로 짐승으로 괴로움을 받는 곳/ 아수라도(阿修羅道)-싸움을 일삼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 악마의 세계로 싸움이 끊임없다.

(7) 12 인연(因緣)

존재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상호 간, 타자와의 조화적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불교의 중심은 인간 탐구에서 출발한다. 존재와 고통을 하나로 본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존재가 없어져야 한다. 인간의 존재는 인()과 연(,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고 죽는다. 연에 의해서 생기고 연이 다하면 멸한다.

12 인연은 생사의 존재를 12가지의 갈래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무명(無明, 생의 의지), (), (), 명색(名色), 육입(六入), (), (), (), (), (), (), 노사(老死)이다.

 

2) 불교와 기독교의 구원에 관한 교리 비교

기독교(基督敎) 신학은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을 믿는 데 있다. 반면 불교의 교리는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와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는 데 있다.

불교의 구원의 핵심은 열반(涅槃)이다. 열반은 윤회(輪廻)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존재의 종식을 의미하는 상태이다. 즉 모든 번뇌(煩惱)의 속박에서 해탈(解脫)되고,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미혹한 생사를 초월해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열반의 법()을 체득한 경지를 의미한다. 반면 기독교의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는 기독교의 천국(天國)과는 다른 세계인 열반(涅槃)이 있다. 불교에서 열반은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열반의 세계는 존재가 없으면서 존재가 있는 것으로 말한다. 불교에서는 진정한 실재성이란 모든 것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유전의 원리에 의하여 모든 현상 세계는 어디로 가나 생사(生死)와 고통으로 충만하다고 묘사한다. 열반은 모든 욕망과 집착을 떨쳐내고,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상태로 생사(生死)가 반복되는 고해와 같은 사바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세계로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 불교의 사상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열반도 영원한 개념이 아니다. 수명이 끝나면 다시 태어나고 윤회를 반복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기독교의 천국(天國)은 실존하는 세계로서 천국은 영원한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의미한다. 천국은 하나님의 존재와 함께하는 곳으로, 슬픔이 없고 고통이 없으며 영원한 행복이 기다리는 곳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고 믿는다.

팔정도는 불교의 구원을 받는 방법에 관한 교리로, 죄악에서 벗어나 영생을 찾기 위한 여덟 가지의 길이다. 이는 신자의 행위를 통한 결과로 얻게 되는 구원이다. 반면 기독교의 구원은 죄에 대한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이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셨고,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팔정도는 불교에서 옳은 길을 찾는 행동으로 얻게 되는 구원이고,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이다.

3) 불교 주요 교리(열반·해탈·성불과 윤회)에 관한 질문들

-자비와 선을 얼마나 베풀어야 해탈(성불)할 수 있을까?

-, (-금욕)이 어느 정도 성취되어야 해탈(성불)할 수 있을까?

-불자나 승려의 장례에서 그가 성불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인간으로 윤회한다면 그는 다시 성불해야 하나?

만약 그렇다면 성불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해탈(성불·열반), 윤회는 내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교리이다.

-성불한 사람이 윤회가 아니라 부활했다는 일이 있는가?

만약 그런 일이 없다면 영생이 있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성불(또는 열반에 이른)한 자들의 영생의 증거는?

 

2. < 불교와 기독교 교리 비교 >

 

2. 틱낫한의 삶과 신앙의 결국 (생활, 삶으로의 접근)

1) 인간의 현세와 내세의 삶

마음 수양을 통해 현세의 삶을 살아가도록 내세보다는 지극히 현세 중심의 삶이 강조되었고, 그래서 사회 참여와 봉사 활동과 같은 참여 불교의 삶을 통해 내세를 이루려는 것이 틱낫한이 준 영향력이다.

(1) 불교도에 대한 선교의 시작은 선교사의 인격에서부터 시작된다.

친절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절제와 검소한 생활의 본을 보여 주어야 그들에게

신뢰를 얻고 복음의 접촉점을 얻을 수 있다.

(2) 선교사는 불교의 용어, 개념, 교리를 잘 이해하고 그것들을 복음의 접촉점으로 사용함에

있어서 고도의 지혜와 지식이 요구되므로, 이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3) 불교도들은 현세의 삶에서 설법과 문화에 익숙해져 있기에, 내세에 대한 인식이 없다.

선교사는 그것들을 이해하고 활용함으로써 효과적인 선교를 감당할 수 있다.

(4) 선교사는 불교권 사회의 문화 및 사회적 구조가 가족 중심적이고, 부족 중심적임을

이해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2) 성령의 역사

(1) 불교 전도는 샤머니즘의 전도와 같이 능력 전도(power evangelism)가 요구된다.

불교는 모든 이가 성불하는 무신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각종 귀신과 영들을 믿는 다신론적이기에, 성령의 능력이 따르는 복음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다.

 

(2) 성령의 역사는 믿는 자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며(14:16-17)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능력이며, 특히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16:15-18).

(3)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우리의 복음 증거를 확실하게 하신다.(16:20)

 

나가는 말

우리가 불교권에서 효과적인 사역을 하려면 먼저 겸손하게 우리의 Target People인 불교인들의 특성과 그들이 믿는 불교를 배워야 할 것이다. 불교의 이론적인 면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오늘날 불교인들의 현실적인 신앙과 삶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불교권에서 일하고 계신다. 비록 열매가 없어 보여도 서두르지 말고 그들에게 맞는 전도 방법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순종하고 네트웍을 이루어 사역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불교권 복음화를 이루어 가실 것이다. 상황이 어떠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이 하시면 역사는 일어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미주>

1. 불교에서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분신하는 것을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고 한다. 소신공양(焚身自殺)은 자신의 신체에 직접 불을 질러 자살하는 것으로 종종 정치적, 윤리적, 종교적인 행동으로써 자신의 몸에 휘발유와 등유, 경유 등의 비교적 인화성이 높은 기름을 뿌려 치른다. 분신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이다. 불교에서 소신공양에 비판적인 관점에서는 부처가 살인과 자살, 교살, 자기학대를 엄격히 금지하였기에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본다. 남베트남을 통치한 응오딘지엠과 지주들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가톨릭을 옹호하고 불교를 탄압하였다.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정책에 항의하는 뜻으로 1963년 사이공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베트남의 승려 틱꽝득(Thích Quảng Ðức)은 소신공양으로 분신자살을 하였으며, 남베트남 사회의 공분과 응오딘지엠 정권의 종식을 불러와 베트남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틱꽝득의 소신공양 광경은 베트남 국내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각국의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화염 속에서도 전혀 표정의 일그러짐 없이 정좌 자세로 조용히 죽음에 이르는 의젓한 모습은 많은 충격을 주었다. -위키백과 편집.

2. 해탈(Nirvana, 열반)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불교와 힌두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해탈은 윤회, 즉 생명의 반복적인 탄생과 죽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해탈의 의미: 불교의 해탈은 모든 고통, 욕망, 그리고 집착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상태를 의미한다. 붓다는 이 상태를 '열반'이라고도 하며, 이는 더 이상 탐욕, 분노, 무지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해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수행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힌두교의 해탈은 'Moksha'라고 불리며, 이는 개별 영혼이 물질적 세계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져 절대적 존재와 하나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궁극적인 목표로, 더 이상 윤회의 고통을 겪지 않게 된다. 해탈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깊은 영적인 이해와 실천을 필요로 하는 상태로 여겨지며, 이는 각 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욕망과 집착을 초월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찾는 여정이다.

3. 윤회는 많은 동양 철학과 종교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한 생명이 죽은 후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이 개념은 특히 불교와 힌두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윤회가 실제로 일어나는 방법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불교에서는 업(karma)이 윤회의 과정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업은 우리가 한 행동의 결과로 생기는 도덕적 에너지를 의미하며, 선한 행동은 긍정적인 업을, 악한 행동은 부정적인 업을 낳는다. 이렇게 쌓인 업이 다음 생의 형태와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된다. 윤회와 같은 주제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며, 개인적인 믿음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4.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개역개정)

 

<참고 문헌 및 웹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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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화, 불교학개론(서울: 백영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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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 불교개설(서울: 홍법원, 1982)

신홍식, 아시아 불교, 199910월 아시아 지도력 개발회의(말레이시아)

이기영, 불교개론(서울: 한국불교연구원, 1984)

조흥국,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소나무, 2024)

나무위키, https://namu.wiki

불교평론, https://www.budreview.com

베트남 장례문화, https://tangle.thuonghieudoanhnghiep.vn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2690#home

풀럼빌리지, https://plumvillage.org/ko/thich-nhat-hanh/biography

 

 

본고는 2024년 12월 3-6일까지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제3회 불교권 선교 아카데미 포럼에서 발제한 자료이다.

2024 불교권 포럼_임도마_발제후 수정자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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