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보는 태국선교의 삶 (22) >
선교의 큰 별 조동진 목사님을 그리며!
오늘 아침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나라들의 2/3 세계교회와 선교지도자들을 깨워 오늘날의 세계 선교를 일으켜 놓으신 조동진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SNS를 통해 접하고, 삼가 애도하며 유가족분들께 조의를 표합니다.
저에게는 선교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걸음마를 가르쳐 주시고, 태국 지도자들에계 직접 소개해 주시며 격려해 주셨고, 선교를 손수 가르쳐 주셨으며, 트리니티 신학교의 선교학 연구를 위해 길을 열어 주시고, 학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셨던 분이시기에 더 더욱 그립습니다.
앞서 가신 제 육신의 아버님과 신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셨던, 선교의 아버지 이십니다. 저와 관계된 태국선교의 일부분을 되돌아보며 나누고자 합니다.
처음 태국 선교사로 부르셔서, 다른 많은 길 중에서 선교의 길을 선택하도록 도전하셨고, 선교의 ABC를 직접 가르쳐 주시고, 손수 선교지를 방문해 지도해 주셨습니다. 현장을 직접 동행해 지도와 바른 선교관을 심어 주셨던 것에 감사를 드리며, ‘람빵’의 메모 공단을 중심으로 한 선교전략을 나누기도 하셨다.
처음 태국을 방문 하실 때 현지 음식을 좋아 하신다는 말씀은 들었으나, 태국의 순수한 음식과 식당도 몰라서, 언어 학교의 선생님들과 같이 상의해 메뉴와 식당까지 소개를 받아서 잘 먹었고, 그 뒤로 그 식당과 그 당시 메뉴가 우리 가족들의 태국 기호 음식이 되기도 했다.
‘시라자’의 산기도원을 시작하기 전 소개를 할 때, 기뻐하시며 한국 선교사들이 이런 금식, 철야기도 운동을 소개해야 한다고 하시며, 감격해 하시기도 하셨다.
본부에서도 선교 현장을 6개월만 안 와 보아도 의사소통의 간격이 생긴다고 하시며, 현장을 직접 돌아 보는 것을 즐겨 하셨다.
선교사 훈련을 바울의 집에서 직접 공동생활을 하게 하며, 선진문화 훈련과, 절제하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잘 견디는 훈련도 하고, 선교사뿐만 아니라 선교를 하는 교회 목사님들과, 선교위원장들의 훈련도 중요하계 생각하시고, 하기선교대학원의 강사로 미주 큰 교회의 목회자 보다는 유명한 선교학 교수들을 초정하셨다. 그들은 미국 신학교에서도 학생수에 연연하지 않으시니 모인 참가자들에계 정성을 다해 선교학 과목들을 깊이 소개해 주었다.
한국 선교사들도 큰 그림을 가지고, 김순일 선교사님은 풀러 신학교에, 신홍식 선교사는 달라스 신학교에, 이은무 선교사는 휫튼대학에, 저는 트리니티 신학교에, 그리고 윤수길 선교사님은 독일 튜빙겐 신학교에 보내, 세계적인 선교학 전문 신학교들의 정신들을 다 흡수하여, 한국에서 이상적인 선교학 과정들을 전수하도록 큰 그림을 그리시고 안식년 연구도 하게 했고, 나아가 중 년이 된 선교사들은 기간이 좀 오래 걸려도 다음에 기회가 없을 수 있으니, 연구 기간을 연장하고, 후원교회의 불평을 다 막아 주시며, 선교 지도자를 키워주셨다.
한국의 KIM과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을 비롯하여 AMA와 TWMA를 통해 2/3세계 교회들의 선교 운동을 활성화시키시고, 김일성 대학에 종교학과를 세워 강의도 하셨고, 모스크바 선교사로도 직접 활약하셨고, 초장기에 영문 서적 출판 등을 통해 세계에 한국선교를 소개하는데도 크게 이바지 하셨고, 기독교 언론과 교회 건축 등 다양한 서구 선진문화 소개도 힘써 주셨다.
그는 선교운동가, 단순한 개척자 이상일 뿐만 아니라, 선교동력가요, 전략가이시며, 연합 운동에 힘쓰시고, 예시하시는 통찰력도 뛰어나, 에든버러 대회에서 2000년까지 한국 선교사 10,000명 파송을 예언하셨고,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한국 교회 연합에도 다방면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여의도 광장 집회의 총사령탑을 맡아 지도하셨던 굉장한 조직력을 발휘하셨던 큰 별을 잃은 아쉬움이 있다.
이 모든 일들은 모두 살아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 두시고 가신 것을, 그리워하며 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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