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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행정 연구소/베트남 정보

베트남 선교의 역사와 미래

by 임도마 2022. 10. 12.

베트남 선교의 역사와 미래_2012년 마닐라 포럼 기고문

선교행정연구소/선교 자료 2011-11-21 16:11:55


베트남 선교 역사와 미래

임도마(GP선교회)1)

들어가는 말

  역사 속에서 선교가 어떻게 이해되었는가를 연구하는 하나의 이유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교학자 보쉬(David Jacobus Bosch)는 선교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지난 날 선교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 예비적 교훈을 제공해 준다. 여러 교회들과 선교사들이 지난 19세기 동안에 이루어진 교회 역사의 흐름에서 자기들의 활동을 격리시키려고 할 때마다 그들은 매우 심각한 위험을 불러들이는 격이 된다. 역사적 시각을 상실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로 하여금 성서에서부터 직접 어떤 구절들을 뽑아서 자기들 선교의 실제 활동에 맞게 인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럴 때 그들은 성서에 대한 자기들의 해석이 독특한 상황의 제약을 받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서 그들은 자기들이 선교활동의 결점들에 대하여 태연히 모르는 채 지나면서 그 뿐 아니라 자기들의 활동만이 옳은 것으로 보는데, 그들은 그것이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것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고 믿기 때문이다.”2)고 말하고 있다. 리차드 니버(Helmut Richard Niebuhr)는 “이런 면에 있어서 20세기의 기독교인들은 위기의 시기를 접할 때마다 출애굽, 광야에서의 방황, 그리고 여호와로부터 받은 계약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던, 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과도 같은데 이것은 위안을 받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서이다.”3)고 했다.

  베트남 호찌민 시에 있는 전쟁 증적 박물관(Exhibition of War Remnants Museum)은 원래 중국의 전쟁 범죄 및 미국의 전쟁 범죄박물관이었으나, 이들 국가 관광객들의 반감을 사서 개칭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했던 탱크, 전투기, 미사일 등이 넓은 마당에 전시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실내 전시관에는 고엽제로 태어난 기형아들의 사체 등 전쟁 당시의 참혹한 상황과 실상을 볼 수 있도록 사진과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로고는 프랑스, 미국, 남북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3개의 폭탄을 배경으로,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형상을 중앙에 나타내고 있다. 월남전 당시 미군의 정보부 청사였던 이 박물관의 관광객을 위한 안내 자료에는 “미래에 이런 참혹한 전쟁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깨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박물관을 운영하는 목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2011년은 베트남에 개신교 복음이 전해진 지 100년으로 베트남 전국과, 베트남인 공동체가 형성되어있는 미국, 호주 등 해외 국가에서 베트남 개신교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베트남 복음성회의 법인 공인이 2011년으로 10년이 지났고, 개신교 선교 100년을 계기로 기념대회를 개최하며 복음전도에 열심을 내어 보지만, 베트남 복음성회 총회 산하 교회들의 선교 활동은 아직도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베트남 한인 선교사들은 베트남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 나갈만한 마땅한 기독교 지도자가 없다고 말한다. 공식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 교역자를 양성하는 공인신학교는 베트남 복음성회 총회신학원 단 한곳으로, 4년간 총 100명의 학생들을 배출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목회자 배출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현지 교회들은 무자격 지도자들이 많다. 특별히 베트남 지하교회의 생성과 발전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지도자의 자격 문제이다. 비공인 지하교회 목회자들 대부분은 신학 교육의 부재, 윤리의식 부재, 재정 불투명, 신비주의적인 예배 형태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한 신학교 학사신축, 신학교수 및 공인 교역자의 수급, 교회 지도자의 목사 안수, 종족교회개척, 폐쇄 교회 및 처소교회의 복원 및 인가, 성경 찬송 등 기독출판물 인가 및 출판, 은퇴교역자 및 미망인 사모의 생활보장 문제 등 베트남 기독교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수없이 많다.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한인 선교사들의 사역은 전통적인 선교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직접 지도자를 양육하거나, 기존 성도를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세워나가는 일차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지인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 교회내 평신도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 질적 수준은 자립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한국교회가 최초로 타문화권 선교사를 파송한 1912년으로부터 100년째가 되는 2012년을 해외 선교 100주년으로 기념하면서 ‘한국교회의 아시아 선교역사와 미래’라는 주제를 갖고 열리는 마닐라 포럼에서, 본고는 개신교 선교 100년이 지난 베트남 선교 역사와, 베트남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인선교사들의 현재 사역 현황을 통해 미래에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선교사역과 선교전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베트남 개신교 선교역사와 한인선교사들의 베트남 선교역사를 살펴보고, 이어서 한인선교사들의 현재 사역들을 개척(Pioneer), 부모(Parent), 협력자(Partner), 참여(Participant)단계의 4 단계 선교전략의 관점에서 정리한 후, 선교 사역의 미래를 바라보는 한인 선교사들이 사역 단계의 발전을 위해서 종래의 선교사역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1. 베트남 개신교 선교 역사  

  기독교가 베트남에 전해진 것은 10세기경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후 무역상, 선원, 외국군인들 가운데 일부 기독교인들이 베트남에 들어왔으나, 이것을 공식적인 복음 전파의 단계라 말하기는 어렵다. 베트남 개신교 역사는 프랑스 식민통치와 공산화 정권 치하에서 핍박가운데 자라온 역사이다. 1948-1954년 인도차이나 반도 전쟁의 베트남에 대한 영향은 계속 되었지만 성도 수는 여전히 증가하였고, 몇 개의 무너진 예배당은 재건축 되었다.

  1975년 공산화 통일 전, 베트남 복음성회 소속 개신교 인구는 30만이었다. 통일 후, 정부는 신학교와 50% 정도의 예배당을 폐쇄시키고 교회를 핍박하였다.

  베트남의 천주교인은 약 600만 명, 개신교인은 2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4) 천주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비교적 우호적이라 할 수 있으나, 개신교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감시의 대상이다. 2011년 베트남 인구수를 약 8,500만으로 볼 때, 약 200만으로 추정하고 있는 개신교 성도 수는 총 인구대비 2.3%의 복음화율에 머무르고 있다.

  2011년을 기준으로 베트남의 기독교단은 30여개가 넘는다.5) 그러나 2007년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공식적인 교단은 베트남 복음성회(남부, 북부), 기독전도회, 은혜침례회, 베트남 남침례회, 베트남 복음장로회, 제칠안식일성회(이단), 메노나이트, 오순절, 기독연합회로 8개이며, 약 1,800개 교회가 있다. 약 70여개의 비공인 교단은 약 1,500개의 가정교회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6)

  2005년 3월 1일 베트남 정부 의결로 발표된 ‘신앙, 종교 법령 시행 안내서’에는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명확하게 관할 관청, 시한, 준비서류 등이 기록 되어 있다.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은 크게 통보, 등록, 허락으로 분류되며, 접수받은 관청은 정해진 시일 안에 합당한 이유를 첨부하여 반드시 답변하게 되어 있다. 이 법령 공포 후, 총리는 ‘개신교 일부 업무에 대한 정부 수상 지시’를 통하여 비공인교회(가정교회, 처소교회)의 등록 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하고 등록을 장려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공인을 받은 남부 복음성회 총회는 최근 몇 년 동안 부활절과 성탄절에 대형 집회의 허가를 받아 운동장에서 찬양과 전도 집회를 열고 있으며, 군소 교단들도 크고 작은 집회를 개최하면서 복음 전도에 열심을 내고 있으나, 북부는 여전히 복음 전도가 힘든 상황이다.

  (1) 베트남 복음성회 (C&MA)

  베트남 복음성회는 남부와 북부 총회로 구성되어 있다. 약 500여개의 허가된 교회와 많은 가정교회를 가진 남부 총회와 달리, 북부총회는 15개의 허가된 교회가 있으나 그 중 응에 안(Nghe An) 지역의 한 교회는 전쟁 중 점거한 적십자사 단체로부터 건물을 돌려받지 못해 14개 교회가 있다. 또한 북부 산악지대의 소수종족 가정교회 약 1,000여개가 복음성회 교단에 가입하였다. 

  1984년, 프랑스선교회가 첫 목사를 하이퐁에 보냈는데 아쉽게도 단지 프랑스인을 위한 목회자로 보냈다. 그 당시 성서공회의 부분적인 활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서구 교회의 대 부흥운동 이후 선교운동이 극에 이르고 많은 선교회가 조직되었을 때, 심프슨 목사에 의해 복음선교연합회(CMA: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가 설립되었다. CMA 선교단체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관심을 갖고 베트남에 복음을 전할 방법을 모색했다.

  1911년 시작된 언어공부가 있은 후, 선교사들은 베트남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다. 몇 명의 선교사가 추방되었다는 이유로 인해 프랑스 사람들의 불신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1919년 최초의 성경공부반은 마구간에서 가르쳤고, 그 이후 다낭에 짚으로 만든 최초의 예배당이 세워지게 되었다. 1921년에는 다낭 성경학교가 설립되었고, 1924 제1회 총회가 다낭에서 시행되었다. 1926년 전체 성경이 하노이에서 출판되었고, 1927년에 교회는 4,326명의 신도와 74개의 지회를 가졌다. 이때부터 교회는 자립을 하게 되었고, 행정에 대해서도 독립하게 되었다.

  1950년 베트남 복음성회 최초의 찬송가가 출판되었다. 1954년 이전에는 북지방회, 중지방회, 남지방회가 있었으나,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됨에 따라 교회도 북부총회와 남부총회로 분립되었다. 남부총회는 중지방회와 남지방회 2개로 나누었다. 1960년부터 상지방회(Thuong Hat-주로 소수부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중서부 고원지대)가 추가로 나누어졌고, 1960년 다낭 성경학교가 냐짱으로 이전하여 성경신학원으로 승격되었다.

  1961년 베트남 복음전파 5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하였고, 1962년 중지방회가 북중지방회와 남중지방회로 분리되었다. 1966년 사이공의 공화운동장에서 복음전도대운동이 열리고 이때부터 다양한 전도방법이 사용되어 방송선교, 차량선교, 사회구제사역 등등이 있었다.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 각 교회의 전도활동은 교회 내 모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1976년 제42차 총회가 호치민시에서 열렸고, 1990년대에는 많은 교회가 증축되거나 새로 세워졌다. 1992년 베트남 성경 출판계획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33,000권의 성경과 20,000권의 찬송가를 외국에서 들여왔다. 1994년부터 정부가 성경 인쇄를 허가하여 신구약 65,000권, 신약85,000권, 찬송가 25,000권, 복음서적 80,000권, 성경 120,000권을 인쇄했다.

  2000년 교회의 새로운 전진을 위해 총회준비위원회가 헌장(교회헌법)을 준비하여 2001년 2월 제1차 총회(교회사로는 43차 총회)가 호치민시 사이공교회에서 개최되어 헌장이 통과되고 4년 임기의 신 임원이 선거로 선출되었다. 2001년 3월 16일 베트남 정부 종교성 규정에 의해서 베트남 복음성회(남부)가 종교 법인체로서의 자격을 얻음으로써 제1회 베트남 복음성회(남부) 총회에서 통과된 헌장에 의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총회에서 선출된 총회 임원들과 위원 23명의 인사에 대해서도 인준을 받았다. 베트남 복음성회(남부)의 합법적인 (종교)법인체 인정기념식이 2001년 4월 3일 호치민시 쩐흥다오에서 열렸다.7)

  2004년 베트남 남부 복음성회의 총회 연감에 의하면 총회 산하 공인교회의 성도 수는 25만이라는 통계 자료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당시 공식적으로 75만 성도라고 발표하던 것과는 큰 차이가 났었다. 그 이유는 그때까지의 통계는 비공인교회 성도수와 중복된 누적 통계를 사용했고, 2004년 총회 연감자료는 순수한 공인교회 성도 수만을 집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복음성회의 북부 총회는 935개의 지회에 112,678명의 성도로 집계하고 있다.8)

  (2) 베트남 침례교회 (Hoi Thanh Bap Tit Vietnam)

  남침례교 해외선교회(Southern Baptist Overseas)는 1959년 베트남에 입국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개신교 선교에 한 몫을 감당하고 있다. 즉, 1958년 10월에 베트남에 선교센터를 세우기로 결정하였고 이 결정에 의해 1959년 11월 하이스(H. P. Hayes) 목사 부부가 베트남에 입국하여 선교사역을 전개하였다.

  (3) 베트남 기독전도회 (Hoi Truyen Giao Co Doc Vietnam)

  기독전도회는 국제 선교단체인 ‘WEC.(World Evangelization for Christ)'이 베트남에 세운 교회다. 전도회가 베트남에 도착한 것은 1957년 초였다. 첫 선교사는 스미스(G. H. Smith) 목사 부부였다. 스미스 선교사는 1934년부터 1937년까지 캄보디아 북부와 라오스 남부, 그리고 베트남 서부 일대의 고원지대의 종족(세당, 까뚜 등)을 정탐하기도 했다.

  (4) 프랑스 개신교회

  프랑스 개신교회는 베트남이 당시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베트남의 개신교 선교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1884년, 프랑스의 ‘식민지복음전도회’에서 파견한 고클레어(Gockler) 목사가 하이퐁(Hai Phong)에 와서 인도차이나 최초의 개신교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교회는 군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인 개신교인만 참여하였다.

  1886년, 베트남에서 군목으로 사역했던 보이셋(T. Boisset) 목사는 프랑스 개신교회가 인도차이나에 진출시 유의해야 할 점과 개신교 선교의 시급성을 편지로 보냈다.9)

  (5) 영국성서공회

  영국성서공회는 일찍부터 중국 화남(華南)에 선교센터를 세우고 인근 지역을 향해 사역을 시작하였다. 당시 인도차이나인 베트남도 이 영향권에 들었는데, 1895년부터 중국 화남 지방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를 사이공으로 보내 중국어 성경 배포를 시작케 하였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공회에서는 1902년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보넷(Bonnet)을 다낭에 파송하였다.

  (6) 메노나이트 선교회 (Mennonite Central Committee)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의 국토가 양분되고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자 이들의 구호와 의료 사역을 중심으로 선교하려는 많은 선교 단체들이 베트남에 입국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메노나이트 선교회다. 1954년 ‘메노나이트 중앙구제위원회’를 베트남에 설립하였는데, 이는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온 이재민들에게 현물, 현금과 봉사를 통한 의료 활동을 펼치고자 함이었다.

  (7) 오순절 교단

  베트남에서 오순절 교단은 CMA나 기독전도회, 침례교단들보다 훨씬 늦게 활동을 시작했다. 30년간의 남북전쟁 말기인 70년대 초에 Don Warren부부가 남부의 붕따우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미국인이 낳아서 버리고 간 많은 아이들을 보았고, Warren은 탁아소를 세우기로 결정을 하였다. Warren은 미국의 많은 교회들과 접촉, 연락을 하게 되었고, 많은 미국 교회들이 베트남을 위한 중보기도에 참여하게 되었다. Warren부부는 예배당을 지었고, 성도였던 Phat 부부와 Phuc과 또 다른 몇몇 가정들은 붕따우 오순절교회의 기둥들이 되었다. 또한 천주교 수녀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천주교 오순절 운동의 기둥들이 되었다.

  중부지역은 필리핀 목사(Gioen, Luciano, Peter, Ceicel, Sony, Josep 등)들을 보내 전도하게 했다. 그들은 Aaron Rothganber 교수를 통해 다낭으로 올라가 중부 꽝남 다낭성에서 선교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현재 동나이성 소속인 타이티엔 롱탄(Thai Thien Long Thanh)이라는 정착지역을 조성하였다.

  1973년 6월 23일 내무부 차관 Le Cong Chat이 서명한 허가서 번호 326/BVN/KS 14b를 통해 베트남 오순절 복음교회는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John Hurston(교수, 목사) 박사가 초대 총회장을 맡았다.

 

2. 한인 선교사의 베트남 선교 역사

   베트남 교회의 개신교 선교역사 중에는 한국 교회의 역할도 있었다. 한국교회의 베트남 선교는 1975년 4월 남·북베트남 통일이전과, 1992년 한국-베트남 외교관계 수교 이후로 나눌 수 있다.

  한국 교회가 베트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64년 한국군을 월남전에 파병하면서부터이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사기 진작을 위해 조직된 군목과 군종을 통해 베트남 교회와 소수 민족들과 만남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제와 봉사, 선교가 시작되었다. 또한 민간인들이 사이공과 다낭, 붕따우 등에 거주하면서 한인 교회가 설립되었고, 당시 월남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작용되어 교류가 활발했다. 그러나 첫 사역의 기간과 역량은 전쟁이 종결되면서 모든 선교사가 철수하게 됨으로 자연스레 일단락하게 되었다.

  1968년 국방부는 파월 3년 만에 한국군의 사상자 4,091명과 실종 1명을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뜻있는 교계인사들이 젊은이들의 피가 뿌려진 월남 땅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는 여론과 함께 선교사 지망자가 나타났고, 드디어  1970년 1월 27일, 예장 통합의 파송을 받은 박상준 선교사가 한인선교사 1호로 베트남 임지에 도착했다. 1970년 이전에 이미 한인 목회를 위한 목회자들이 사이공에 있었다. 1966년 사이공에 있는 기술자들의 전도를 위해서 자비로 온 장로교의 강원균 목사,  1967년 9월 다낭에 있는 기술자들을 위해서 성결교에서 파송한 피원균 목사가 개별적으로 사역을 하였고, 1967년 6월 사이공 한인교회를 위해서 KNCC에서 감리교의 이응균 목사를 파송했지만, 사이공 한인교회의 목사 초빙에 대한 한인교회, KNCC, 대사관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베트남과 한국이 외교 관계를 재개하기 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베트남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이를 통해 몇몇 교단과 선교회에서는 베트남 선교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고, 1990년부터는 인근 지역인 태국에 베이스를 두거나 비즈니스를 통하여 베트남에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초기에 개신교 선교 활동을 전개했던 한국 교회의 교단 선교부와 선교 단체는 다음과 같다.

  (1) 장로교 통합 선교부

  1960년, 남부 베트남복음성회 빈롱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피선된 밍(Doan Van Mieng) 목사와 부 총회장 띤(Pham Xuan Tin) 목사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복음성회에서는 ‘일할 곳은 많은데, 일군이 부족하다’는 주의 말씀에 따라 외국 교회에 일군을 요청하였고, 이 요청에 응답하여 베트남에 파송 받은 선교사가 장로교 통합 선교부의 박성준 목사였다. 박 선교사는 1970년 1월, 당시 전쟁으로 얼룩진 베트남에 통합측 여전도회의 후원으로 사역하였다. 1972년 7월에 박 선교사가 보낸 ‘선교활동 상황보고’에 따르면 베트남인 교회에서의 설교와 가정 방문, 문서 전도, 피난민 수용소 방문 등을 통해 사역하였으며, 상당히 고무적인 결실을 거두었다.

  (2) 장로교 합동 선교부와 베트남선교회

  강원균 목사는 베트남 전쟁을 베트남 선교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먼저 이러한 비전과 베트남 선교에 대한 필요성을 전국 교회에 알리고 구제품의 모집, 선교사의 발굴과 선교비의 모금을 주선하였다. 1966년부터 베트남을 출입하던 강 목사는 베트남선교회를 설립하고, 한국 유학을 통한 베트남 교회 지도자 양성 계획을 세우고 1969년 3월 베트남복음성회의 신학생인 바오(Nguyen Xuan Bao)를10) 총신대학 신학연구원에 입학시켜 장기적인 베트남 선교의 교두보로 삼았다. 또한 베트남 사이공에 한인교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강원균 목사도 베트남선교회의 파송 선교사로 1975년까지 베트남에서 사역하였다. 청년 시절을 아버지와 함께 사이공에서 보낸 강원균 목사의 장남 강안삼 장로는 베트남 및 아시아 지역 선교를 위해 아세안선교회를 설립하여 대표를 맡았다.

  베트남선교회는 1970년에 기독교장로회 소속인 김상우 목사를 베트남 선교사로 파송하여, 강원균 목사가 베트남 최초로 설립한 사이공한인교회의11) 담임 목사로 만 5년간 사역하게 했다. 김상우 선교사는 한인교회 목회 뿐 아니라 베트남 교회와의 관계, 소수종족 선교와 교민 공익사업 등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3) 기하성 선교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베트남 전쟁 기간 중에 김남수 목사를 선교사로 파송하여 사역케 하였다. 김 선교사는 주로 중부 고원 지대인 다랏 지역에서 사역 하였으며, 종전이 된 후 미국으로 가서 목회를 하고 있다.

 (4) 한국 세계교회 협의회(K.W.C.C.)

  한국세계교회협의회는 감리교 목사인 신원균 선교사를 베트남에 파송하였다. 이는 한 교단 선교부 차원의 선교 사역이 아니라 초교파적인 협력 사역으로 하는 베트남 복구와 구제 차원의 선교 사역이었다. 당시 휴전이 성립된 베트남을 위하여 세계 교회들은 전후 복구 사업을 위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계교회협의회에서는 ‘에큐메니칼 인도차이나 재건 및 화해 기금’을 만들었으며, 1973년 2월 초에는 9톤에 달하는 의약품과 의료 장비를 베트남에 전달하였다. 이 물품은 신 선교사의 지휘 아래 난민들에게 전달되어 큰 도움을 주었다.12)

  (5) 베트남 한인선교사 협의회(VDF)

  1992년 한-베 수교후 공식적인 베트남 선교사 파송이 있은 후, 본격적으로 베트남에서 선교사들의 모임이 시작된 것은 1993년부터이다. 당시 한인교회 담임을 중심으로 친교회를 조직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얼마가지 못하였다. 그 후 베트남 남부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던 한인 선교사들은 ‘베트남선교사친교회’ 발족을 위해 준비위원회 회의를 거듭한 끝에 1995년 4월 29일 7개 교단에 소속된 선교사 10명(가정)으로 ‘친교회’가 시작되었다.

  21세기를 맞이한 VDF는 새로운 마음으로 베트남 선교전략을 수립하는 자세로 그리고 발족 초기의 친교 위주에서 긴밀한 사역적, 전략적 연계를 위해 명칭을 ‘친교회’에서 ‘협의회’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이 명칭은 베트남의 종교 핍박상황에서 대외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워, 2000년도 총회에서 ‘베트남개발협의회(V.D.F.: Vietnam Development Fellowship)를 공식 명칭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10명으로 출범한 남부 선교사협의회는 1995년 말 13가정, 1996년에는 15가정, 1997년과 1998년에 각각 2 가정, 1999년 9가정, .2000년 2 가정, 2001년 9 가정이 신입회원으로 가입하면서 꾸준히 성장해왔다. 이후 계속 증가된 회원은 2011년 10월 기준으로 남부 협의회는 89가정에 총179명, 북부협의회는 총 55가정에 101명의 재적 회원을 가진 협의회가 되었다.13)

  또한 인도차이나 5개국의 복음화를 위한 연합과 협력을 위해, 1999년 10월 호치민시에서 ‘인도차이나 5개국 한인선교사협의회(KIMA)‘발족 모임을 가졌고, 2000년부터 매년 열리는 선교대회와 총회가 2011년 11월초 제12차 총회로 베트남 남부 호치민시에서 열렸다. 인도차이나 5개국은 유사한 문화와 종교권을 가지고 있어서 선교 사역과 전략을 공유하기에 적절한 지역이라 하겠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각 국가에서 행하고 있는 사역들을 서로 살피며 효과적인 선교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논의하며, 동일한 사역의 분야에서는 서로 협력하는 움직임이 항상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몇 개의 사역 분야에서 결실을 거두고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역 분야가 신학교 사역과 일반학교 사역 분야로 다양한 연구자료가 나왔다.14)

 

3. 한인 선교사의 베트남 선교 사역

  베트남 한인 선교사의 사역은 베트남 남부 한인선교사협의회 회원 선교사들이 한인 선교사의 베트남 선교 사역을 한국교회에 알리기 위해 함께 만든 ‘비전 베트남(베트남 선교 백서 제2권)’에 기록된 사역을 개척(Pioneer)단계, 부모(Parent)단계, 협력자(Partner)단계, 참여(Participant)단계로 나누는 4 단계 선교전략의 관점에서 다시 정리했다.15)

  베트남에서의 선교사역은 크게 공개적 사역과 비공개적 사역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공개적 사역에는 NGO와 같이 분명한 사회적 신분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사역들이고, 비공개 사역들은 대부분의 전통적인 선교 사역 분야들이다. 본고에서 4단계 선교전략의 구분으로 사역을 나누었지만 그러나 이런 구분은 각 사역이 이중 삼중의 목적과 과정이 있기 때문에 각 사역단계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현재 선교사들이 실행하고 있는 현상을 각 단계별로 적용하여 보았다.

  선교의 자유가 없고 특히 외국 선교사들의 현지인 접촉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의 선교는 장기적인 계획 아래 다양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된다. 사역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공산권이라는 큰 틀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능력과, 각자 사역의 현안들을 예리하게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된다. 또 한편으로는 사역의 역동성 추구를 위해 사회주의 제도의 틈새를 찾아내어 창의적인 접근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모험 정신도 함께 요구된다.16)

  (1) 개척(Pioneer) 단계 사역

A. 한인교회 및 디아스포라 사역

  세계 어디든 한국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한인교회가 세워지는데, 베트남에도 전국 대도시 지역에 한인교회가 많이 세워져 있다. 베트남 남부 호치민시의 한인 교민 수가 2011년 약 8만 명을 상회하면서 한인교회 사역의 중요성이 증가 되었다. 더 많은 한인교회의 개척에 대한 필요성과 함께 많은 한인교회가 개척될 때, 선교지의 한인교회가 현지인 교회의 모범이 되며, 중복되지 않으며 질서가 있는 현지 선교를 감당하고자 2008년에는 한인교회협의회가17) 조직되었다.

  또한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어, 한인교회로서의 선교를 더 잘 감당해 나가기 위해 소수의 개교회들이 실행하던 기존의 선교훈련들이, 2011년부터 더 많은 선교세미나와 훈련과정들로 한인교회와 성도들에게 제공되기 시작했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한인 디아스포라 사역은 아직 사역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인교회 개척 3년 미만의 교회가 많아서 한인교회 자체 성장에 힘을 쏟기에 급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래된 한인교회의 디아스포라 사역은 신생 교회들의 모델이 되어야 하지만, 기성 교회들도 디아스포라 사역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디아스포라 사역의 개념부터 함께 배워야 할 처지라 신생 교회들과 다를 바가 없다.

 

B. NGO 사역

  1975년에 33개국이던 전통적 선교사의 접근 제한 지역이 1989년에 86개 국가로 늘어났다. 2천년이 지나면 40억이 넘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복음을 접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죽어 갈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식량 부족으로 1,800여만 명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으며, 오염된 물과 식수 부족으로 안해 2,500-3천만 명의 사람들이 해마다 죽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공산권, 사회주의권, 회교권, 흰두권, 불교권 등 기독교 활동이 극히 제한되는 나라일수록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NGO를 통한 사역이 더 요구되어 지고 있다.

  베트남 정부에서도 1996년까지 묵인하던 NGO를 국제적 역량강화와 관리에 역점을 두고 그 관리법을 통과시켰다. 베트남 정부의 입장은 계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문호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NGO에 대한 입장도 기본적으로 환영하고 있고 여러 혜택도 강조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는 대략 400여 개에 달하고 있으며, 그 중 NGO자료집에는 약 271개가 소개되어있다.18) 나머지는 정확한 소재, 사역, 예산과 인원 등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정치와 종교에 연관된 활동은 할 수 없음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어 활동에 장애가 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 NGO 사역자들도 베트남에서의 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실행하고자 연합 활동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했다.19)

  (a) KOICA에 등록된 NGO의 베트남 활동

(ⅰ) 악안면 성형의료봉사활동 -대한 악안면 성형재건 외과학회

(ⅱ) 베트남 하따이 개발 사업 -경실련 경제정의 연구소

(ⅲ) 베트남 의료사업 -사단법인 글로벌 케어

(ⅳ) 베트남복지선교회 -감리교산하 한국 복지 활동 기구

(ⅴ) 한아 봉사회(Korean Society For Mission and service in Asia)

(ⅵ) 재단법인 호산나(Hosanna International)

  (b) 베트남 NGO 활동

(ⅰ) 국제관계 협력기구 (International Relationship Organization)

  베트남 수상 결정기구인 베트남 동남아 과학연구협회와 직속기구인 농촌발전후원연구원 등과 협력하여 전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발전 등을 위한 폭 넓은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구이다. 특별 지역을 선정하여 구호활동 및 정기적인 의료봉사활동, 유치원, 학교 설립, 공장 및 농장 건설 등 특정 지역을 집중 투자하여 한국인 NGO 사역자들의 결집된 힘으로 베트남 전반적인 사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외국인 NGO 등록에 비해 비교적 가입과 활동이 용이하므로 향후 사역의 안정성이 높고 지속적인 사역이 가능하다.

  (c) NGO 사역의 발전 가능성

(ⅰ) 분야별 팀 사역 가능 : 각자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선교지서 분야별로 사역이 가능하게 되어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며 사역할 수 있게 되어 재정, 인력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ⅱ) 초교파적인 후원과 참여 가능 : 대외적으로 많은 홍보와 활동을 통해 자신의 교단뿐 아니라 초교파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참여가 가능하다.

(ⅲ) 등록된 인원의 장기 주재 가능 : 합법적으로 입국한 단체이므로 등록된 인원의 장기체류가 가능하며, 사역의 안정성 및 지속성이 보장된다..

(ⅳ) 현지정부와 협력관계 가능 : NGO 사역은 낙후된 현지인들에게 특히 지원 혹은 개발이 필요한 지방 단위의 지도자들에게 좋은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관계를 맺게 함으로 향후의 사역에 대비할 수 있으며 사역자들의 노하우를 서로 공유함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원 및 투자 규모에 비해 보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C. 장애자 사역

  베트남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있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보조와 인식의 결여로 전쟁으로 인한 장애인 등 수 많은 장애인들이 방치되다시피 버려져 돌봄을 입지 못하고 있다. 장애자 사역은 적십자사나 여성동맹 등과 협력해 부분적으로 사역을 진행하거나, NGO를 통해 학교 설립이나 시설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농아학교에 보청기 지원, 맹아 학교에 지팡이 지원, 지체 부자유자들에게 보조기 지원 등의 사회 복지 지원을 통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예비선교 자원들이 베트남에 들어와 지역 봉사를 위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연구하기도 했다. 장애인 사역자의 경우 농아를 위한 수화를 할 수 있거나, 진료나 간호를 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전문인 사역자가 필요하며 현재는 재정적인 지원이나 물품지원과 같은 형태로 실행하고 있다.

 

D. 이․미용 사역

  전문인선교사의 사역 분야로 깊숙한 지방에 들어가 현지인들에게 미용봉사를 행하고 있다. 매월 1회 의료진이나 다른 봉사팀과 함께 방문하여 사역을 하거나 단독으로 행하고 있으며, 미용실을 개장하여 현지인을 종업원으로 고용하여 공동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미용 기술을 전수하며 가르치는 일을 통해 미용사로 키우고, 복음을 영접한 제자는 다른 지역이나 자신의 출신 고향으로 돌아가 미용실을 열어 자신이 받은 양육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자 양육을 하는 사역자가 되도록 하고 있다.

 

E. 소수종족 사역

  베트남은 54종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복합문화를 가진 나라이다. 우선 종족 사역에 필요한 것은 현장 체험과 정보, 자료이다. 베트남은 소수종족에 대해 매우 폐쇄적이므로 이를 얻기는 매우 힘들다. 1995년 10월부터 베트남 중남부에 거주하는 소수종족들을 정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탐시 사진기는 물론 메모지, 지도, 소형 녹음기까지 동원하였으며, 돌아와서는 이를 자료화하였는데, 한국미전도종족입양본부(AAP)에서 제시한 규정을 기준으로 하였다. 1997년 5월 정탐을 마친 종족 중에 우선적으로 입양이 필요한 7개 종족(크메르, 끄호, 에데, 야라이, 예, 스팅, 참)을 파일과 사진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근거로 미전도 종족 입양사역을 추진하였다. 지금까지 입양된 종족과 입양한 교회, 시기와 관련 사역은 다음과 같다.

(a)크메르족 -서대문교회 : 1997. 2. 23 / 정탐 후 선교사 파송, 해당 선교사가 전담 사역 중.

(b)예족 -광성교회 : 1999. 3. 21 / 예족 교역자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 지급.

(c)야라이족 -천안대학교 선교학과 : 2000. 5. 9 / 교역자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 지급.

 

F. 현지 해외선교단체 및 선교사 훈련원 설립 사역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한인선교사의 사역기간이 50년을 넘었다. 그 중에서 한인선교사의 베트남선교는 2012년이면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런 오랜 기간 동안 한인 선교사의 사역이 현지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해외 선교를 감당하는 선교단체나 선교훈련원 그리고 국가선교협의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근자에 중국이 선교사를 양성하는 훈련센터를 세우고 현지인선교단체를 조직하여 인근 아시아 국가로 공식적인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고, 필리핀은 비교적 오래전부터 영어교사 선교사와 같은 형태의 선교사 파송이 있었으며, 인도네시아도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복음화를 위해 아시아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선교사 자원 발굴, 선교 거리, 비용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또한 아시아 지역간의 선교 네트웍 형성으로 타국의 문화, 정보 공유는 물론 현지인 선교사 Care에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선교사 양성을 위한 연합 선교사 훈련센터를 개원하여 아시아 지역의 선교사 배출을 꾀하고 있다.20)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 국가로서 인도차이나 5개국 가운데 교통이 편리하고, 출입국 절차가 가장 자유로운 나라이다. 인도차이나 국가의 지난 수십년간의 선교 사역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다 할 현지인 선교사 훈련이나 파송 실적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태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들에서 기초적인 선교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국제적인 훈련(타문화 및 현장 체험)을 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훈련 기관이나 센터도 없는 상황에서 이미 인프라 기반이 형성되어 있는 태국의 촌부리 센터를 통해 국제훈련과 현장 체험 사역을 병행하게 된다면 비용과 시간, 그리고 사역의 효율성을 가장 극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촌부리 센터를 중심으로 아시아국가의 선교사양성을 위해 각국의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훈련생과 강사들을 공유하면, 각국의 훈련생들을 통해 현지어와 함께 언어 훈련이 이루어지고, 또한 영어를 공통 언어로 훈련할 수 있다. 이같이 아시아 국가의 선교사 양성을 위한 국제훈련센터를 연합으로 개설하는 것은 선교사역자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아시아 지역과 베트남 복음화를 위해 베트남에서는 2011년 3월 현지선교단체 설립을 위한 선교회 이사회를 조직하고 베트남 세계선교회를 발족하였다.21) 또한 베트남세계선교회는 선교훈련원을 개원하여 선교세미나를22) 개최하면서 본격적인 선교사 양성에 돌입했다. 베트남세계선교회는 자국내 소수종족 선교사, 베트남인 디아스포라 선교사, 인접국가 해외 선교사의 3분야 선교사 양성을 목표로 선교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선교에 베트남 교회와 성도가 쓰임받는 일을 위해 현지 교회와 목회자, 성도를 깨워 선교에 동역하게 하려고 2012년 베트남세계선교대회를 기획하고 있으며, 한인교회와 현지교회의 선교사 공동파송으로 연합과 협력을 도모하며 2013년 10명의 선교사 파송을 목표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2) 부모(Parent) 단계 사역

A. 음악, 찬양사역

  음악과 찬양을 통한 사역은 노래를 부르거나 듣기를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적합한 사역 방법이다. 베트남 교회음악은 공인교회의 음악분위기와 가정교회의 음악분위기가 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공인교회의 음악은 대부분 재즈 반주를 하며, 악기는 주로 피아노나 오르간이다. 가정교회의 음악은 기타를 많이 사용한다. 공인교회가 형식에 메여있다면 가정교회의 찬양분위기는 록 음악을 가미한 활기차고 생동감이 있다.

  교회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베트남에서 반주자를 양성하거나 찬양단을 양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반주자 양성과 교외음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휘자들, 찬양의 깊이를 시연해 보일 수 있는 찬양단(중창, 어린이 중창단, 합창) 등의 양성이 요구되어, 이런 사역을 하고 있으며, 새로운 찬양의 보급을 위해 여러 통로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베트남 교회 음악의 독특한 한 형태는 이곳의 민요들을 개사하여 시편의 곡들을 붙여서 부르는 음악들이다. 가정교회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이 분야는 잘 개발하면 베트남 특유의 아름다운 교회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요즘에는 찬양테이프와 CD를 제작하여 공급할 정도로 수준이 갖춰져 있고, 또 복음성가 책자들도 제법 구색을 맞춰 만들어 낸다. 현지 찬양 사역자들과 공동으로 찬양테이프와 CD제작, 그리고 제작된 것들을 보급하는데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찬양번역과 찬양 앨범 제작 사역을 하고 있다.

 

B. 문서 사역

  문서사역은 베트남에서 상당히 중요하면서도 상황에 적합한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전도할 수 없는 지역에서 문서의 인쇄와 보급은 이들의 영성생활을 돕는데 지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신앙서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성경에 기초를 둔 신학서적이나 신앙 서적들을 공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훈련교재 및 유익한 신앙서적의 번역 보급과 목회자를 위한 전문 서적 보급 등을 행한다. 특히 소수부족에게 성경 보급을 하기위해 성경책을 제작(복사본)하는 팀도 있다.

  문서사역은 주로 번역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전문 번역팀이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필요에 따라서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영성 있는 책자들을 번역하여 보급하고 있다. 처음에는 영문서적들이 주로 번역이 되었는데, 현재는 한글 교재와 책자들이 번역되고 있다.

 

C. 컴퓨터(정보) 사역

  베트남의 컴퓨터 사용 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특별히 컴퓨터 수리와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기술적인 면에서 그 인력과 기술이 상당히 부족하여, 이를 지원하는 업체와 사람들이 한국에서 많이 유입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몇 선교사들은 정보 산업의 선두에 서 있다. 교회 및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컴퓨터를 제공하거나, 기초적인 컴퓨터 교육, CD 자료 제공 등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해주며 접촉점을 형성하고 있는 인터넷카페 운영, 컴퓨터 조립, 판매, 수리, 기술제공 및 VCD대여, 프로그램 제공 등과 같은 일들을 하고 있다.

 

D. 학원 및 캠퍼스 사역

  학원 사역이 지니고 있는 선교 전략적인 측면에서의 중요성은 그들에게는 시간적인 자유가 많고, 젊은 그들의 생각은 많이 열려 있으며, 가장 큰 중요성은 그들은 곧 가까운 미래의 종교,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대학생들 가운데는 지방의 목회자 또는 평신도의 자녀로서 도시의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상경한 학생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위해 현지 교회와 연합하여 숙소를 제공해주며 돌보아주거나(이 경우는  목회자 협력 사역과 겸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상경한 신앙인 또는 직접 전도한 학생들에게 학사를 제공하여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캠퍼스 일군으로 양육해 가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 사역은 매년 새로운 신입생들이 있으므로 영구히 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의 대학교들이 큰 캠퍼스가 없어서 보통 2-3곳의 캠퍼스로 나누어 공부한다. 그 예로 호치민시 국가경제대학교의 경우 6개의 캠퍼스로 나누어져 있다. 또, 몇 개의 대학을 동시에 다닐 수 있다. 2개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많이 있으며, 3개까지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과에 대한 전문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고, 수도인 하노이와 남부 경제도시인 호치민시에 대학이 집중되어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어과를 신설되는 대학이 많이 늘어났다. 국립대학교인 호치민시 국가인문사회과학대학교와 사립 개방대학교, 외국어 기술정보대학교, 홍방대학교, 락홍대학교 등이다.

  학생 선교단체는 1960년 말 P.A. Contento 목사가 베트남을 방문하여 3일간 집회 인도를 하였고, Intervasity Christian Student Fellowship을 조직하여 IFES에 가입했다. 1923년 Paul Monet가  YMCA 설립을 목적으로 베트남을 방문하였고, 1957년 초 YMCA 동남아지역 대표인 Pharmaraj가 베트남을 방문한 후 1957년 말 YMCA가 정식 인가를 받아 설립되었다. 이같이 대학생 선교회가 조직되었지만 캠퍼스에서의 사역은 공산화 이후 거의 사라져 버린 것과 같다. 이에 따라 캠퍼스 전도일군 양육과 전도 훈련을 실시하여 캠퍼스 전도를 실천하고 있으며, 각 대학생 선교회는 자체적으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전도의 열정을 키워나가고 있다. 1999년 남부 붕따우에서는 대학생 선교회가(9개 대학에서 40명 모임) 설립되었다.

  그리고 제자양육의 후속적 차원과 베트남 교회를 위한 인재 양성의 차원에서 교회 내 인재들을 한국에 유학 보내어 신학교육을 받게 하거나 일반 학과를 공부하게 하고 있다.

 

E. 의료 사역

  베트남의 의료제도는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은 정식 6년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있고 3년제 의대를 졸업한 준의사와 그리고 3년제 간호학교가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공공기관에서 5년간 근무한 이후에 개인이 개업할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과 같은 전문의 제도가 없고, 한 전문과에서 오래 근무하면 전문의로서 활동하게 된다. 사회주의국가라 정부에서 모든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고, 최근에 개인병원이 많이 세워지고 있다. 경제 수준에 비해 기본적인 의료조직은 잘 구성되어 있다. 호치민시를 보면 각 전문과목마다 하나의 커다란 전문병원이 구성되어 있어 많은 환자를 해결하고 있으며 심장센터와 안과병원, 산부인과병원, 외상센터가 각각 하나씩 있어 환자가 전문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각 구마다 보건소가 하나씩 있고, 지방도 의료 조직은 잘 정비되어 있다.

  베트남에서 전문인에 의한 특수선교는 좋은 효과를 보고 있으며, 정치·종교적 제한 상황에서 유효적절한 사역 형태라 하겠다. 베트남의 1차 진료기관인 응급종합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로 근무하며 환자들을 대하는 가운데 사역을 하거나, 개인 병원을 개업하여 사역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이동 진료를 통하여 사역하는 선교사도 있다.

 

  (3) 협력자(Partner) 단계 사역

A. 교회개척 사역

  1991년 발표된 종교 활동 규정 제6조에 의하면 “모든 공민은 특정 종교를 따르거나 혹은 따르지 않거나, 종교를 버리거나 바꿀 수 있는 자유권이 있다. 그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행위는 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되어있다. 또한 규정7조에서는 “신도는 국가의 법률과 정책주장에 반하지 않는 각 종교 활동을 실시할 권리가 있다. 집안에서 구원을 할 수가 있고, 교회에서의 종교활동에 참가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1992년 정부 종교위원회령 2호, 규칙 제24조에서는 “각 종교조직이 해외에서의 종교활동에 사람을 파견, 외국종교조직의 대표 혹은 지도자, 수행자를 아국으로 초청하는 것은 모두 허가를 신청하여야 하고 각료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선교사의 기본 사역이기에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지금까지 교회 개척의 한 가지 형태는 선교사가 직접전도를 통해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교사가 현지인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의 모든 기능을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예배처소, 전도활동, 정부의 집회 허가 등 한계가 있다.

 

B. 현지교회 협력 사역

  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사역의 한 방법이 바로 현지교회와의 협력 사역이다. 베트남은 기존 교회의 증·개축 지원을 통해 지역교회와 협력하는 것이 가장 많은 협력 형태라 하겠다. 특히 이 부분에서 한국 교회가 많은 공헌을 해왔고, 따라서 현지 교인들도 한국교회를 생각하는 비중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지교회의 자립심을 잃어버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교회를 향해 도움을 바라는 손을 내밀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또 다른 형태의 현지 교회 협력은 목회자 자녀를 돌보는 것을 통해 목회자의 부족한 생활비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현지교회 협력은 사역적인 활동보다는 지원하는 활동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C. 스포츠 사역

  태권도는 체육관(도장) 운영을 통해 성인, 아동, 초·중·고·대학생, 직장인, 여성반 등으로 나누어 계층별 전도가 가능하도록 활동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태권도 사역은 현지인 사범 양육이 이루어져 현지인 도장이 새워져 운영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도장이 한인 사역자에 의해 직접 운영되고 있다. 축구를 비롯한 또한 다른 스포츠 사역은 제반 운동 시설 및 강습회 운영을 통해 접촉점을 형성하며 복음 증거에 애쓰고 있다.

 

  (4) 참여(Participant) 단계 사역

A. 신학교 사역

  한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신학교는 침례교, 예장 고려, 장로교 연합, 초교파 신학교가 있으며, 신학교는 아니지만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원이 다수 있다.23)

  한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신학교는 대부분 현장사역에 필요한 목회학, 지도자론, 전도학, 상담학, 교회성장학, 교회사 과목들을 중점으로 가르치며, 히브리어, 헬라어와 같은 전문 과목들은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입문 정도로 가르치지는 않고 있다. 교재는 강의안을 대부분 번역해서 준비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강의를 한 후 그 내용의 리포터를 제출케 하여 다음 교재 제작과 공부에 참고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전국의 주요 지역마다 신학연장교육(T.E.E.: 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을 하는 과정도 있다. 신학연장교육은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의 장점인 기도와 목회의 열심, 주일학교 운영, 성가대 및 교회 음악, 사모의 역할, 교역자 자녀 지도, 청년 및 여전도회의 활성화 등을 접목하여 전도와 양육에 도움을 주었다. 1996년 초부터 T교회는 담임 전도사 및 중직자들(5명의 운영위원회, 한국의 당회 역할)을 중심으로 지도자 양육을 실시했다. 초기에는 비정기적이며 일정한 커리큘럼이 없었지만 지금은 예산과 강사진 그리고 커리큘럼이 수립되어 정기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임명된 사역자들이 지하교회의 담임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지하교회 그룹내에서는 목회자로 인정을 받지만 정부 또는 공인교회에서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또한 교육 기간이 단기이며, 교수진들의 한계로 주로 현장목회에 필요한 과목을 중심으로 세미나 형태의 2-5일간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서 과정을 이수한 후 추가로 신학 과정에 참여하여 자질을 보충해야 할 필요도 있다.

  베트남 복음성회 교단은 총회가 조직되어 있고, 정부 공인 신학교가 있다. 비인가 군소교단의 직영신학교가 많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 교역자를 양성하는 기관은 복음성회 총회의 성경신학원 외에는 아직 없다. 공산화 이후 신학교가 폐쇄되어 교역자는 더 이상 배출되지 못했고, 신학교를 졸업하거나 과정을 수료했지만 공산화로 인해 안수를 받지 못한 158명의 전도사들이 정부의 총회인정을 계기로 총회의 결의를 통해 2001년 5월 첫째주일에 목사 임직을 했다.24)

  대부분의 비공인교회 목회자들이 정규 신학 교육을 받지 않고, 몇 개월의 단기간 훈련을 통해 목사로 불리고 있으며, 제칠일 안식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한국의 구원파 등 많은 이단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다. 이들 사이비 집단에 대응하여 바른 신학과 교리를 변증할 현지인 목회자는 그리 많지 않다.

  베트남의 목회자 배출을 위한 신학과정은 1921년 다낭 성경학교가 설립되었고, 이후 1960년 냐짱 성경신학원으로 승격 개교(전신 다낭성경학교)하였다. 공산화가 되면서 신학교는 폐쇄되었고, 2001년 4월 정부의 법인으로 공인된 남부 베트남복음성회는 2003년 성경신학원을 재개설하여 현재 150명 정도의 신학생이 공부하고 있으며, 2007년도 제1회 졸업생 50명이 배출되었다. 매 2년마다 100명씩의 신학생이 졸업하는 추세라면 10년 후라도 단지 500명의 사역자가 배출될 뿐이다.

  한 교단의 성장통계는 신학생 수와 비례한다. 복음성회 산하 공인교회는 2010년에 약 500개가 넘으며, 비공인교회들이 공인을 받게 되면 교회 수는 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에 비해 현재 배출되는 목회자의 공급 수는 절대 부족이라 하겠다.

  베트남에 공식적인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는 신학대학원이 아직 없다. 그래서 석사학위가 없는 베트남 목회자의 상황에서 공인된 신학교인 베트남 복음총회(남부)의 석사과정 개설이 매우 필요하지만, 석·박사 학위를 가진 신학교 교수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과정 개설에 어려움이 있다.25)

  비공인 초교파 신학교인 베트남 국제신학대학은 2006년 처음으로 석사과정이 개설되어 2008년 7월 석사학위 수여가 되었다. 학위수여 요건으로 논문 심사과정을 거치고, 전문 과목의 교수 양성을 위해 해당 논문 주제로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도록 연계하고 있다. 베트남 국제신학대학원은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워싱턴 국제신학대학(Washington College & International Seminary)과 공동학위 과정으로 운영한 박사과정에서 2011년 10월 7명이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26) 박사학위 취득자들은 신학교 전 과정의 강의를 맡게 되고, 석사 과정 이수자들이 학사과정의 강의를 맡아서 현지인 교수진에 의한 신학교가 남부 호치민, 북부 하노이, 중부 다낭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북부 하이퐁 지역에 새로운 학사과정이 개설될 예정이다. 현지인에 의한 학위과정 운영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일정, 장소, 강사에 따른 강의과목, 강사인력 부족 등이다.

  신학 교육과 목회자 재교육의 또 하나의 문제는 신학 전문서적이 현지 목회자의 서적은 물론 외국 신학 서적들이 현지어로 번역된 것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 과정에서 교재로 사용할 서적도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기독서적의 번역 사역자도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신학 과정을 진행하면서 외국인 교수에 의한 강의 과목을 번역한 강의안을 통해 신학 교재를 하나씩 출간하고 있다. 또한 현지 기독서점에 한국 교수들이 출판한 서적들의 번역 출판권을 주어서 번역서가 출판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한인선교사의 패러다임 전환을 기대하며 나가는 말

  현지 교회와 교단의 현 상황과 한인 선교사의 베트남 선교 20년이 되는 이때를 생각해보면, 한인선교사의 특수한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교 사역은 참여자의 단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현지인들이 할 수 있는 참여 단계 분야의 사역은 이제 저들에게 위양하여 주어 우리들의 손에서 내려놓고, 그들의 능력으로는 아직은 할 수 없는 개척 단계 분야의 사역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척 단계의 사역들도 빠른 시간내에 협력과 참여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현지인 위양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사역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베트남 공인교회의 목회자를 포함한 교계지도자들이 교회 부흥에 대한 열망이나 교회 개혁의식이 전무한 상태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의 의식을 깨워 베트남 교회 부흥을 꿈꾸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신학 학위 과정을 이수하는 지도자들과 함께 이 일을 위해 중보기도를 시작하였고, 처음 주1회 기도하던 것이 이제는 매일 기도로 바뀌었다. 이 중보기도를 바탕으로 베트남 교회 부흥과 세계선교의 동참을 위해 대형 선교집회를 열어서 이를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

  베트남 한인선교사의 패러다임 형성과 전환을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현재 하고 있는 사역이 한인 선교사가 현지에서 해야만 하는 선교 사역인가?

  만약 현지에 교단이 존재하며, 총회가 형성되어 있다면 현지 교회개척과 같은 사역은 현지인에게 맡기고, 현지인이 개척할 수 없는 지역의 교회 개척을 하거나, 개척한 교회를 담당할 사역자를 양성하거나, 세워진 교회를 든든하게 하는 교육 사역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2) 현재 사역이 한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사역이지만 과연 복음적인 것인가?

  많은 NGO사역자들의 딜레마가 이 질문에 해당할 것이다. 특히 자유로운 선교가 어려운 지역에서 실행하고 있는 사역들은 복음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도록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3) 현지에 필요한 사역이라면 현재 어느 단계에 있으며, 최종적인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한인 선교사는 현지에 뼈를 묻을 각오로 선교해야 한다는 의식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식이 현재 실행하고 있는 사역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현지인에게 사역을 위양하고 그들로 하여금 현지 복음화를 이루도록 하는 일에 발목을 잡고 있다.

  선교지에 뼈를 묻고자 하는 선교 헌신과 현지인에게 위양해야 할 사역에 뼈를 묻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교회 개척이 선교사의 사역 과제라면 교회개척을 위해 전도하는 사역에서 출발하여 교회가 개척될 것을 대비해 사역자를 양육하는 과정이 다음 차례가 되어야 하며, 사역자를 배출하는 신학교 사역으로 출발하면 신학교가 정착되도록 현지인 교수 양성이 다음 차례가 되어야 한다. 현지 교단, 신학교와 같은 조직이 갖추어져 있다면 국내와 해외 선교를 수행하도록 교회와 성도들을 동원하는 선교 훈련 사역으로 출발하여 현지인 선교사가 배출되어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나라가 되도록 선교 지도자를 양성하고 선교단체를 세우는 사역이 다음 차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인 선교 100주년을 지나며 이제 선교지 현지인의 손으로 세계선교와 자국 복음화를 감당할 수 있도록 성장 시키는 성숙된 선교를 행하는 한인 선교가 되어야 하겠다. 또한 한인 디아스포라 사역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에 대한 현지인 선교 전략이 더 많이 연구되어 디아스포라 한인교회에 제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며 본고를 마무리 한다.

(끝).


1) 기고자 임도마(Thomas S.Won Lim)는 1997년 PWM(Partners for World Mission, 현재 Global Partners 선교회) 선교사로 허입되어 1998년 베트남 선교사로 파송받아 제1기 사역으로 한국어교수, 한국어 캠프, 캠퍼스 전도 사역을 하였고, 2002년 지피(GP)선교회 한국본부 총무, 국제본부 행정총무 사역을 한 후, 2004년 다시 베트남에서 제2기 사역으로 현지교회 개척, 한국어 통역원 양성, 신학교 운영 사역을 했으며, 2009년부터 제3기 사역으로 신학교 박사과정 운영(Vietnam International Seminary), 현지선교단체(Vietnam Global Mission Association) 및 이사회 설립 운영, 현지인 선교훈련센터 운영 사역을 하고 있다. Washington College & International Seminary에서 Th.D, D.Miss를 취득하였고, 2011년부터 아시아 신학교 공동학위 네트웍을 위해 Washington College & International Seminary의 아시아 대표를 맡고 있다.

2) 데이비드 J. 보쉬,  김병길외 역, [변화하고있는 선교],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3) 리차드 니버, 김재준 역, [그리스도와 문화], (서울; 대한 기독교 서회, 1993).

4) 베트남종교위원회 2003년 보고서에 개신교인은 100만 명으로 되어있으나, 기독교계는 200만 명으로 보고하고 있다.

5) 베트남종교위원회 2003년 보고서에 30개 교단으로 되어있으나, 기독교계는 70여개의 교단으로 보고 있다.

6) 2009년 교회주소록, 호치민 복음전파교단 발행, 대표 Doan Trung Tin.

7) VDF, '비전베트남'(베트남 선교백서 제2권), 도서출판 컴퓨터선교회, 2001.11, p.10-27. 이 자료는 ‘베트남 복음 도착 90주년’(1911-2001) 기념 자료집의 내용으로 2001년 4월 3일, 사이공교회에서 발표된 자료에서 발췌했다.

8) 제12회 인도차이나 한인지도자 베트남대회 자료집(2011.10). 베트남 북부교회 개척, 최 다니엘. P.88

9) 프랑스 개신교회의 정기 간행물인 ‘생활과 신앙(Foi et Vie)' 1906년 11월호에 당시 하노이교회에서 사역했던 리치몬드(A. de. Richmond) 목사는 인도차이나 선교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를 발표하였다. (1)이 민족은 15세기 동안 문명화된 민족이므로 선교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2)선교 지역을 선택할 때, 로마 가톨릭의 활동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3)그들을 개신교인으로 만들려 하지 말고 그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데 힘쓸 것이며, 그들의 종교를 바꾸지 않도록 해야 한다.

10) 약 3년 간 베트남선교회(대표 강원균 목사)와 혜성교회(당시 담임 박찬목 목사) 등의 후원으로 총신에서 유학을 한 바오 전도사는 월남에 돌아가기 전 주변의 학교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월남 선교에의 동참을 강하게 호소하였으며, 많은 선교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오는 월남으로 귀국해 곧바로 장로교회를 개척하였으며, 설립된 23개의 장로교회를 중심으로 총회를 조직하고, 총회 신학교를 운영하였다. 1975년 월남이 패전하고 베트남 정부가 개신교에 핍박을 가하자 바오 목사는 아들과 함께 해외로 탈출하여 기착지인 말레이시아 피난민 수용소에서 월남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다가, 뉴스 레터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미국 나성한인교회 김의환 목사의 초청으로 미국에 안착하였다. 현재 바오 목사는 미국에서 베트남인 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고국 베트남 복음화를 위해 여러 모양으로 힘쓰고 있다.

11) 한인교회는 베트남복음성회 남부총회의 행정 지원과 자체 헌금으로 단독 건물을 건축하였다(호치민시 푸년군 소재).

12) VDF, '비전베트남'(베트남 선교백서 제2권), 도서출판 컴퓨터선교회, 2001.11, p.28-31. 이 자료는 ‘베트남 개신교회 선교역사 연구’ 논문(2000년 7월, 총신대 선교대학원)과, 2001년 3월 인선동네 세미나 자료가 요약 재게 된 것임.

13) 이 수치는 2011년 10월 두 지역 한인선교사협의회의 회원으로 정식 가입한 회원수에 대한 문의에 임원회에서 답해준 수치로 선교사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은 다수의 한인 선교사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미주지역에서 파송된 한인선교사들이 많이 있다. 

14) 인도차이나 지역의 교회자립에 대한 연구 보고서로 [인도차이나 지역의 교회자립]이 인도차이나한인선교사대회 신학분과에서 출간되었다.(2011.10.31)

15) VDF, '비전베트남'(베트남 선교백서 제2권), 도서출판 컴퓨터선교회, 2001.11, p.38-75를 다시 요약 정리함. 베트남 선교백서 창간호(1998년)가 많은 오해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베트남 선교의 실상을 한국교회에 바르게 알려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발간되었다면, 제2권 증보판(2001년)은 베트남 선교 1세대라 할 수 있는 한인 선교사의 베트남 선교 10년을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스스로 10년 선교역사를 정리해보며 잘못된 사역은 바로잡고, 새로운 베트남 선교 전략과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그리고 베트남 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동역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보다 더 실제적이고 도움이 되는 선교 자료제공을 하기 위해 출간을 결정했다. 이런 다짐은 증보판 백서의 내용을 결정하고 준비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출간의 다짐에 따라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 제공과 현장 사역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알리기 위해 전체 3부와 부록으로 구성하여 출간되었다. 기고자는 제2권 증보판의 편집위원으로 백서 프레임 구성 작업을 했다.

16) VDF, '비전베트남'(베트남 선교백서 제2권), 도서출판 컴퓨터선교회, 2001.11, p.209.

17) 2008년 9월 10일 남부지역 8개 한인교회 사역자들이 창립총회를 갖고 베트남 한인교회협의회가 발족되어, 2011년 6월 기준 19개 교회가 회원교회로 가입되어 있으며, 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은 한인교회의 수도 적지 않아 남부 지역 전체 한인교회는 30개 이상, 북부 지역의 한인교회는 5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 NGO Directory, 1999-2000. The Hochiminh city Union of Friendship Organizations(HUFO). 

19) 2007년 3월 22일 남부지역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NGO를 중심으로 한국NGO협의회가 발족되어 2011년 6월 기준 11개 정회원 NGO와 준회원이 가입되어 활동하고 있다.

20) 아시안 선교사 양성을 위해 연합선교국제훈련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태국의 김정웅 선교사(GP)는 촌부리센터를 국제훈련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

21) 한인 성도, 선교사, 현지 교회 지도자가 연합하여 16명으로 구성된 선교회 이사회는 2011년 5월 6일 베트남세계선교회(Vietnam Global Mission Association)를 설립했다.

22) 한국형선교연구원의 조명순 원장을 강사로 초청한 제1회 선교세미나가 2011년 11월 선교센터에서 27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23) 베트남장로회 신학교(2002), 베트남 국제신학교(2006, 초교파, 베트남 복음신학교에서 교명 개명), 베트남 침례 신학교(2006)

24) 2002년 베트남 복음성회 남부총회 연감, (898교회, 784 목사, 366,903 성도).

25) 복음성회 총회 성경신학원 교수진들 중 교의학을 가르치는 Phan Quang Thieu 목사(호치민시 국립 법과대학 졸업, 냐짱 신학교 졸업, 미국 Biola 대학교 Talbot 신학대학원 재학, 사이공교회 담임, 총회 임원)가 유일한 학위 소지자이다.

26) 베트남국제신학대학원은 기고자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신학교로서 2011년 까지 학사 93명, 석사 36명, 박사 7명이 배출되었고, 워싱턴 신학대학의 공동학위 협정에 의한 석·박사 과정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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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포럼 발제 결론

한국인 선교사의 착각...
-한인 선교사의 선교지에 뼈를 묻을 각오는 좋으나, 자신도 모르게 현지에 위양해야할 사역에 뼈를 묻는 것으로 인식되는 착오는 없어야 하겠다.

1. 기독교 지도자 (교회, 신학, 선교) 양성 필요.
2. 선교 붐 조성 (지역교회 및 목회자 선교동원, 세미나, 선교사 훈련, 선교대회) 필요.
3. 선교사 (소수종족 선교사, 베트남인 디아스포라 선교사, 해외선교사) 양성 필요.